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패전 80년 금기 깨는 다카이치…평화헌법 봉인해제 ‘위험한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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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4월 22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야코프 밀라토비치 몬테네그로 대통령과 회담하기 전 미소를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후(戰後) 80년간 일본을 떠받쳐온 ‘평화헌법’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패전 이후 일본은 교전권을 포기하고(헌법9조), 무기 판매도 허용되지 않았으며(‘무기수출 3원칙’), 핵무기 개발은 물론 반입까지 봉인한(‘비핵 3원칙’) 나라였다. 하지만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내각이 들어선 지 반년 만에 패전 이후 그간 일본의 정체성을 규정해 온 봉인들이 하나둘 풀려가는 중이다.
무너지는 빗장들
최근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분야는 무기다.
다카이치 내각은 21일 ‘방위 장비 이전 3원칙’과 운용지침을 개정해 구조·수송·경계·감시·소해의 비살상 5개 분야로 묶여 있던 무기 수출 빗장을 사실상 전면 해제했다. 또, 교전 국가에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중고 무기를 동남아시아에 무상 혹은 저가로 양도하는 법안과 미국과 합작으로 드론 생산도 추진 중이다. 방위비 역시 GDP 대비 2% 목표를 당초 계획보다 이른 2026년에 조기 달성하겠다고 공식화했다.
‘핵무기를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도 균열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2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막한 NPT(핵확산금지조약) 재검토회의에 구니미쓰 후미노(國光文乃) 외무부(副)대신을 대표로 파견해 논란이 일었다. 이전 회의가 열린 2022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총리가 출석했던 것에 비하면 ‘격하’된 모양새라는 게 일본 언론들의 해석이다.
2025년 6월 24일 일본 북부 홋카이도 히다카 지구 신히다카에 있는 육상자위대 시즈나이 대공사격장에서 해안 방향으로 ‘88식’ 미사일 1발이 시험 발사되는 모습. 기하라 미노루 일본 관방장관은 2026년 4월 21일 일본 정부가 수십 년 된 무기 수출 규제를 완화해 살상 무기의 해외 판매 길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마이니치신문은 27일 “일본은 지금까지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NPT를 국제적 핵군축·비확산을 위한 가장 중요한 틀로 중시하고 논의를 주도해 왔다”며 “그러나 일본도 안보 환경의 악화를 이유로 방위 정책을 크게 전환하고 있어, 언제까지 ‘리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여기에 연립 정권의 한 축인 일본유신회는 미·일 양국이 핵무기를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 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반입하지 않는다’에 대해선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각(一刻)의 유예도 없다”
다카이치의 속도전은 이제 발걸음을 떼었다는 시각이 많다.
다카이치 총리는 당초 내년 개정이 유력시됐던 안보 3문서 개정도 올해로 앞당겼다. 27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첫 전문가회의에서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 일각의 유예도 없다”고 강조했다. 자위대의 헌법 명기도 13일 “때가 왔다”며 내년 봄까지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속도전에는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 성향과 총선 압승이라는 내부 요인도 있지만, 외부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이란 전쟁으로 국제사회의 이목이 중동에 묶이고, 미국도 인도·태평양에서 전력자원을 재배치하면서 일본이 그 공백을 스스로 메워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대만해협 긴장 고조, 미국의 동맹국 군사비 압박 등이 일본 안보 담론의 토양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 내부의 저항이나 국제 사회의 견제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2026년 4월 21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이 해외에 무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편 일본 국민들은 다카이치 정권을 지지하면서도, 급격한 변화에 대한 불안감도 표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27일 공개한 전국 유권자 1827명 대상 우편조사 결과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응답이 83%, ‘흔들리지 않는다’는 14%에 그쳤다. 또, 3월 NHK 조사에서도 살상무기 수출 해금에 반대(53%)가 찬성(32%)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가 4월 24~26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69%로, 3월 조사보다 3%포인트 하락했으나 여전히 견고한 흐름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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