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생명줄’ 달고 사는데”…장애 인정 못 받는 ‘이 질환’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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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12) 군은 또래 아이들이 한창 맛봤을 ‘두쫀쿠’를 먹어보지 못했다. 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만성장부전’을 10년 넘게 앓고 있기 때문이다. 만성장부전 환자는 일반적인 음식을 먹기 어렵다. 심할 때는 물조차 몸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군은 심장으로 들어가는 중심 정맥에 관을 삽입하는 ‘총정맥영양(Total Parenteral Nutrition, 이하 TPN)’이라는 영양 주사를 맞으며 영양분을 얻을 수밖에 없다. 하루 평균 16~20시간,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는 하루 종일 맞는다.
지난달 19일 이다래(44)씨가 만성장부전을 앓는 아들 한지민(12)군에게 위루관을 통해 장에 찬 가스를 빼고(왼쪽), 총정맥영양(TPN)을 주입하는 모습. 이씨는 병원에서 교육받아 이 작업을 매일 진행하고 있다. 곽주영 기자
희귀 난치성 질환인 만성장부전은 소장이 짧은 ‘단장 증후군’이나, 장 신경이나 근육이 정상 기능하지 않는 ‘가성장폐색’ 등이 원인이다. 그러나 한군은 우리나라에선 ‘장애’로 판정받지 않는다. 현행 장애판정 체계는 내장 기능의 영구적 손상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만성장부전 환자처럼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는 의료의존 상태는 장애로 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성장부전 외에 크론병과 지적 장애도 앓고 있는 한군은 학교를 다녀온 후 집으로 돌아와 곧장 TPN 주사를 맞는다. 한군 어머니 이다래(44)씨는 한군 배의 위루관(위로 약물을 전달하는 튜브)에 주사기를 꽂아 가스를 빼고, 한군의 심장에 연결된 중심정맥관을 통해 TPN 주사를 연결한다. 이씨는 “장기간 주사를 맞아야 하는 아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수액 연결줄을 길게 붙이고, 폴대가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집 안 문턱도 다 없앴다”고 말했다.

이다래(44)씨가 아들 한지민(12)군의 위루관 주변을 감싸는 패드를 하트로 잘라 붙여 주었다. 사진 독자
고재성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에 따르면 장부전 환자들은 평균 0.8세 때부터 정맥영양 주사를 맞기 시작해 평균 2.5세부터 가정에서 주사를 맞기 시작한다. 어린 나이 때부터 치료를 시작하기 때문에 학교 생활을 소화하기 어렵지만 장애 인정이 되지 않아 특수 학급에 진학할 수도 없다.
가성장폐색으로 만성장부전을 겪는 A양(11)은 지난해 한 학기 수업 일수인 92일 중 절반도 되지 않는 41일 밖에 등교하지 못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집에서 수액을 24시간 맞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으로 출석 일수를 채우기 어렵지만 장애 학생으로 등록되지 않아 유급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달 20일 A양의 집에 방을 넘어 거실까지 의료 물품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 그 옆에는 A양 곁에 늘 있는 수액이 걸린 폴대가 있다. 오른쪽 사진은 A양의 중심정맥에 튜브가 연결된 모습이다. 사진 독자
한군이나 A양처럼 병원이 아닌 가정 내에서 TPN 주사를 맞는 ‘홈-TPN’은 법의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원칙적으로 비의료인이 병원 밖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병원이 장기간 주사를 맞아야 하는 만성장부전 환자들을 모두 입원시킬 여력이 없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은 중증소아 재택의료 시범사업을 통해 일부 환자들만 가정 밖에서 주사를 맞으며 병원 밖 일상 생활도 보낼 수 있는 ‘홈-TPN’을 진행하고 있다.
보호자들은 의사로부터 홈-TPN 사용법을 교육받고, 가정 간호사가 주기적으로 가정에 방문해 TPN 치료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
만성장부전 환자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홈-TPN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스스로 의료 물품을 구입해야하지만 회색지대란 성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A양의 어머니 정미진(47)씨는 “TPN을 하는데 필요한 기계는 3대에 약 500만원이 넘고, 각종 비급여 의약품이 매달 100만원 가까이 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엔 한 방송인의 ‘주사 이모’ 논란 때문인지 의료 물품조차 구매길이 막혀 아는 환우 지인을 통해 겨우 물량을 확보했다”며 “의료품을 원활하게 구입하기 위해선 만성장부전 장애 인정과 TPN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환자들의 호소에 만성장부전의 장애 인정 논의가 이제서야 속도를 내고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만성장부전 장애 지정 여부에 대해 “전반적인 제도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확한 집계조차 없었던 TPN 이용 만성장부전 환자들의 인원 통계를 수집 중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만성장부전의 장애 인정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에 연구가 마무리 되면 내년에 법령이 개정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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