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임종 직전 병상서 힘겹게 남긴 계좌번호…대법 “구두 유언 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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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exels
임종 직전 병상에서 남긴 ‘구수증서(타인이 구술한 내용을 글로 작성한 증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유언자가 의사능력이 있었다는 이유로 녹음을 통한 유언을 남겼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A씨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가 유언의 효력을 둘러싸고 우리은행과 소송전을 벌인지 약 4년 만이다.
임종 직전 “재산 전부 증여” 유언
A씨의 이부형제(어머니는 같고 아버지는 다른 형제인)인 B씨는 2021년 4월 폐암이 급격히 악화되어 입원한 상태에서 구수증서 유언을 남겼다. “A씨에게 예금채권과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등 재산 전부를 증여한다”는 내용이었다. B씨가 유언을 남길 당시 A씨가 곁에 있었고, 변호사를 포함한 증인 2명도 입회한 상태였다.
당시 증인 중 한 명은 B씨의 구수를 필기한 다음 다시 낭독했고, 변호사인 다른 증인이 유언 과정을 녹화했다. 녹화된 영상에 따르면 B씨는 산소호흡기를 낀 채 힘없이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어눌한 발음으로 계좌번호 등을 겨우 말할 수 있었다. 호흡곤란으로 유언 전체 취지를 계속 말할 순 없는 상태였다.
B씨는 입원 상태로 치료받다가 유언 사흘 후 사망했다. 이에 A씨는 서울가정법원에 유언 검인(유언장의 형식과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을 신청했고, 법원이 약 5개월 뒤 이를 인용했다. B씨의 상속인들도 유언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후 A씨는 유언장에 B씨의 재산으로 적힌 예금 9600만원가량을 받으려 했으나 우리은행이 지급을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3월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뉴스1
대법 “녹음 가능했다 단정 못 해”
1·2심은 B씨가 자신의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 등을 충분히 인지하고 말할 수 있었다고 보이는 점을 들어 구수증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민법은 질병 등 기타 급박한 사유로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의 방식으로 유언을 남길 수 없는 경우에 한해 구수증서 유언을 허용한다. 원심은 B씨가 녹음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B씨의 상태를 고려할 때 민법에서 정한 방식에 따른 유언이 객관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유언의 요식성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이유는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하게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요건을 판단할 때 그러한 취지가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언자가 자신의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 등을 인지하고 말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해서 바로 구수증서 외에 녹음에 의한 방식으로 유언을 할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봤다. 또 B씨가 재산 내용 등을 구수할 수 있었다는 점도 유언자가 의사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사정일 뿐, 유언의 전체 취지를 육성으로 녹음할 수 있었던 사정으로 단정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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