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고려대의료원, AI 스마트 시스템으로 미래의학 선도한다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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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병원의 미래병원 청사진
진료의 질, 행정 효율 획기적 향상
안암·구로·안산·동탄 쿼드체제 가동
“환자에게 집중하는 환경 설계 목표”
박홍석 본부장은 “병원 시스템이 효율적이면 의료진이 환자에게 집중해 더 안전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성욱 객원기자
병원에 가면 늘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의사는 환자보다 모니터를 더 오래 바라본다. 과거 기록을 찾고 검사 수치를 확인하며 약물 정보를 검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걸 처리하다 보면 환자와 눈 맞추고 설명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고려대학교의료원이 기존 병원의 한계를 넘어서는 미래병원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2035년 개원을 목표로 하는 고려대 동탄병원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과 스마트 시스템을 설계 단계부터 적용하는 새 병원 건립에 들어갔다. 목표는 의사의 시간을 환자에게 돌려주고, 병원이 환자보다 먼저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박홍석 고려대의료원 의학지능정보본부장은 “환자 한명 한명을 중심으로 병원이 집중하는 운영체제를 가동할 것”이라며 “기존과는 전혀 다른 진료 경험을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동탄병원에는 병상과 수술실, 환자 동선을 AI가 한눈에 파악하고 조정하는 ‘디지털 커맨드 센터’가 구축된다. 여기에 스스로 판단해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틱 AI’가 결합한다. 환자의 상태와 병원의 상황을 동시에 분석해 병상 배정과 검사 일정, 수술 순서를 실시간 초 단위로 조정한다. AI가 진료 준비를 맡으면 예약부터 진료·검사, 결과 확인까지 끊김 없이 연결된다. 이른바 심리스(Seamless) 진료다. 병원을 컴퓨터 속에 옮겨놓고 미리 돌려보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운영의 효율성·안전성을 높일 계획이다.
예약부터 검사까지 원스톱 진료
AI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작동한다. 환자의 과거 기록을 요약해 제공하고, 필요한 검사 결과와 복용 중인 약물을 정리한다. 수시로 개정되는 최신 치료 지침과 급여 기준을 빠르게 찾아준다. 신규 간호사나 직원은 병원 규정과 업무 인수인계를 챗봇을 통해 습득한다. 박 본부장은 “행정과 기록 업무에 들어가는 노동력을 80% 이상 줄여 의료진이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설명했다.
긴 기록을 이해하고 요약해 주는 AI 기술,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진료의 질을 높인다. 다양한 진료과에 흩어진 환자 기록을 하나로 묶어주고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준다. 여러 질환을 앓고 복용하는 약이 복잡한 환자일수록 효과는 커진다.
여기에 ‘검색 증강 생성(RAG)’ 기술이 더해진다. AI가 병원에 축적된 데이터를 먼저 검색한 뒤 그 범위 안에서만 답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의료 분야에서 우려되는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 이른바 환각을 예방하는 장치다. 박 본부장은 “구글 계열의 의료 특화 AI 모델인 메드젬마(MedGemma)를 활용한다. 이는 의학 지식과 임상 데이터를 중심으로 학습된 모델이며 의료 환경에 맞는 정보 정리와 분석에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진료실 풍경을 바꾼다. 음성 인식 기반 전자의무기록이 도입되면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AI가 실시간 기록으로 정리한다. 의사는 키보드를 치지 않고 환자를 바라보며 설명할 수 있다. 환자는 모니터 대신 의사의 얼굴을 보게 된다. 지금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병실에서도 변화는 이어진다. 환자의 상태는 실시간 대시보드로 확인되고, 침대 주변 센서는 작은 움직임까지 감지해 낙상 위험을 사전에 알린다. 환자가 호출 버튼을 누르기 전에 병원이 먼저 반응한다. 동탄병원은 상황에 따라 시설 형태를 바꾸는 유연한 병원으로 설계된다. 감염병이나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병동을 빠르게 전환하고, 새로운 의료 장비를 별도의 공사 없이 바로 연결하는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을 적용한다.
맞춤·희귀난치 질환 연구 확장
스마트 AI 기술은 동탄병원뿐 아니라 안암·구로·안산병원에 함께 적용된다. 병원 내부에는 인공지능 연산에 특화된 전용 반도체(NPU) 기반 플랫폼을 구축한다. 이를 통해 환자 데이터 분석과 업무 처리를 실시간으로 수행한다. 대규모 데이터 학습은 별도로 이뤄진다.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 데이터센터에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기반 중앙 AI 허브를 구축한다. 의료 데이터를 학습하고 병원 환경에 맞게 고도화할 계획이다.
동탄병원은 안암·구로·안산 병원과 연결되는 ‘쿼드 체제’를 구축한다. 한 병원에서 축적된 AI 학습 결과와 데이터가 다른 병원에 공유된다. 하나의 병원이 발전하면 전체 병원이 함께 발전하는 방식이다. 박 본부장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데이터를 공유하며 성능이 향상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며 “정밀한 맞춤 진료와 희귀난치 질환 연구가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 데이터는 진료 기록 같은 텍스트뿐 아니라 CT·MRI 영상, 병리 이미지, 유전자 정보까지 형태가 다양하다. 고려대의료원은 이를 한곳에 모으는 대신 필요할 때 연결해 사용하는 ‘데이터 메쉬’ 방식을 채택했다. 박 본부장은 “민감한 정보는 병원 내부에 두고, 분석이 필요한 데이터는 클라우드를 활용한다. 보안과 활용을 동시에 고려한 설계”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협력도 본격화됐다. 고려대의료원은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보건의료 정보관리시스템협회(HIMSS 2026)’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 등과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AI 기반 병원 구축을 위한 실무 단계에 들어갔다.
박 본부장은 “기술이 뒤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며 병원을 움직이고, 그 결과로 남는 시간은 환자에게 돌아간다”며 “의료진이 행정 업무에서 벗어나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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