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세계 중앙은행 무력화, 미국의 경제리더십 붕괴”...미·이란 전쟁 7주의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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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 모습. AFP=연합뉴스

미·이란 전쟁이 7주째 접어들며 세계 경제 ‘공조의 시대’가 저물고 ‘각자도생의 시대’의 막이 올랐다. 군사적 충돌과 외교적 협상이 반복될 때마다 시장이 출렁이면서, 지정학적 충격에 대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대응 여력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 달러 수혈에 나서며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미국의 리더십마저 붕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식이 공유됐다. 이 자리에서 각국 중앙은행 총재는 전쟁으로 인해 물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점과, 이에 대한 통화정책 대응의 한계를 사실상 인정했다. 로이터는 “참석자들이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즉각적인 물가 압력을 금리 정책만으로 억제하기는 어렵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실제 2월 말 전쟁 발발 이후 유가 상승이 물가를 다시 자극하면서 각 중앙은행은 대응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세가 지난해 들어 둔화하며 금리 인하 기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약 2~3%)에 근접한 시점에서 다시 전쟁이 발생하면서 흐름이 뒤집혔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3월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3.3%)은 근원물가 상승률(2.6%)을 크게 웃돌고 있다. 근원물가는 외부 변수에 따라 크게 출렁이는 석유류와 식품류를 빼고 산출하는 물가 지수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하더라도 유가와 같은 외부요인 때문에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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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또 이미 높은 금리 수준을 고려할 때 금리 추가 인상은 경기 둔화를 촉진할 우려가 있다.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위축되고, 내리면 물가가 자극되는 딜레마 속에서 세계 중앙은행의 정책력에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블룸버그는 “중앙은행이 2021년 인플레이션 예측에 실패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경기 침체를 자초하는 정책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전했다.

또 하나의 변화는 국가 간 공조 약화와 미국의 경제 리더십 붕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은 양적완화(QE)를 도입하며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했고, 주요국 중앙은행도 이에 발맞춰 ‘글로벌 양적완화’ 흐름을 형성했다. 미국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도 달러 수요가 급증하자 기존 5개국 외에 한국·호주·브라질·멕시코 등과 한시적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며 달러 공급자 역할을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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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 속에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가 달러 유동성 지원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위기 때마다 달러를 풀고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며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 역시 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 속에서 통화 완화에 나서기 어려운 데다, 금리 정책과의 충돌로 인해 정책적 선택지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달러 공급이 제한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은 강달러 흐름에 대응해 외환보유액을 써가며 환율 방어에 나서는 모습이다. 한국의 3월 외환보유액은 4236억6000만 달러로 전월 대비 39억7000만 달러 줄었는데, 11개월 만에 최대 폭 감소다. 일본 외환보유액도 같은 기간 359억6800만 달러 줄었다. 인도 역시 2월 말 사상 최고치(약 7285억 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이 400억 달러 이상 줄며 3월 27일 기준 6881억 달러 수준으로 내려왔다. 워싱턴 D.C.의 유력 싱크탱크인 아틀란틱 카운슬의 조쉬 립스키 지정학경제센터 소장은 “미국이 더는 국제 질서의 ‘지휘관’이 아니며, 항상 해결책을 제공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각국이 배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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