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80년 마지막 빗장 푼 다카이치, 필리핀·호주에 ‘무기 세일즈’
-
3회 연결
본문
해상 기동 훈련 중인 일본 해상자위대. 사진 미 태평양사
‘방패’에서 ‘창’으로…
일본이 21일 ‘방위장비이전 3원칙’과 운용지침을 개정한 것은 80년 넘게 지켜온 살상무기 수출금지의 전면 폐지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 뿐 아니라 동아시아 안보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다카이치, ‘5개 유형’ 봉인 해제
일본의 무기 수출금지는 전후 여러 해에 걸친 정치적 결단으로 축적된 결과였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총리는 1967년 공산권 국가, 유엔 결의로 무기 금수 대상이 된 나라, 분쟁 당사국에는 무기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무기수출 3원칙’을 표명했고, 1976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내각은 이를 전 세계로 확대했다.
빗장이 풀린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2014년 아베 신조 정권은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신설해 평화 목적에 부합하는 장비에 대해서는 수출을 허용키로 했다. 이에 따라 구난(救難), 수송(輸送), 경계(警戒), 소해(掃海·기뢰제거 등), 감시(監視) 등 5개 유형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수출길이 열렸다.
이어 2023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은 라이선스·기술 수출 범위를 확대하는 추가 개정을 단행했지만, 완성 살상무기 수출만큼은 풀지 않았다. 다카이치 내각의 이번 결정은 마지막 ‘봉인’을 해제한 셈이다.
중국·트럼프·우크라이나 전쟁
일본의 살상무기 수출 해금은 일본 방위력 증강과 우호국 확보라는 큰 그림 안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방산 사업은 단순히 무기를 파는 개념이 아니다. 무기를 거래하는 순간 사실상 안보 협력국이 되는 것”이라며 “방산 공급망과 함께 안보 관계에서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무기 정책 전환 배경에는 ① 중국의 위협 증대 ②트럼프 리스크 ③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 가지 요인이 꼽힌다.
2010년대 이후 중국이 남중국해·동중국해 전역에서 존재감을 강화하면서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긴장도 높아졌다. 특히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양국 관계가 극도로 악화하면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이카즈치의 대만해협 통과(17일)와 중국 루양 3급 미사일 구축함과 장카이 2급 프리깃함의 일본 규슈 남서부 해역 통과(21일)가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 군함 대만해협 통과 모습. 사진 CCTV 소셜미디어 위위안탄톈 캡처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정책도 적잖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집단방위의 공정한 몫’를 강조하는 가운데 일본에 대해선 ‘창(미국)과 방패(일본)’라는 전통적인 역할 분담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일본이 단순히 돈만 더 내는 게 아니라 미국의 생산 부족을 메우는 방산 파트너이자 실제 작전에 참여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며 “안보에서도 ‘스스로 지키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일본의 무장 강화는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방산 산업의 전략적 가치와 주변국과의 집단 방위 강화도 강조되고 있다.
일본의 전환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재무장을 선언한 독일의 ‘자이텐벤데(Zeitenwende, 시대 전환)’와 비교되는 배경이다. 양국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수십여년 군사력 행사를 자제해왔다.
다만 양국의 차이도 있다. 독일의 재무장은 주변국의 지지 속에 유럽연합(EU)이라는 틀 안에서 진행된 반면, 일본은 주변국과 역사갈등과 영토분쟁이 있는 상황 속에서 추진된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내에서도 이번 개정에 대해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21일 ‘살상병기 수출, 평화국가의 기둥이 무너졌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살상무기 수출 확대가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 노선을 실질적으로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이날 관련 기사를 통해 “수출 가능 여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심사하고, 수출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국회에 사후 통지하기로 했다”고 소개한 뒤, “미국은 일정 금액 이상의 장비를 수출할 때 상·하원 위원회에 사전 통지하는 제도를 두고 있으며, 의회가 수출 금지 공동결의를 채택하면 수출 허가를 발급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기 세일즈’ 나선 日
한편 일본은 적극적인 무기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18일 해상자위대의 ‘모가미’급 호위함 11척을 호주 해군에 수출하기로 했다. 약 9조5800억원 규모의 대형 계약이다.
호주의 리처드 말스 부총리 겸 국방장관(왼쪽)과 일본의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이 2026년 4월 18일 멜버른에서 일본이 모가미급 호위함 가운데 첫 3척을 인도하는 계약에 서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필리핀은 해상자위대의 중고 ‘아부쿠마’급 호위함과 육상자위대의 03식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중SAM)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또 중국시보 등 대만언론은 22일 대만이 일본과 군함 공동 건조를 위해 접촉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와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방위상도 일본의 연휴 기간인 5월 골든위크를 맞아 세일즈 외교에 나선다고 일본 언론들이 22일 보도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베트남과 호주, 고이즈미 방위상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방문해 이른바 ‘정상 세일즈’를 벌이겠다는 구상이다.
양욱 위원은 “무기 구매는 물론 성능도 중요하지만, 국가 간 관계가 큰 영향을 끼친다”며 “동남아는 그동안 한국 방산업계의 주요 시장이었지만, 그동안 일본이 막대한 정부개발원조(ODA)를 해왔던 만큼 앞으로는 일본 무기 수출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한국도 단순히 무기를 잘 만드는 데서 만족할 게 아니라 이를 통해 국제 질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단계까지 고려하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