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신발이 뛴거냐, 사람이 뛴거냐”…기술도핑 논란 부른 ‘97g 마법’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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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현지시각) 영국에서 열린 ‘2026 런던 마라톤’ 남자부 경기에서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가 인류 최초로 ‘서브 2’를 달성했다. 서브 2는 2시간 이내로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다는 의미다. 사웨는 1시간 59분 30초의 기록으로 종전 세계기록을 1분 5초 당겼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영국에서 열린 런던 마라톤 남자부 경기에서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기록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2위로 진입한 선수마저 서브 2의 벽을 넘은 것. 에티오피아의 요미프 케젤차 역시 1시간 59분 41초를 기록하면서 사웨와 함께 두 번째로 서브 2에 성공했다. 여자부에서도 신기록이 나왔다. 에티오피아의 티지스트 아세파는 2시간 15분 41초로 여자 단독 레이스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불가능 영역, 2시간 벽이 연이어 깨졌다
한 경기, 세 번의 세계기록. 이후 화제가 된 건 다름 아닌 이 셋이 신었던 같은 운동화,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3’였다. 이 신발은 아디다스가 3년간 연구·개발한 초경량 러닝화로 한 짝 무게가 97g에 불과하다. 아디다스의 설명에 따르면 초경량 쿠셔닝(완충 효과)과 뛰어난 에너지 리턴(반환)을 제공해 한 단계 더 높은 속도를 구현한다. 아디다스 최초로 무게 100g의 벽을 깬 모델이기도 하다.
사바스티안 사웨 선수가 1시간 59분 30초의 기록이 새겨진 아디다스의 러닝화를 들고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성능이 너무 뛰어나서였을까. 곧바로 ‘기술 도핑’ 의혹이 불거졌다. 사웨 선수는 이에 대해 “매우 가볍고 편안하며 앞으로 밀어주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규정에 맞는 신발을 신고 뛰었다”며 “이 신발은 승인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로이터 통신은 마라톤 세계기록이 초 단위 단축에서 최근 9년 동안 분 단위로 크게 단축되고 있다며, 배경으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신발 개발 경쟁이 있다고 분석했다.
“탄소섬유 한 장만 써”, 규제 나온 사연
세상에서 가장 빠른 러닝화 개발 경쟁은 2016년 나이키가 ‘카본화’를 내놓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카본(carbon-plated)화는 신발 중창에 탄소섬유(카본 플레이트)를 넣어 발을 밀어주는 추진력을 더한 러닝화를 말한다.
그래픽 마민아 디자이너
기술 경쟁의 초반은 나이키의 독주였다. 나이키는 카본화 ‘베이퍼 플라이’를 내면서 2016년 12월 ‘브레이킹 2(breaking 2)’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마라톤 2시간의 벽을 깨겠다는 선언이다. 당시 남자 마라톤 세계기록은 2시간 2분 57초. 나이키는 2013년부터 마라톤 전용 신발 개발에 착수했으며, 2015년에는 시험판(프로토타입)을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에게 착용시키기도 했다.
2017년 당시 올림픽 마라톤 챔피언이었던 킵초게는 나이키가 주관한 마라톤에서 2시간 25초라는 아슬아슬한 기록을 세운다. 세계 신기록이었지만 비공인 레이스였기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기록으로 나이키는 본격 스피드 러닝용 카본화 베이퍼 플라이를 널리 알리게 된다.
2019년 10월에는 드디어 비공식 기록으로 2시간의 벽을 깨게 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비공식 레이스에서 당시 세계 신기록(2시간 1분 39초) 보유자였던 킵초게가 나이키의 알파 플라이를 신고 1시간 59분 40초의 레이스를 기록한 것.
201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비공식 레이스에서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가 1시간 59분 40초의 레이스를 기록했다. 사진 나이키
기록을 앞당기는 ‘슈퍼 러닝화’에 대한 기술 도핑 우려가 처음 나온 것도 이 시점이다. 2020년 세계육상연맹은 엘리트 마라톤 선수 신발 규정을 신설했다. 밑창 두께는 40㎜ 이하로 제한하고 탄소 섬유판도 한 장만 허용한 것. 특정 선수를 위한 맞춤형 러닝화 사용도 금지했다.
아디다스의 반격, 본격 슈퍼 러닝화 시대
아디다스는 런던 마라톤 직후 역사를 만든 신발이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사진 아디다스
나이키가 독주해 왔던 고성능 카본화 시장에 아디다스는 2020년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를 내놓으면서 추격을 시작했다. 같은 카본화였지만 방식이 달랐다. 나이키가 중창에 한 장의 카본 플레이트를 까는 방식이었다면 아디다스는 발의 뼈 위치에 맞게 필요한 곳에만 카본 구조물을 넣었다. 필요한 부위에만 반발력을 주는 일명 ‘에너지 로드’ 방식이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차례로 기록을 갈아치운다. 2023년 나이키 알파 플라이3를 신은 케냐의 켈빈 킵툼은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 35초로 공식 세계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1을 신은 에티오피아의 티기스트 아세파는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11분 53초로 여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마침내 2시간의 벽이 깨졌다. 공인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이내에 결승선을 통과한 최초의 인간인 사웨의 발에 신겨져 있었던 신발은 아디다스 카본화였다.
소비자 모두 선수 아닌데, 기술 경쟁 왜?
현재 카본화를 포함한 프리미엄 러닝화 시장은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양강구도를 만들고, 푸마·아식스·브룩스·뉴발란스·사코니·온·호카 등의 브랜드가 뒤를 잇는 모양새다. 이들은 왜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들여 엘리트 선수를 위한 카본화 시장에 투자하고 있을까.
우선 프리미엄 러닝화 시장이 성장 중이다. 러닝 전문 사이트 ‘마라톤 핸드북’에 따르면 2025년 시카고 마라톤 대회에서 64%의 러너가,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는 62% 러너가 카본화를 신었다고 한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 인텔로(Dataintelo)는 2025년 기준 카본화 시장 규모를 68억 달러(약 10조원)로 예상했다.
나이키는 런던 마라톤을 앞두고 알파 플라이4로 추정되는 러닝화 프로토타입(시험판)을 공개했다. 사진 나이키
시장 성장세보다 중요한 건 광고 효과다. 엘리트 마라톤 선수의 세계기록은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신발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수천억짜리 광고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이번 런던 마라톤에서 사웨 선수는 자신의 기록인 1시간 59분 30초가 새겨진 아디다스 신발을 들어 올리는 세레머니를 했다.
엘리트 러닝화에 적용된 최첨단 기술은 대중화할 수도 있다. 나이키의 카본화에 적용된 줌X 폼이나 아디다스의 라이트스트라이크 폼 등의 기술은 먼저 프로 전용 신발에 탑재되고, 수년 후 대중 모델에 적용한다. 이는 결국 전체 제품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력이 된다. 혁신적 기술력은 요즘 스포츠 브랜드 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매출 도구다. 아디다스는 2025년 회계연도 기준 매출 248억 유로(약 43조)로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특히 러닝 카테고리는 아디제로 제품군 효과로 30% 이상 성장했다고 밝혔다.
나이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선언
서브2 기록이 깨진 런던 마라톤 직후 올라온 나이키 공식 인스타그램 게시물. 사진 나이키 공식 인스타그램
이번 런던 마라톤 직후 나이키는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다시 시작이다. 도전은 계속된다. (The clock has been reset. There is no finish line)”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킵초게 선수에게는 믿는다는 댓글을, 사웨 선수에게는 잘했다는 칭찬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런던 마라톤을 이틀 앞둔 지난달 24일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에는 ‘알파플라이 4’로 추정되는 다음 세대 러닝화의 프로토타입이 윤곽을 드러냈다. 서브2의 벽은 깨졌지만, 나이키의 선언대로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b.멘터리
오늘날 브랜드는 개인의 가치관을 담는 중요한 소비 기호죠.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하는 브랜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따라 가며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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