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신현송號 첫 출항…물가·환율·성장 ‘삼중고’ 넘을까
-
12회 연결
본문
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6.4.21/뉴스1
“중동 전쟁 이후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방 압력과 경기 하방 압력이 동시에 커졌고, 금융시장 변동성과 금융 불균형 위험도 지속하고 있다.”
21일 4년 임기의 첫발을 내디딘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취임사다. 정제된 발언이었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중동발 유가 충격에 따른 물가 상승에 성장 둔화, 고환율까지 겹친 ‘삼중고(三重苦)’에 한국 경제가 직면해 있다는 진단이다.
신 총재는 이런 복합 위기에 속에 흔들리는 한국 경제의 방향키를 쥐었다. 그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세계 경제의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규정했다. 이어 “지정학적 갈등과 인공지능(AI) 기술 혁명으로 세계 경제 질서가 대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국내 역시 인구 구조 변화, 양극화 심화, 부동산시장과 가계부채 문제로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기관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
실제 한국 경제는 뚜렷한 하방 압력에 직면해 있다. 중동전쟁 여파가 일부 반영되며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로 높아졌다. 원유 가격 급등 여파로 수입물가도 전월 대비 16.1% 올라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다. 153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종전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1470원대로 내렸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성장 둔화 우려는 커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을 2.1%에서 1.7%로 낮췄다. 캐피털이코노믹스(2.0%→1.6%)·씨티(2.4%→2.2%)·바클리(2.1%→2.0%) 등 주요 기관들도 잇따라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정책 환경은 녹록지 않다. 물가 상승과 환율 불안이 동시에 나타나는 가운데 성장 둔화까지 겹치며 통화정책 선택지는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물가만 보면 금리 인상 필요성이 커지지만, 내수 부진과 성장 둔화 때문에 인상 카드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신 총재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공황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중앙은행의 책무가 확대돼 온 것처럼 지금도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신 총재는 향후 정책 방향으로 네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우선 통화정책과 관련해선 “신중하고 유연한 운영을 통해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우며 말을 아꼈다.
다만 지난 15일 인사청문회에선 ‘물가와 성장 중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라는 질의에 “한국처럼 유가에 민감한 경제에서는 유가 충격이 상당히 큰 만큼 물가에 무게를 두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가 충격이 근원물가나 기대인플레이션으로 전이되면 통화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며 금리 인상 가능성도 열어뒀다.
신 총재는 이날 취임사를 통해 금융시장 구조 변화에 대응해 금융안정 정책은 강화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기존의 틀만으로는 금융시스템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시장 가격지표를 활용해 조기경보 기능을 강화하고, 비은행 부문과 부외거래까지 분석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원화 국제화와 디지털 통화 역시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신 총재는 “외환시장 24시간 개장과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 구축을 통해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겠다”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예금토큰 활용도를 높이고, 국제협력을 통해 디지털 지급결제 환경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중동 전쟁 이후 원·달러 환율 추이
이창용 전 총재가 추진해온 ‘구조 개혁 시리즈’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여러 구조적 문제는 통화정책 운영의 핵심 변수”라며 “한은이 관련 연구와 정책 제언을 지속해 우리 경제의 중장기 체질 개선에 기여하겠다”고 했다.
신 총재는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자녀의 여권법 위반 의혹 등 인사청문회 논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인사청문 과정이 순탄치 않아 국민께 심려를 끼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총재 임무 수행을 통해 평가받겠다”고 말했다.
최근 1년간 수입물가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시장에서는 다음 달 28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신현송 체제의 첫 시험대로 보고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통화정책의 효과 자체가 약해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구조적 문제를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만 의존해 해결하려는 접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