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의 ‘중동 3대 전쟁’ 성패 가른 이것…이란전은 난이도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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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대 중동전쟁 통해 본 이란전
지난 2월 말 시작된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25일로 57일째를 맞았다. 그간 미국과 이란은 전쟁 종식을 위해 휴전을 하면서 협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강대강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종전 협상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발전소와 교량 등 핵심 인프라를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 역시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봉쇄를 고집하면서 “전쟁을 끝내는 것은 이란이지 미국이 아니다”며 맞서고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치킨게임 형국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 전쟁은 자칫 레임덕으로 빠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지난 1990년 이후 중동과 인근 지역에서 치른 세 차례의 큰 전쟁을 통해 이번 전쟁이 갖는 의미와 전망 등을 분석해봤다.

걸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위에서부터).
미국이 중동과 인근 지역에서 벌인 주요 전쟁은 걸프전,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 등 3개다. 이 전쟁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엇갈린다. 걸프전은 성공적이었다고 보는 반면, 아프간전에 대해선 실패한 전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라크전의 경우 초기엔 성공적이었지만 이후 실패했다는 시각이 많다.
이처럼 각기 다른 평가는 ▶전쟁 명분의 정당성 ▶국제사회의 지지 ▶전쟁의 목적 달성 ▶전후 당사국에 평화 정착 ▶짧은 전쟁 기간으로 인적·물적 피해의 최소화 등에 달려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이라크전 뒤 내전… 테러세력 성장 토양

조지 H W 부시
걸프전은 미국이 이슬람권에서 벌인 전쟁 중 가장 성공적인 전쟁이다. 당초 이 전쟁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부터 시작됐다. 1990년 8월 2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은 쿠웨이트를 기습해 점령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에 91년 1월 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할 요구했지만 후세인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해 1월 17일 미국을 비롯해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34개국으로 구성된 다국적 연합군이 투입돼 ‘사막의 폭풍 작전’을 벌였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연합군이었다. 약 6주간 전투 끝에 연합군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내고 해방시켰다.
걸프전이 성공한 전쟁으로 꼽히는 이유는 실제 전투 기간이 6주에 불과한데도 이라크군을 궤멸시켰고,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전쟁 명분인 침략국에 대한 응징도 확실했다. 또 흐트러진 중동의 질서도 걸프전을 통해 다시 잡았다.

조지 W 부시
미국이 벌인 전쟁 중 대표적인 실패 사례 중 하나가 아프간전이다. 이 전쟁은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시작됐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에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를 축출하고 수장인 오사마 빈라덴을 미국에 넘길 것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그해 10월 7일 ‘항구적 자유작전’이란 이름을 내걸고 아프간을 침공했다. 2개월 만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빈라덴을 중심을 한 알카에다 세력을 소탕하는 데는 실패했다. 탈레반 정권의 붕괴에도 불구, 잔존 세력들은 여전히 아프간 곳곳에 건재했다. 이후 아프간전은 남아 있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세력들과 맞서는 비정규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결국 미군은 2011년 5월 빈라덴을 찾아내 사살에 성공했지만, 철수를 결정하지 못했다. 탈레반 세력이 다시 세를 불리면서 전국 곳곳을 장악해 미군이 철수할 경우 치안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원한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도 이같은 불안한 정국을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이후 10년 동안 아프간에서는 미군과 탈레반의 비정규전이 펼쳐졌다. 그러나 미국은 장기전으로 인한 전쟁 피로감과 전비 부담, 국내 여론 악화 등으로 결국 2021년 8월 30일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직후 탈레반 세력은 다시 정권을 잡았다.
아프간전이 실패한 전쟁으로 꼽히는 이유는 우선 20년에 달하는 전쟁 기간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그 기간 동안 전쟁 피로감은 물론 막대한 인적·물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인해 아프간은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했지만, 결국 아프간을 바꾸는 데 실패한 것이다. 아프간전은 장기전의 수렁에 빠지면 헤쳐나올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전쟁이었다. 결국 빈라덴 사살과 알카에다에 타격을 준 것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전쟁이었다.
이라크전에 대한 평가는 전쟁이 전개되는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명분은 대량살상무기(WMD)를 찾아내 제거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가 WMD를 개발해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중동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큰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라크가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있다고도 했다. 미군이 ‘이라크 자유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전쟁은 한 달 만에 주요 전투가 끝나는 등 단기전 양상을 보였다. 2003년 4월 9일에는 미군을 앞세운 연합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했다. 그해 5월 1일 부시 대통령은 핵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함에서 “주요 전투 작전은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그해 12월 13일 고향이 티크리트 인근 지하 구덩이에서 미군에 의해 체포됐다. 여기까지는 성공적인 전쟁이었다. 이후 전쟁이 끝나는 2011년까지 이라크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부시 행정부는 끝내 WMD를 찾아내지 못해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잃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후세인 정권의 몰락으로 생긴 권력의 공백은 종파 간의 내전을 일으켜 많은 희생을 야기했다. 이런 혼란을 틈타 이라크 내에서는 다양한 테러 세력들이 성장했다. 한때 크게 번성해 국제적으로 큰 위협이 됐던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의 근거지도 이라크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군이 철수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라크에서는 종파와 정파 간 갈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하는 이유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그렇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아 결론적인 평가를 내리긴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국제 질서를 깨뜨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에서 비롯된 전쟁”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앞선 중동에서의 전쟁에 적용한 기준으로 분석을 해봐도 이번 전쟁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전문가 “이란전, 트럼프 독단에서 비롯”
첫째,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중단을 위한 핵 프로그램 폐기’와 관련해선 미국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국가대테러센터(NCTC)의 수장인 조 켄트는 지난달 “이란의 위협이 침공을 할 만큼 급박하지 않았다”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사표를 냈다. 시간을 두고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협상을 하는 도중에 허를 찌르는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최근 입소스와 로이터통신의 미국 내 설문조사에서도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0%에 달했다.
둘째, 이란전쟁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며 참전을 거부했고,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군사 기지를 미군이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꺼리고 있다. 셋째, 전쟁 목표의 달성 여부도 불투명하다. 당초 이란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 중단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양측은 현재 관련 협상에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넷째, 전후 이란 내 평화 유지 및 안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란의 신정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만큼 내전 등 평화를 위협할 만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작다. 다섯째, 짧은 전쟁 기간으로 피해의 최소화는 현재로썬 장담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맹공을 퍼붓겠다는 경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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