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친중' 꼬리표 붙이고 전문가 해고…美·대만서 중국통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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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미국 국무부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직원들이 해리 S. 트루먼 연방 건물에서 개인물품이 든 상자를 들고 나오고 있다. 당시 중국, 대만, 홍콩 업무를 담당한 중국통 직원 다수가 해고됐다고 대만 연합보가 최근 보도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대만에서 중국의 정치·경제를 깊이 파악하고 있는 인물인 ‘중국통’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 대만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만 연합보는 4일 미국과 대만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이해의 적자(赤字)’ 현상의 구조적 원인과 전략적 위험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대만: 현장 접근 막히고 정치도 영향
대만은 오랫동안 세계가 중국을 관찰하는 최전선이자 창구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유사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점을 활용해서다. 하지만 2018년 이후 대만 학계의 중국 현장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2기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안보를 강화하는 ‘범(凡)안보화’ 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왕신셴(王信賢) 대만정치대 교수는 “과거 학계나 지방 간부의 안내로 농촌을 깊이 있게 살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학술 연구가 ‘정보수집’으로 분류되며 허용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싱크탱크를 통한 비공식 정보 채널도 모두 끊겼고, 중국 학자들은 예전만큼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27일 이선진, 조희용, 신정승 전직 대사가 대만의 중국 연구로 권위있는 정치대 국제관계연구센터를 방문해 국제 및 지역 정세, 양안 관계, 한미 관계, 반도체 및 인공지능 산업 협력 등 의견을 교환했다. 대만은 중국의 안보 규제 등 복합적 요인으로 중국 연구자가 급감하고 있다. 대만정치대 국제관계연구중심 페이스북
커우젠원(寇健文) 대만정치대 동아연구소 특임교수는 “10년 넘도록 지도 학생에게 중국 현장연구를 만류했다”며 “대만 정부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악화로 학생의 안전보장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훙야오난(洪耀南) 대만 단장(淡江)대 중국대륙연구센터 부주임은 “매년 여름 40일간 진행하던 본토 연수 프로그램도 중단했다”며 “산림·기상·여론조사처럼 비정치적 연구조차 ‘국가기밀’로 간주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련 학과가 통폐합되는 등 저출생에 따른 학계 구조 변화도 한 요인이다. 일례로 단장대 중국대륙연구소는 1992년 설립 당시 학생 수가 60명이었지만 현재는 22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취업을 위해 지역 연구보다는 방법론·모델 중심의 전문학과로 쏠리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인지전(Cognitive Warfare)·양안관계 등 트렌드 연구에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이념·변증법·중국 공산당사·정치체제 등 핵심 분야는 담당 교수직조차 구인난에 시달릴 정도다.
2016년 민진당 집권 10년 동안 이어진 대만의 반중(反中) 노선도 연구 감소를 불렀다. 정부 지원이 인지전·통일전선·회색지대 위협 등 ‘방어적 연구’에 집중되면서, 중국 공산당의 의사결정 구조나 지도부의 세계관을 깊이 분석하는 연구는 지원이 크게 줄었다. 훙야오난 부주임은 “우리는 하류의 하수구만 들여보고 있다”며 “상류에 홍수를 막을 저수지를 만들거나 강수 예보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면 많은 자원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왕신셴 교수는 “다른 나라에 중국을 잘못 판단하는 것은 단순한 실수일 수 있지만, 대만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만일 대만의 판단이 계속 정확하지 못한다면 국제적 신뢰를 잃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정책 결정서 중국 전문가 배제
중국과 패권 경쟁을 펼치는 미국의 사정도 심각하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7월 1000명이 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중국·대만·홍콩 관련 경험을 가진 베테랑 외교관 수백 명을 하루아침에 해고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도 350명에서 50명으로 줄었고, 지역전문가 대부분이 사라졌다.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중국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사라진다면, 미국이 어떻게 중국을 정확히 예측하고 대(對)중국 정책을 수립할 수 있겠는가”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중국을 겨냥해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도 중국이 보복 카드로 내놓은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유학생 역조 현상도 심각하다. 미국 학생의 중국 유학 인원은 2011~2012년 약 1만5000명에서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수백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중국 관련 연구 예산도 많이 삭감됐다. 로리 트루엑스 프린스턴대 정치학과 교수는 “중국에 머물거나 중국어를 말하기만 해도 중국 공산당에 포섭됐다며 미국에서 ‘친중파’ 꼬리표가 붙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니컬러스 번스 전 주중 미국대사는 “10~15년 뒤 미국 대사가 쓸 수 있는 중국 전문 인재풀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건 부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베이징에서 만날 때 유학생 교류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수만명의 중국 학생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반면, 미국 학생은 수백명에 불과한 상황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대학·문과·어문학의 위기가 겹치면서 한국과 중국 사이의 ‘이해의 적자(赤字)’ 현상은 속도 면에서 대만과 미국보다 심각한 실정”이라며 “친중·반중 꼬리표 붙이기를 넘어서 성숙하고 이성적인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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