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건 실화였다…‘17세 강간범’ 엄마의 155분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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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가’가 하룻밤에 세 명의 여자를 강간한 범죄자가 된다면, 당신의 심정은 어떨까. 국립극단 연극 ‘그의 어머니(Mother of Him·5월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는 쉬운 작품이 아니다. ‘14세 이상 관람가’지만 주최측도 “강하게 키울 생각이 아니면 자녀 동반 관람은 비추”라고 할 만큼 보는 사람도 힘들고, 주인공 진서연(사진)도 “연기 인생에서 가장 힘든 톱3에 드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국립극단 관객들이 뽑은 최고의 공연에 선정, 이례적으로 1년 만에 재공연에 돌입했다. 초연 배우 김선영이 온몸을 불사른 열연이 화제기도 했지만,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다. 유능한 건축 디자이너인 싱글맘 브렌다가 큰아들의 범죄로 인해 붕괴된 일상과 그녀의 울분이 155분간 무대를 채운다. 9살짜리 둘째까지 미디어의 표적이 되어 고통받는데, 거의 실화다. 작가 에반 플레이시가 1990년대 지인이 겪은 일을 모티브 삼아 2008년 쓴 데뷔작으로 영국과 미국, 캐나다의 각종 극작상을 휩쓸며 국제적으로 공연됐다.
에반 플레이시
이유는 제쳐두고 용서하기 힘든 범죄를 저지른 17세 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엄마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이라니, 공감이 쉽지 않다. 그녀는 범죄자를 길러낸 죄인일까, 아니면 취재 경쟁에 일상을 도둑맞은 희생양일까. 우리는 브렌다를 비난해야 할까, 동정해야 할까. 27일 만난 작가 에반 플레이시와 진서연 배우도 뾰족한 해답을 갖고 있진 않았다.
“당시 사건으로 인해 죄를 저지른 청소년과 어머니의 관계,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이 어느 시점에 소멸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피해자 가족에 대해서는 대부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가해자 가족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두가 잘 모른다는 점도 극작가로서 흥미진진했죠. 사회가 소외시키고 망각한 인물들을 어떻게 끌어안고 공감대를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에반)
실제 진서연도 연기를 위해 자신의 9살 아들에게 그런 형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생각의 그릇이 커졌다고 한다. “사실 가해자측 심정까지 헤아려주고 싶지 않죠. 연습을 하면서도 와닿지 않는 부분이 컸어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나 같아도 저렇게 미숙한 행동을 할까,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준비하면서 많이 아팠는데, 신기하게 무대에 오르니 씻은 듯 치유받는 느낌이네요.”(진)
2008년 작이지만 작가는 미디어 마녀사냥이 정점에 달한 오늘을 예감했던 모양이다. 브렌다의 주적은 미디어와 ‘댓글부대’다. 극단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사사건건 흑백논리로 판단하려 들지만, 진실은 늘 상반된 것들이 공존하는 법이다. 류주연 연출은 “조금이라도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댓글에 비난을 퍼붓는 마녀사냥이 우리 사회 자화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게 예술을 창작하는 이유”라며 “범죄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의로움을 증명하려는 세태가 더 위험하고, 여론이 그런 세태를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이 더 역겹다”고 했다.
‘마더 오브 힘’이라는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여론은 성모마리아처럼 아들의 죄를 짊어지기를 요구하지만, 과연 현실의 어떤 엄마가 성모마리아가 될 수 있나. “저는 종종 스스로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도 아버지로서 인내심을 잃은 경험이 있고, 브렌다처럼 미디어 감옥에 갇힌다면 안하던 행동을 할지도 모르죠.”(에반) “저도 준비하면서 브렌다에 대해 양가적 감정이 들었어요. 왜 저러나 싶다가도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서 리얼이고, 그런 큰일을 당한다면 나라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 같아요.”(진)
반전이 일어나는 건 단 한 사람의 공감 덕이다. 출구가 없어 보이던 브렌다는 피해자 엄마와 교감을 나눈 후 비로소 진정한 ‘그의 어머니’가 된다. “모두가 브렌다에게 등을 돌린 상황이잖아요. 절대 공감해주지 않을 법한 한 사람이 그녀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브렌다가 스스로를 용서하고 다시 아들 옆에 선 어머니 역할로 돌아갈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에반)
“그 여자는 자기 딸의 일부를 잃었고, 나는 내 아들의 일부를 잃었어요.” 조심스러운 대사지만 진서연은 이 대사가 작품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로서 느끼는 고통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남의 고통보다 내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나는 내 아들 옆에 있을 거예요. 그게 엄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진) 누가 이 엄마에게 돌을 던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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