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직이 가장 최선의 전략? 결코 그렇지 않은 자연의 세계[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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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인간까지 속임수의 진화
리싱 선 지음
김아림 옮김
세종서적
옆줄무늬도마뱀의 일부 개체군에서 수컷들은 번식 전략에 따라 피부 색깔을 달리한다. 공격 성향이 강하고 암컷이 많이 서식하는 넓은 지역을 통제하는 당당한 수컷은 주황색, 공격성이 덜하며 좁은 지역에서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수컷은 파란색, 몸이 약해 암컷으로 가장한 수컷은 노란색을 띤다. 이처럼 피부색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맞춰 번식 환경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일종의 교활한 속임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책뻐꾸기의 알(화살표로 표시)은 유럽의 세 지역에서 각각 세 종류 숙주의 알을 모방한다. 왼쪽부터 헝가리큰개개비, 핀란드붉은꼬리딱새, 체코개개비의 알들 사이에 뻐꾸기 알이 놓여 있는 모습, [사진 세종서적]
뱀이 다가가면 상당수의 도마뱀은 죽은 척 속인다. 뱀은 죽은 사냥감에 매력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뻐꾸기는 유럽개개비, 바위종다리, 알락할미새 등의 둥지를 급습해 알을 자신의 걸로 바꿔치기하는 속임수 수법의 대가다.
『자연에서 인간까지 속임수의 진화』의 저자인 리싱 선은 생물의 세계에서는 이처럼 속임수나 기만행위가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생존과 번식을 가장 중요시하는 생물들은 애초부터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진화적 명령에 따른다는 것이다. 미국 센트럴워싱턴대 교수로 동물행동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다양한 생물들의 수없이 많은 속임수 사례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그 스토리들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죽은 나뭇가지를 모방하는 참가지재주나방. [사진 세종서적]
방어 능력이 없는 박각시나방의 애벌레는 커다란 가짜 눈 무늬로 자신을 뱀 같은 위험한 동물로 보이게 해 포식자를 속이고 쫓아낸다. 뇌와 뉴런이 없는 식물인 난초 400여 종은 암컷 곤충의 냄새와 생김새를 모방해 열성적으로 짝짓기 기회를 노리는 수컷 수분 매개자를 기만하고 속인다. 난초의 꽃가루를 퍼뜨리는 데 매우 효과적인 기만 전략이다.
균류인 송로는 멧돼지의 페로몬을 모방한 안드로스테놀이라는 스테로이드를 방출한다. 암컷 멧돼지가 송로의 냄새를 감지하면 그 근원을 찾아 땅을 마구 파헤친다. 이는 송로의 포자가 널리 퍼져 잘 번식하도록 돕는다.
나뭇가지로 위장한 도롱이 나방. [사진 세종서적]
심지어 같은 개체 안에서도 부정행위가 발생한다. 암세포는 몸속 다른 세포와 협력할 의무를 저버린 사기꾼 세포들이다. 암세포는 협력하는 대신 모든 자원을 집어삼켜 스스로 증식한다. 동물, 식물, 균류, 박테리아, 바이러스, 염색체, 유전자, DNA 조각 등 생물학적 계층의 모든 영역에서 속임수와 부정행위는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다. 생물계의 진화는 윤리적인 선호, 명예로운 규범, 가치 체계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직 실용적으로 진행되는 비도덕적이고 무자비한 과정인 셈이다. 자연에서 정직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기만이 더 유리한 전략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은이는 속임수가 기본 생존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신뢰와 정직성이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원리도 발견해 냈다. 정직은 속임수와의 경쟁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대응 전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왕판다의 위장. 흰 털이 눈 덮인 배경에 녹아들어 몸의 윤곽선이 흐려진 모습.[사진 세종서적]
이 책은 자연을 넘어 인간 사회에도 만연한 속임수와 이에 대응하는 정직의 공존관계를 탐구한다. 속임수가 일상인데도 불구하고 생태계와 사회가 무너지지 않는 해답을 정직과의 ‘진화적 군비 경쟁’에서 찾는다. 지은이는 정직을 속임수가 사라진 뒤 생겨난 미덕이 아니라 속임수와의 경쟁 속에서 진화적으로 선택된 전략이라고 말한다.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박쥐의 무리는 ‘정직’이라는 내부 메커니즘을 작동해 승리를 거두는 모범적인 사례로 꼽혔다.
지은이는 속임수나 사기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것을 실질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반사회적 속임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동시에 생물학적·문화적으로 혁신을 일으키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악의적인 속임수와 사기가 없었다면 사이버 보안 산업이 싹을 틔우고 성장해 꽃을 피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두려움이나 좌절 없이 속임수와 부정행위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들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권고한다.
이 책은 찰스 다윈이 약간은 간과한, 속임수와 정직 간에 벌어지는 진화적 군비 경쟁의 오묘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강연한다. 학교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삶의 지혜가 가득 담긴 이 책 속으로 탐구 여행을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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