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시작은 주부 동호인…지금은 프로볼링 여제
-
3회 연결
본문
동네 동호회에서 운동을 시작한 ‘볼링 여제’ 최현숙은 독학으로 여자 통산 최다승(16승) 고지에 오른 입지전적인 선수다. [사진 PBA]
“동네 ‘주부 볼링 동호회’ 출신인 제가 한국 프로볼링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볼링 여제’ 최현숙(49)이 자신이 작성한 국내 프로볼링 최다승(16승) 기록에 대해 담담히 밝힌 소감이다. 최현숙은 지난 2일 정읍 프로볼링대회 여자 개인전 정상에 오르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자 최다승 기록을 스스로 뛰어넘었다. 여자부 2위 윤희여(10승)에 6승 차로 앞서 있을 뿐만 아니라 남자부 1위 정태화(13승)보다도 3승이 많다.
여자 프로대회는 한 시즌 9차례 열린다. 매 대회마다 평균 150여 명의 선수가 출전한다. 상향 평준화 경향이 또렷한 종목이다 보니 배드민턴의 안세영(삼성생명)처럼 특정 선수가 우승을 독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 2016년부터 10시즌 연속(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즌 취소) 우승 이력을 쌓은 최현숙의 발자취가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최현숙은 “볼링은 대회장 분위기, 레인 특성, 볼 선택, 당일 컨디션 등 내외부적 환경과 변수가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이른바 ‘절대 고수’들이 넘쳐나는 정글 같은 곳에서 아마추어 출신으로 꾸준히 성적을 내 뿌듯하다”고 했다.
지난 2일 자신의 16번째 개인전 우승인 정읍 프로볼링대회 시상식 모습. [사진 PBA]
프로 선수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볼링에 입문한 뒤 체계적 훈련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했다. 최현숙은 보기 드물게 동호인 출신에다 ‘독학 볼러’다. 볼링에 입문한 것도 남들보다 한참 늦은 28세 때(2005년)였다. 경기도 안산 출신으로 결혼과 함께 광주광역시로 이주한 그는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방법을 찾던 중 볼링을 떠올렸다. 남편이 출근한 뒤 무료한 오전 시간을 달래기 위해 집 근처 볼링장을 방문했다가 ‘주부 아침 볼링 동호회’ 회원이 됐다.
한국에 시집온 뒤 남편을 따라 동네 당구장을 찾았다가 정상급 당구 선수로 성장한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우리금융캐피탈)처럼 최현숙도 볼링장에서 새 인생의 서막을 열었다. 볼링에 입문한 지 한 달 만에 평균 170점을 달성하며 ‘늦깎이 볼링 천재’로 주목 받았다. 최현숙은 “볼링 초짜가 여자 프로테스트 통과 기준(평균 190점)에 근접한 점수를 내는 걸 본 동네 아줌마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면서 “초등학교 때 육상과 공 던지기(보급형 투포환) 선수로 활동하며 팔과 하체 근력을 키운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후 최현숙은 주말마다 전국을 돌며 동호인 대회를 휩쓸었다. ‘상금 사냥꾼’이라는 이색 별명도 얻었다. 그는 “제가 뜨면 대회장이 술렁였다. ‘뭐 저런 아줌마가 다 있냐’는 수군거림이었을 것”이라며 “상금을 많게는 월 500만원까지 벌어봤다”며 활짝 웃었다.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한 뒤 지난 2012년 프로테스트에 합격하며 프로로 영역을 옮겼다. 하지만 전문적인 훈련은 꿈도 못 꿨다. 최현숙은 “주부 역할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밥 차리고 설거지를 마친 뒤 서점으로 달려가 볼링 관련 서적을 뒤지며 고급 기술을 익혔다. 연습은 오전에 2시간 정도 진행한 게 전부였지만, 대신 무섭게 집중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프로에서도 ‘아줌마 돌풍’은 멈출 줄 몰랐다. 2013시즌 신인왕과 최우수선수, 랭킹 1위까지 싹쓸이하며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이후 꾸준한 활약으로 국내 볼링계의 ‘GOAT(역대 최고)’로 자리매김한 그의 유일한 고민은 투구 폼이다. 전문적인 레슨을 받은 적이 없다 보니 “실력에 비해 폼이 엉성하다”는 지적에 시달린다. 최현숙은 “솔직히 화려한 폼을 지닌 선수들이 부럽다”면서도 “최근에 저를 따라하는 분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 후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미소 지었다. 통산 20승을 목표로 정했다는 그는 “평범한 주부인 저의 도전을 보며 전국의 아줌마들이 용기와 위로를 얻길 바란다”며 웃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