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금으로 쓴 『금강경』, 5월 13일 서울에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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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應無所住 而生其心)”

『금강경』의 이 한 구절은 천오백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손끝에서 거듭 태어났다. 먹으로, 펜으로, 금으로 종이 위에 새겨진 글자는 경전이 되었고, 쓰는 행위는 곧 깨달음을 향한 여정이었다. 중국의 자이샹룽(翟向荣) 선생은 그 여정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서예가다.

자이샹룽 선생은 『금강경』 전권 5175자를 순금으로 필사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글쓰기를 통한 수행(以書入道)’이라는 동양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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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880cmx48cm 금강경 5175자를 금으로 쓴 작품이다. 이번 서울 전시회의 메인 작품이다.

금으로 쓴다는 것은 먹으로 쓰는 것과 다르다. 먹은 스며들고 번지며 종이의 결을 따라 흐르지만, 금은 스며들지 않는다. 금덩어리를 미세한 분말로 갈아 아교와 섞는다. 되직한 안료는 무겁다. 붓끝에 매달리는 금의 무게는 먹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먹은 흐르지만, 금분은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려는 것을 붓의 탄력으로 끌어올려 종이 위에 얹는다.

입자가 무거운 탓에 붓의 속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획은 끊긴다. 번짐이 없기에 필획의 시작과 끝에서는 손가락 관절의 미세한 떨림까지 그대로 드러난다. 먹에 허락되던 가벼움은 금에는 허락되지 않는다. 한 획은 반드시 한 번에 완결되어야 하며, 완결되지 못한 획은 되돌릴 수 없다.

금은 빛을 온전히 끌어안는다. 보는 각도에 따라 획의 두께가 달라 보이고, 그림자의 방향이 바뀌면 글자의 무게 또한 달라진다. 글씨는 평면 위에 쓰였지만, 금은 그 평면에 머물지 않는다. 빛이 닿는 순간, 글자는 종이 위에서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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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에 도를 담다' 한중 문화교류 특별전시, 자이샹룽 서예전〉이 5월 13일 중앙일보 21층 다목적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중국 서예사에서 금으로 불경을 쓴 사례로 문헌과 실물이 함께 확인되는 두 작품이 있다.
하나는 당나라의 것이다. 측천무후의 필경사 정대빈(程待賓)은 기원 672년, 금으로 『금강경』을 필사했다. 글자 한 자의 크기는 약 1.5㎝, 5500여 자가 길이 620㎝의 두루마리에 정연하게 놓였다. 측천무후는 어머니의 복을 빌기 위해 이를 명했고, 완성된 경전을 보물처럼 곁에 두었다. 이 작품은 현재 중국 간쑤성 가오타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다른 하나는 명나라 문정명(文征明)의 작품이다. 그의 나이 여든일곱, 주름진 손으로 비단 위에 붓을 들어 올렸다. 파리 머리만 한 소해(小楷)로 5000여 자를 써 내려 갔다. 이 작품은 현재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리고 올해 서울에서 공개되는 자이샹룽 선생의 작품은 그 계보를 잇는다. 현대 동양 미학으로 재해석된 그의 작업은 천 년에 걸쳐 이어진 금서(金書) 『금강경』의 희귀한 흐름을 오늘로 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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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씨반(散氏盘) 230cmx65cm. 서주 말기 청동기 내부 바닥에 19행 357자로 새겨진 문장이다. 산씨에게 토지를 양도한 내용을 기록한 사료로서 중국에서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토지 계약서다.

자이샹룽의 서예는 동진 시대 ‘서성(書聖)’ 왕희지의 계보를 따른다. 그는 서예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중화(中和)’, ‘기운(氣韻)’, ‘자연(自然)’을 바탕으로 필획에 수행의 정신을 담아낸다. 왕희지가 평생 구현하고자 했던 ‘글쓰기 곧 수행’이라는 이상을 『금강경』 필사에 온전히 녹여냈다. 한 획 한 획은 글씨의 기승전합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스리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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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야희우(春夜喜雨) 230cmx62 cm 당나라 시인 두보가 쓴 밤에 내리는 반가운 봄비를 초서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또 틈날 때마다 양손으로 글을 쓰는 수행에 몰두한다. 이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다. 기교는 박수갈채를 좇지만, 그의 양손은 결코 박수를 향하지 않는다. 반세기 동안 단련되어 경지에 이른 오른손의 필력을, 익숙지 않은 왼손 서예를 통해 다시 마주하며 스스로를 낮춘다. 그는 이 과정을 ‘중용’이라 부른다.

다음 달 13일, 서울 중앙일보 사옥 21층에서 자이샹룽 선생의 서예전 ‘묵향에 도를 담다’ 한중 문화교류 특별전시가 열린다.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전시다. 금분을 갈아 한 획씩 올려 쓴 5175자의 금자 『금강경』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평생 축적된 필기(筆氣)가 담긴 작품 18점이 나란히 전시된다. 한중 서예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뜻깊은 자리이자 금으로 쓴 경전을 눈앞에서 만나는 드문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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