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손자녀 돌보고, 자녀 살림 대신…이중고 시달리는 조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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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스톡]

74세 여성은 뇌종양에다 심장·무릎 수술을 받은 남편을 간병한다. 남편은 뇌수막염·패혈증, 갈비뼈 골절 등의 병을 같이 앓았다. 지난 40년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병시중 했다. 서른셋에 혼자가 된 시어머니였다. 이제는 두 딸의 아이 셋을 돌보는 일이 돌아왔다. 큰딸의 아이 2명을 키우고 나서 이제 끝나나 했는데, 작은딸이 아이를 낳았다. 딸 부부가 맞벌이라서 아이를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또 10년이 지나고 있다. 그녀는 “20대부터 몸이 다 망가졌다. 그 스트레스에“라고 말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8일 공개한 ‘가족 내 손자녀 돌봄 현황과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에 나오는 70대 여성의 넋두리다. 시어머니-남편-손자녀로 이어지는 3중의 돌봄 굴레에 갇힌 여성의 모습이다.

연구원은 10세 미만의 손자녀(이하 손자)를 돌보는 55~74세 조부모 1063명을 온라인으로 조사했다. 지난 6개월 주 15시간 넘게 돌본 경우다. 또 21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할머니·할아버지는 매주 4.6일, 하루 평균 6.04시간 손자를 돌본다. 주말 빼고는 매일 6시간 매달린다. 17%는 하루 8.5시간 넘게 돌본다.

48%는 대가 없이 돌본다. 34.6%는 자녀에게서 정기적으로 돈을 받는다. 월평균 77만 3000원이다.

여러 가지 돌봄 행위의 대부분을 할머니가 한다. 할아버지가 더 많이 하는 게 하나 있다. 손자를 밖으로 데려나가 놀아주는 일이다.

그 외는 할머니가 먹이기, 입히기, 씻기기 등의 독박 돌봄에 시달린다.

62세 여성은 "(남편이 아이와) 놀아줄 줄 모르고, 울리고. 아기가 싫어하는데 자꾸 막 이렇게 저렇게 한다. 힘들어요. 남편 때문에"라고 말한다.

아들·딸 집을 오가며 온종일 매달린다. 70세 여성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딸 집으로 향한다. 30분 걸린다. 딸의 출근을 돕고 퇴근하면 밥 먹는 걸 보고 귀가한다. 손자 돌봄 외에 딸을 대신해 장 보고 청소하고 살림을 다 한다. 이중 돌봄이다.

상당수가 이렇게 자녀 가구의 일상적 가사 노동을 떠안는다. 한 여성은 "주변에서 ‘뭐하려고 그거 하냐. 일당 주냐’라고 한다. 그래도 딸 아이를 보면 답답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매일 1시간 거리를 오간다.

또 응답자의 51.1%는 자녀 가구, 배우자 등을 함께 챙기는 '다중 돌봄' 부담을 안고 있다.

마경희 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돌봄 중장년층이 손자를 돌보면서 자녀 집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형태를 '확대 가족'이라고 정의했다.

손자가 아무리 예쁘지만 돌봄을 자처하지는 않는다. 돌봄 중장년층의 53.3%는 원하지 않지만 아들·딸 사정을 보면 거절하지 못한다고 한다. 일하는 자녀가 딱해 보이니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심정은 할머니가 더 느낀다고 한다.

다만 손자녀 돌봄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81%가 손자·손녀와 사이가 좋아졌다. 또 남성의 74%, 여성의 67%는 아들·딸과 관계가 좋아졌다. 남성의 48%, 여성의 42%는 부부 관계가 좋아졌다고 한다.

마경희 선임연구위원은 "남성 노인이 일 중심으로 살아오다 노년기를 맞으면 고립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런 남성이 손자녀를 돌보게 되면서 가족 내 역할을 하게 되고 친밀감이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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