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교황 충돌 심상찮다…정치적 목소리 가장 컸던 교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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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레오 14세 교황.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오 14세 교황 간 충돌의 후폭풍이 거세다. 교황은 그간 “하느님은 폭탄을 투하하는 자들은 축복하지 않는다”며 이란 전쟁을 개시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비판해왔다. 이에 지난 1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교황을 향해 “정치인이 아닌 훌륭한 교황이 되는 데 집중하라”고 직격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양측 모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립각을 유지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레오 14세는 정치 현안에 목소리를 낸 첫 교황일까.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3일 “레오 14세와 트럼프 대통령 간 대립은 교황이 세속 권력과 충돌하거나 정치적 변화를 촉발해온 오랜 역사 속 최신 사례”라며 “역대 많은 교황들이 정치에 깊숙이 관여해왔다”고 전했다.
레오 14세의 전임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표적이다. NYT는 “2013년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교황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 인물로 평가된다”며 “그는 기후 변화, 빈곤, 이주 문제에 대해 꾸준히 의견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즉위 몇 주 뒤 가진 첫 해외 순방에서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온 수천 명의 이주민들이 도착하는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을 방문해 이민자들을 “형제자매”라고 칭했다. 같은 달 “동성애자인 누군가가 하느님을 찾으며 선의를 지녔다면 내가 누구이기에 판단하겠는가?”라며 동성애에 대해서도 이전 교황들보다 온건한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해 4월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헝가리의 강경 우파이자 반이민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당시 총리를 만나서는 “하느님은 적을 침묵시키는 강자가 아니며 한 국가의 종교적 뿌리는 모든 이를 향해 팔을 벌리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총선에서 오르반이 이끄는 피데스당이 큰 표 차로 패배하면서, 그는 16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재임한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한 강연에서 비잔틴 황제의 발언을 인용해 “(이슬람이) 오직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것만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이슬람권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폭력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교황청은 즉각 발언이 오해된 것이라고 해명했으며 베네딕토 16세는 같은 해 튀르키예를 방문해 관계 회복에 나섰다.

지난 2000년 3월 바티칸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만나는 모습. 중앙포토
첫 폴란드 출신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고국을 방문해 학생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메시지는 폴란드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화 운동에 영감을 준 계기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그의 방문 1년 뒤 폴란드에서는 노동조합이자 운동인 ‘연대’(Solidarity)가 결성됐고 이는 1989년 공산주의 정권 붕괴로 이어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63년부터 78년까지 교황직을 수행한 바오로 6세는 국제 분쟁 종식 촉구를 위해 매년 1월 1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세계 평화의 날’을 제정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면서 바오로 6세의 평화 호소를 인용했다. 레오 14세 역시 최근 이란 전쟁을 비판하며 “바오로 6세의 호소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포함해 39년부터 58년까지 재임한 비오 2세는 다른 교황들과 달리 ‘침묵’해 비판을 받았다. 나치 독일과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꺼렸기 때문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그가 수천 명의 유대인과 박해받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물밑에서 노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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