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입 가리는 자, 가리지 않고 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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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피카 잔루카 프레스티아니(오른쪽)가 지난 2월 레알 마드리드전 도중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왼쪽)에게 항의하며 입을 가리고 있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이런 제스처는 퇴장까지 당할 수 있다. [AFP=연합뉴스]
입을 가리면 퇴장이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선 상대를 발로 차거나 꼬집는 것보다 입을 가리는 게 더 큰 죄일 수 있다.
축구 경기 규칙을 제정하는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29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특별 회의에서 “상대 선수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입을 가리는 선수에 대해 퇴장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경기 규칙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판정에 항의하며 그라운드를 이탈하는 선수 또한 레드카드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고쳤다”고 전했다.
IFAB는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중심이 돼 각 대륙별 연맹과 각국 축구협회, 클럽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이해 관계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도출한 결과”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새 규정 적용 여부는 국제대회 주최자의 재량에 맡긴다는 입장이지만, FIFA가 규정 개정 작업을 사실상 주도한 만큼 북중미 월드컵부터 곧장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상대 선수와 대치 중 입을 가리는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주는 규정은 인종차별 근절을 위한 조치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 공격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브라질)의 이름을 따 ‘비니시우스 룰’로도 불린다. 지난 2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벤피카(포르투갈)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도중 그가 겪은 상황이 새 규정의 근간 역할을 했다.
당시 비니시우스가 득점포를 터뜨린 직후 코너 플래그 부근에서 세리머니를 했는데, 이를 보고 흥분한 벤피카 미드필더 잔루카 프레스티아니가 다가가 말다툼을 벌였다. 해당 상황 직후 비니시우스는 “프레스티아니가 나를 ‘원숭이’라 지칭하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내뱉었다”며 분노했고, 이로 인해 경기가 10여 분간 중단됐다. 반면 프레스티아니는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원숭이’라는 표현은 결단코 쓰지 않았다”며 버텼다. 그가 설전을 벌일 때 유니폼으로 입을 가렸기 때문에 UEFA는 결국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했다. 동성애 혐오 발언에 대해서만 6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서양에서는 입술 모양으로 발언을 읽어내는 ‘립리딩(lip reading)’이 발달해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이탈리아 vs 프랑스)에서 지네딘 지단이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가한 사건 때도 립리딩으로 그가 어떤 말을 들었는지 대략 알아냈다. 입을 가리는 건 증거 인멸 행위인 셈이다.
이 사건 직후 FIFA가 나서서 갈등 상황에 입을 가리는 행동에 대한 제재 규정 도입 작업에 착수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경기 도중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선수는 어떤 이유로든 퇴장 당해 마땅하다”면서 “숨길 게 없다면 말할 때 입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월 아프리카네이션스컵 모로코와의 결승전 도중 판정에 항의하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는 세네갈 선수들. [AP=연합뉴스]
한편 판정에 항의해 그라운드를 벗어나는 선수를 퇴장 조치하는 규정은 지난 1월 아프리카네이션스컵 결승전 당시 발생한 해프닝의 후속 조치다. 후반 추가 시간에 모로코가 페널티킥 기회를 얻자 상대팀 세네갈 선수들이 격렬히 항의하며 단체로 그라운드를 이탈해 라커룸으로 철수했다. 이로 인해 경기가 15분 넘게 지연됐다. 이후 세네갈이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1-0으로 승리하며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후 세네갈 선수들의 집단 행동에 대해 모로코가 이의를 제기했고, 아프리카축구연맹(CAF)이 이를 받아들여 지난 3월 세네갈의 우승 자격을 박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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