[문화] 딸에게 폭풍이자 피난처였던 엄마...세계적 작가 된 딸의 회고록[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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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한 번도 ‘렛 잇 비(내버려 두렴)’라 말한 적 없는 엄마 이야기에, 그 노래 가사 ‘마더 메리 컴스 투 미(Mother Mary comes to me)’를 제목으로 붙인 건 그만큼 역설적인 사랑을 말하고자 함일 터다. 어린 시절 “속절없이, 두려움 속에서, 완전하게” 하다가 어른이 돼서는 “차갑고, 이성적으로, 안전거리를 두고” 해야 했던 엄마에 대한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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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지은이와 오빠, 어머니가 함께한 가족사진. ⓒ Aditya Pande

모국인 인도보다 외국에서 더 사랑받는 작가 아룬다티 로이에게 엄마 메리는 ‘폭풍이자 피난처’였다. 메리는 결코 ‘렛 잇 비’하는 여성이 아니었다. 남녀차별에 절은 집에서 탈출하려고 결혼한 남편이 알코올중독으로 ‘아무것도 아닌 남자’가 되자, 두 자녀를 데리고 가차 없이 떠난다.

딸의 상속권을 부정한 상속법에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위헌 판결을 얻어내고, 우연한 기회에 문 연 간이학교를 초중고 과정을 갖춘 전국적 명성의 교육기관으로 키워낸다. 자격 없는 학생을 부정입학시키라는 지방관리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기도 한다.

이런 훌륭한 교육자적 태도 이면에는 자녀를 향한 매정한 시선과 잔인한 변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제자들에게 빛을 비추려면 우리들이 그녀의 어둠을 흡수해야 했던 것”이다. 메리는 그녀답게 아들과 딸에게 남녀차별 없는 정서적(때로는 물리적인) 폭력을 가한다.

아룬다티에게 눈부신 명성과 갑작스런 부를 안겨준 부커상 수상작 『작은 것들의 신』이 나왔을 때 메리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긴장해 입원까지 했다. 병원에서 책을 읽고는 자신의 어둠을 폭로한 글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러면서 부모가 자식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장면에 대해 묻는다. “이건 누가 얘기해줬지?” “그건 허구예요.”“아니, 그렇지 않아.”

저자는 그런 엄마가 자신을 소설가로 만들어준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안다. 엄마를 미워하지 않고 떠나지 못했던 이유다. 저자가 8년 동안 연락을 끊었던 엄마를 다시 만날 때 딸이 쓰던 낡은 타자기를 가져다준 것도 엄마였다. 저자는 고백한다. “어쩌면 나는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딸이기보다 가장 매혹적인 주제를 잃은 작가로서 더 깊이 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그 힘은 저자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부커상 수상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진 ‘금빛 새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 “평생 금빛 노래를 부르며” 살기를 거부한 것이다. 아룬다티는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한 뒤, 힌두민족주의의 발호를 우려하는 첫 정치 칼럼 ‘상상력의 종말’을 기고한다. 온갖 욕설과 비난이 쏟아지고, 저자를 문학계 스타의 자리에서 단숨에 끌어내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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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 ⓒ Mayank Austen Soofi

하지만 그것은 저자가 엄마에게 숱하게 들어 익숙한 소리, “내 차에서 내려!”“내 집에서 나가!”의 공적 버전일 뿐이었다. 마음속 피난처가 있는 저자는 굴하지 않고 사회활동가의 길을 걷는다. 환경 파괴를 우려하고, 인도의 정치종교적 불안정 속에서 억압받는 소수자를 대변하는 글들을 잡지에 연재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법정모독죄로 기소돼 감옥에 수감된 적도 있다. 여러 소송 중 하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간이 흘러도 메리는 바뀌지 않는다. 자연요법 치료를 받으며 “과거에 대해 딸과 진지하게 대화하라”는 조언을 듣고는 이렇게 말한다. “새 의사가 그러는데, 내가 아픈 건 다 너 때문이란다.” 하지만 죽음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메리는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한 사람은 너다.”

엄마의 왕국을 벗어나 사회로 전선을 넓혔던 저자가 이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예측 불가한 엄마가 남긴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맞춰보면서 쓴 기록이 이 책이다. 엄마가 자신의 변주였던 등장인물을 마음에 들어 했던 첫 소설 이후 28년 만에 나온 이 회고록은 미국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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