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파 비튼 고선웅표 ‘홍도’…“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붙잡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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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홍도’는 기생이 된다. 부잣집 도령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지만 가족을 위한 희생은 끝까지 ‘홍도’의 발목을 잡는다.

서울 예술의전당 시작으로 전국 7개 도시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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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홍도’ 공연 모습. 사진 옐로밤

극공작소 마방진의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지난 10일 서울 양재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개막한 ‘홍도’는 1930년대 대표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원작이다. 고선웅이 2015년 극작·연출해 초연했고, 11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았다.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고선웅은 작품 앞에 ‘화류비련극’이라는 팻말을 달았다. “이 작품은 어느 정도예스러운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게 고선웅의 생각이다.

실제 줄거리는 사람들이 익히 아는 ‘홍도’의 얘기다. 희생과 순정, 한(恨)과 같은 한국 고유 정서를 무대 언어로 풀어냈다. 새하얀 무대 뒤편에 사람 인(人)자를 큼지막하게 써 놓으며 지붕을 표시한 구조물만 두며 여백의 미를 극대화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차이킴(김영진)이 구현한 한복 의상은 전통적인 형식을 유지하면서 근대적 감각을 배어들도록 했다.

지극히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구성이지만 2026년 ‘홍도’는 여기에 또 다른문제 의식을 던진다. 시댁은 ‘홍도’를 쫓아내려 안달이다. 천한 기생을 쫓아내고 ‘신 여성’ 혜숙을 집안에 들이기 위함이다. ‘홍도’가 바람을 핀 것처럼 가짜 편지를 꾸며내기도 한다. ‘홍도’와 결혼한 ‘광호’는 물론 뭇 사람들은 어머니와 동생이 주도해 꾸민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간다. 홍도는 천한 기생이면서 불륜을 저지르는 여성으로 손가락질받게 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댓글이나 가짜 뉴스가 한 사람을 벼랑을 내몰 수 있는 현재와도 밀접하게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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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홍도’ 공연 모습. 사진 옐로밤

고선웅은 이 작품을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붙잡는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그는 “‘홍도’가 지금 시대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댓글 하나 소문 하나로 사람이 완전히 몰락하기도 한다”라며 “과거가 현재를 끝까지 지배해서, 한 사람이 갱생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없애버리는 사회가 타당한가를 ‘홍도’는 묻는다”라고 말했다.

‘홍도’는 신파 속 비련의 주인공으로 남는 대신 복수를 선택한다. 복수의 결말은 비극이다. 비극의 순간 들리는 대사는 흔히 아는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가 아니다.

문어체를 속사포처럼 읊고 피식피식 웃게 하는 고선웅식 유머는 이 작품에도 곳곳에 녹아있다. 절제된 감정과 밀도 깊으면서도 리듬감이 더해진 대사는 과한 신파 없이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작품 마리 홍도가 걸어 나가는 붉은 꽃길은 장관을 이룬다.

‘홍도’역은 초연에도 출연한 예지원과 함께 영화와 TV 등에서 주로 활약하는 박하선, 마방진 단원 최하윤이 캐스팅됐다. 정보석은 유병훈과 함께 광호 아버지 역을 연기한다.

이 작품은 26일까지 서울 공연을 이어간다. 다음달 부터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대구 수성아트피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포항문화예술회관,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부산시민회관, 안성맞춤아트홀 등 전국 7개 도시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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