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Cooking&Food] 세대를 빚어온 ‘이북식 만두’ 친정의 온기 듬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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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빌려온 입맛 ④ 만두
손바닥 크기의 따뜻하고 슴슴한 맛
모든 재료 따로 익히고 만두피도 반죽
그리움이 묻어나는 ‘어머니의 음식’

출처: Gemini·GettyImagesBank
가보지 못한 곳의 맛이 내 취향이 될 때가 있다. 실향민 3세대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물려받은 ‘기억 속의 식탁’을 기록한다. 그 네 번째는 슴슴한 맛에 추억이 깃든 만두다.
내가 뱃속에 아이를 키우던 시절 다녔던 산부인과 앞에는 지금도 유명한 평양냉면집이 있었다. 당시에는 출산 이후의 삶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이곳을 여유롭게 다시 오려면 세월이 한참 흘러야 할 것 같아서(실제로 그러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틈이 있으면 꼭 들렀다.
그리고 매번 고민하다 욕심껏 남으면 포장을 할 각오로 냉면과 함께 만두를 주문했다. 차가운 육수를 면과 함께 연신 들이켜다 따뜻하고 슴슴한 이북식 만두를 한 입 베어 물고, 고춧가루물이 설핏 든 김치를 먹는 것이 만족스러운 식사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한 반복을 하다 배가 불러오면 절로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나에게 이북식 만두는 어머니다.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식, ‘어머니가 이걸 드시면 좋아하실 텐데’라고 애틋한 감정이 올라오는 음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어머니에게도 ‘어머니의 음식’이었다.
사과 재배에 북방한계선이 있듯이 만두 만들기에는 남방한계선 비슷한 것이 있어서 주로 북부 지방과 중부 지방에서 흔히 빚는다. 날씨가 추운 북쪽 지역에서 밀과 메밀을 많이 재배했던 것도 있고, 데치고 다진 재료를 섞어 만든 만두소는 온난한 기후로 올수록 쉬 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나고 자란 부산 또한 전형적으로 만두의 남방한계선이 내려오지 못한 곳이라 집에서 만두를 빚는 문화가 흔하지 않다. 나에게 만두란 집에서 찌고 구워서 먹는 시판 냉동만두, 혹은 시장에서 판매하는 동그랗고 말랑한 만두 정도였다.
나의 어머니는 함경남도와 원산에서 서울로 피난을 와 만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1·4 후퇴 때 내려와 한동안 머물렀던 부산으로 시집을 왔다. 김치에 들어가는 젓갈도 다르고, 육수를 내는 재료도 다른 부산에서 입맛에 맞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음식에 적응하던 어머니는 시집살이에 지칠 때면 장 보기를 핑계로 국제시장을 찾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시장 속의 만둣집, ‘원산만두’에 가기 위해서였다.

개성만두 궁에서 만두를 빚는 모습. [사진 정연주]
어느 날 시장 거리를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그리운 친정어머니의 고향 이름을 단 만둣집을 보고 홀린 듯이 들어간 어머니의 눈앞에 시장 할머니 여럿이 둘러앉아 빚는 손바닥만 한 이북식 만두가 보였다고 한다. 커다란 냉면 그릇에 넣어도 서너 개가 고작일 정도로 큰, 전형적으로 친정집에서 먹던 바로 그 만두. 점심시간이 되면 시장 상인들이 밥을 먹기 위해 밀려 들어와 ‘순만두’를 주문하고, 밥 조금과 김치를 곁들여 만두와 만둣국을 먹고 다시 일상으로 나아가는 그곳을 어머니는 삶이 서러울 때 들르는, 친정어머니를 마음껏 그리워하는 공간으로 삼았다.
내가 어머니의 행복한 표정으로 기억하는 이북식 만두는 실향민 가족에게는 일상 속의 이벤트다. 실향민 음식 취재를 위해 만나는 실향민 3세대들은 만두 이야기를 꺼내면 자잘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어쩐지 우리 어머니처럼 그리움이 묻어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취재하다 만난 한 실향민 3세대는 불평인 듯 추억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안도 만둣집의 메뉴. 만둣국
“만두 그거는 틈만 나면 빚었어요. 온 가족이 달라붙어서 숙주를 데치고, 두부를 짜고… 그리고 이상하게 만두를 빚다 보면 만두피가 꼭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다들 손을 멈출 수 없으니까 빨리 가게로 달려가서 만두피를 사 오는 건 내 몫이었죠. 얼마나 귀찮았는지.”
만두를 빚으려면 안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각기 따로 익히고 다지고 물기를 제거한다. 만두피까지 만들 경우에는 반죽해서 미는 사람도 필요하다. 준비한 만두피에 속 재료를 넣고 둥글둥글 빚어내는 과정에는 사람 손이 있는 만큼 필요하다. 그러니 자연히 김장처럼 모두가 함께 한 번에 대량 생산을 하게 된다. 다행히 만두는 한 번에 잔뜩 만들어도 냉동 보관해 오래도록 식사와 간식을 책임져 주는 음식. 다들 냉동실 안에 쟁반 가득 담은 만두를 얼리고 있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고들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평안도에서 오시고, 우리 어머니는 개성에서 오셨어요. 뭐가 제일 달랐냐고 하면 만두 크기이려나? 아버지가 빚은 만두는 손바닥만 하게 크고, 어머니가 빚은 만두는 자그마했지.”
이북에도 지역마다 특징이 있어서 보통 가장 만두를 많이 빚는 곳은 평안도와 황해도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커다란 이북식 만두는 평안도 지역의 음식으로, 고려 문화가 발달한 개성 지역에서는 보쌈김치처럼 섬세하고 특징적인 식문화가 성장했다. 귀한 재료를 넣고 네모난 모양으로 빚어 만들어 주로 여름에 차갑게 먹었다는 개성식 만두 편수도 그중 하나다.

평안도 만둣집의 메뉴. 만두전골.
한 집안에서 두 고향이 만두 크기로 공존했다는 한 실향민 2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식탁을 그려보았다. 이북에서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만두의 결이 먼 남쪽의 부엌에서도 그대로 살아있었던 것이다. 만두를 빚는 손의 모양, 소의 간을 맞추는 감각, 그 자리에서 나누던 말이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어 문화를 보존해 나간다.
이제 나의 어머니는 더 이상 애틋한 표정으로 만두를 먹지 않는다. 시집살이의 서러움이 지나간 자리에서 친정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만두는 그저 반갑고 즐거운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이북식 만두를 만나면 꼭 사진을 찍어 보내고, 친정에 내려가면 같이 만두를 먹으러 갈 계획을 세운다. 어머니가 다시 한번 환하게 웃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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