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잃어버린 ‘경전의 예술’…암송과 필사의 뇌과학적 메커니즘[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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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경전의 탄생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교양인

오늘날 종교는 갈등과 혐오의 발원지가 되었다. 자비(Compassion)를 가르쳤던 경전의 문구가 오히려 타인을 공격하는 날카로운 흉기로 변질된 시대다. 영국 출신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신간 『경전의 탄생』에서 ‘종교 폭력화’의 원인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면서, 종교가 타락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는 종교의 폭력성이 경전을 과학 교과서나 법전처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 책에 따르면,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경전은 눈으로 읽는 ‘문자’가 아니라 귀로 듣고 입으로 읊는 ‘소리’였다. 인도의 베다, 이슬람의 쿠란처럼, 경전은 소리의 울림을 통해 일상적 들뜬 의식을 가라앉히고 초월적인 상태로 인도하는 음악적 장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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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6일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한 모스크에서 라마단 금식월의 셋째 주 금요일 합동 예배 중 한 남성이 쿠란을 읽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 책의 원제목(The Lost Art of Scripture)을 직역하면 ‘잃어버린 경전의 예술’이다. 본래의 경전은 눈으로 읽고 머리로 분석하는 ‘정보’가 아니라, 노래와 낭송으로 공연되는 일종의 ‘아트(Art, 예술/기술)’였는데 그 종교적 예술성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진단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과거의 종교 행위는 ‘암송’과 ‘필사’다. 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방대한 양의 경전을 암송하고 필사하는, 언뜻 바보스럽게 보이는, 그 고통스러운 수고를 자처했을까, 이런 의문을 저자는 던진다. 그리고 이를 이기적 자아(Ego)를 해체하기 위한 ‘뇌의 훈련’으로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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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경전의 탄생'의 저자 카렌 암스트롱. [사진 교양인]

종교학적 논의를 기존의 고전 문헌학에서 뇌과학과 인류학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점은 이 책의 가장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대목으로 읽힌다. 경전의 난해함, 모순적 표현, 반복되는 리듬 등을 ‘좌뇌’의 분석 기능을 가라앉히기 위해 설계된 장치라고 설명했다. 좌뇌가 그 의미를 묻다가 지쳐서 그 기능을 멈출 때, 비로소 통합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직관하는 ‘우뇌’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좌뇌와 우뇌의 협업이다. 경전을 암송하고 필사하는 노력(좌뇌)이 있어야, 그것을 넘어선 영적 도약(우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다시 윤리적 태도와 연결한다. 좌뇌는 자아 중심적이고 구분 짓기를 좋아하지만, 우뇌는 연결과 공감을 담당한다. 경전은 뇌의 회로를 ‘이기적 자아’에서 ‘이타적 자비’로 변화시키는 윤리적 수행의 도구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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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세 권의 성경이 소파에 놓여 있는 모습. [AP=연합뉴스]소

저자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부터 인도의 베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류의 영적 유산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다. 모든 종교가 각기 다른 언어로 궁극의 경지를 말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자기 비움(Kenosis)'을 통한 공감의 확장이라는 공통의 지향점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들을 이어주는 끈이 자비임을 밝혀낸 저자는, 근대 이후 경전을 대하는 방식의 ‘좌뇌 독주’에서 종교의 폭력성이 증가한 원인을 찾는다. 분석하고 규정하며 배타적 논리를 세우는 좌뇌가 종교를 지배하면서, 전체를 조망하고 타인과 연결을 모색하는 우뇌의 기능이 퇴화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장은 보수적 신학자들로부터 각 종교의 고유한 맥락과 차이점을 간과하며 지나치게 일반화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또 무신론자들로부터는 근대 이후뿐 아니라 근대 이전에도 만연했던 종교의 폭력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와 노래였던 경전이 어떻게 문자가 되었고, 그 문자가 어떻게 교리가 되었으며, 그 교리가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되어 폭력으로 변했는지 그 궤적을 추적하는 이 책의 작업은, 폭력이 만연한 이 시대에 그 가치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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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만 년 전 메머드의 상아를 정교하게 깎아 만든 '사자 인간' 조각상. 예술과 문화의 시작,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의 기원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독일 울름 박물관 소장. [사진 교양인]

이 책은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인류가 공통으로 가졌던 ‘영적 예술’을 현대인들이 종교의 종류를 불문하고 모두 잃어버렸음을 지적하고, 그 잃어버린 종교의 본질을 변호하며 되살릴 것을 촉구하는 문명사적 진단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경전을 나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좌뇌의 도구’로 쓰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비우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우뇌의 기술’로 쓰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통해 우리는 경전을 인류의 지혜가 담긴 보물창고로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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