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중 권력’ 깨진 혁명수비대…美압박이 키운 협상 최대변수

본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익숙한 표현이다. 최근 전쟁과 휴전, 대미 협상 국면에서 드러난 이란 정치 내부의 모습도 이와 닮았다. 온건파(금성)와 강경파(화성) 간 균형이 무너지며 정치가 빠르게 강경 일변도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온건파는 개혁·온건·실용주의 성향을 포괄하며 체제 내 점진적 변화와 서방과의 협력을 추구한다. 반면 강경파는 원리주의 진영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축으로, 반서방 노선과 혁명 가치 수호를 내세운다. 최근에는 내부 이견이 억눌리고 체제 결속이 강화되면서 강경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bt23d0f13fdd7fc6040e2468c38dafb21a.jpg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 중앙포토

이런 변화는 미국과의 휴전 속 협상이 병행되던 4월 더욱 선명해졌다. 4월 초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유화 메시지는 반나절 만에 삭제됐고, 중순에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이 타협 가능성을 언급한 직후 ‘배신자’로 낙인찍히며 쿠데타설까지 거론됐다.

외부 평가도 일치한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을 “안전밸브가 없는 단일 엔진 폭격기”로, 미 싱크탱크 아랍센터는 “화성과 금성의 충돌”로 규정했다. 또 다른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역시 “포위된 요새 국가”라고 평가하며, 외부 압박 속 내부 결속 강화 현상을 지적했다.

btca1063b3ded56dcea4af29d6b6ad4ae1.jpg

지난 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한 시민이 반미·반이스라엘 벽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 정치의 재편은 ‘이중 권력 균형’의 붕괴 과정으로 읽힌다.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제5대·1997~2005년 재임)과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제7대·2013~2021년 재임)이 이끈 온건파는 이슬람공화국 체제 안에서 점진적 개혁과 서방과의 협력을 추구해 왔다. 2015년 미국 등과 체결한 핵합의(JCPOA)는 이러한 노선을 보여주는 대표적 성과였다.

하지만 2020년 총선을 계기로 온건파는 급격히 위축됐다. 후보 자격 박탈과 선거 패배로 기반이 약화됐고,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는 “개혁운동을 로하니에 의존한 것을 후회한다”는 내부 평가를 전했다. 영국 가디언도 이들을 “산소 마스크를 잃어버린 실용주의자들”로 표현했다.

bt934825ffc4c641921681ca6e0bc79152.jpg

2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북부의 한 공원에 이란 국기와 고(故)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젊은 시절 초상화로 장식된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AFP=연합뉴스

반면 강경파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1989~2026년)와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제8대·2021~2024년), IRGC를 축으로 결집했다. ECFR은 이 중에서도 초보수 성향의 파이다리(이슬람혁명안정전선)를 핵심 세력으로 지목했다. 2012년 설립된 파이다리는 서방과의 핵협상에 강하게 반대하며 군사력 중심의 대외 전략을 선호하는 초강경 보수 정치 그룹이다. 이슬람 성직자인 마흐디 미르바키리가 이 그룹의 정신적 지도자로 알려져 있으며, 하메네이의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 그룹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공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경제·안보·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bta61ae2518ec1ec71f4e3164fdb00443e.jpg

파이다리의 정신적 지도자 마흐디 미르바키리. 사진 위키피디아

다만 강경파 내부에서도 갈리바프 국회의장(전 테헤란 시장·혁명수비대 출신)처럼 비교적 실용적 성향을 보이는 인물은 이견을 드러내며 균열도 존재한다.

현재 권력의 큰 틀은 여전히 온건파와 강경파 대립 구도로 수렴된다. 임시지도위원회와 갈리바프 국회의장·모하마드 목베르 전 제1부통령 축은 비교적 협상에 열려 있는 온건파로,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 중심 세력은 핵 개발 불사와 대미 양보 불가를 주장하는 강경파로 분류된다.

bt436c36a318d3de4ce1fb15e4dbf4f745.jpg

3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 카디미야 지역에서 열린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이란 국기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깃발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핵심 변수는 IRGC다. 미국의 압박이 강화될수록 권력 핵심이 ‘내부자’ 중심으로 재편되며 이들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이란 내부의 조율된 소통 부재와 혁명수비대의 파편화된 지휘 체계가 협상의 최대 변수”라며 “전쟁 이후 수뇌부가 제거되면서 지역 단위 자율 지휘체계, 이른바 ‘모자이크식 분산 구조’로 전환됐다. 중간급 지휘관들이 협상과 별개로 무력 행동을 이어가며 협상 대표부에 저항하는 양상”이라고 짚었다.

이는 정치·외교적 판단과 현장 군사 행동 간 괴리가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장 센터장은 또 “강경파는 핵개발 불사와 대미 양보 불가라는 교조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협상 진전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온건파가 주변화되면서 정책 유연성은 약화됐고, 대외 정책 역시 더욱 강경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관련기사

  • 복면 쓴 채 사다리 타고 돌격…이란 ‘호르무즈 선박 나포’ 장면 공개

  • 트럼프는 이란 전력 궤멸했다는데…혁명수비대 비대칭 전력은 건재

  • 이란의 협상 거부, 그 뒤엔 군부 강경파 3인방

  • '천국의 열쇠' 건 소년병 시신, 그 피 먹고 큰 이란 혁명수비대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5,345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