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첫눈에 조선 왕실 유물 직감…마땅히 환수해야 할 것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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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구매한 ‘백자청화이진검묘지’와 ‘순종예제예필현판’을 각각 국가에 기증한 형제 김창원(오른쪽)·강원씨가 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합동인터뷰에서 유물 경위와 기증배경을 말하고 있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양식적으로 조선왕실 현판이란 걸 첫눈에 알 수 있었죠. 내용도 왕세자가 쓴 ‘예제예필’이라 무조건 낙찰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순종예제예필현판’ 내놓은 김강원씨 #2022년부터 네 번째 구매·국가 기증 #형 창원씨도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작은 기여…보존만 되면 활용 가능” #
조선 순종(1874~1926, 재위 1907~1910)의 세자 시절 글씨를 새긴 ‘순종예제예필현판’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하 재단)을 통해 국가에 기증한 김강원(52)씨의 말이다. 그는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재단에 기증한 형 창원(53)씨와 함께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합동 인터뷰에 참석해 유물 구매 경위를 이같이 밝혔다.
강원씨는 1993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미술 거래에 뛰어들었고 현재 도쿄에서 고미술 거래업체 ‘청고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기증한 ‘순종 현판’은 2024년 겨울 일본에서 열린 비공개 경매에서 발견했다. 테두리에 용 머리와 봉황 머리를 조각하고 연꽃 및 접시꽃 문양으로 장식된 현판은 한눈에 위계 높은 조선 왕실 유물로 보였다.
단정한 해서체(楷書體)의 한문 내용을 모두 파악할 순 없었지만 ‘곤성(坤聖)’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곤성은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등에서 주로 왕비(중전)를 뜻하는 호칭이다. 전체 분위기가 왕세자의 글씨 현판임을 직감하고 눈치싸움 끝에 낙찰에 성공했다. 강원씨는 “대외적으로 공개된 게 아니라 일종의 회원들만 참가 가능한 경매여서, 재단에 알리거나 할 틈이 없었다”면서 직접 구매를 할 수밖에 없던 과정을 설명했다.
순종예제예필현판.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순종예제예필현판_앞면.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순종의 글씨를 새긴 현판이란 건 구매 후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 1892년(고종 29) 열린 진찬(進饌, 궁중 연회)에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짓고 쓴 글의 내용은 『진찬의궤』 『순종어제곤성홍류』 등 관련 문헌에도 그대로 수록돼 있다. 재단 측은 “기존에 전해지는 순종의 세자 시절 글씨체와 일치하고 해당 시기의 왕실 현판 양식과 들어맞는 진품”이라고 말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도 똑같은 양식에 글씨가 새겨지지 않은 ‘알판’(내용 없이 텅빈 판)이 전해진다고 한다.
형 창원(53)씨가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발견한 곳도 일본 도쿄다. 2007년 캐나다로 이민 가 미술사를 공부(불교미술 박사 과정 수료)한 그는 취미로 서예를 즐기며 옛 글씨를 수집하던 중 지난해 어느 골동품상점 구석에서 백자 묘지를 만났다. “첫눈에 글씨가 좋아서 꼼꼼히 들여다보니 명필 이광사의 것이었다”면서 “예서로 된 게 신기해서 일단 구입했는데, 재단에 기증 의사를 전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재단 측은 “이광사의 글씨 중에 예서가 드문 데다 철필로 새긴 듯 간결한 획과 독특한 조형성이 현재 전하는 이광사의 예서와도 사뭇 다른 서풍이라 서예사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광사(1705~1777)는 석봉체를 쓴 한호(1543~1605) 이후 조선적인 글씨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서예가로 추사 김정희(1786~1856)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명필로 꼽힌다.
형제는 한국고미술협회장을 역임(1990~1992)한 부친 김대하(89) 전 경기대 전통예술대학원 대우 교수의 영향을 받아 고미술과 문화재 기증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강원씨는 2022년 백자 청화 묘지 2점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이번이 네번째 기증이다. 그의 경우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 공동관장과의 교류도 한몫했다. 법조인 시절 ‘기와 검사’로 이름났던 유창종 관장은 2002년 와당(瓦當)을 비롯한 옛 기와 187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형제는 “해외 있는 모든 문화유산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시장에서 유통될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 에컨대 왕실 유물 등은 돌아오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의 정체성에 관계되는 유물은 반환돼야 하지 않나. 이 일에 종사하면서 접할 기회가 있으니 환수해야 마땅한 유물은 그렇게 노력하겠다.”(강원씨)
“보존만 잘 돼도 언젠가 활용처를 만날 수 있다. (해외에) 나가 있으면 방치되고 파손될 우려가 있어 작은 것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다.”(창원씨)
이들은 “고 이건희 (삼성)회장님도 그렇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기증자 분들이 얼마나 많으냐. 저희들은 외국에 있다 보니 한국에서 유출된 문화유산들을 필요한 만큼 환수하는 작은 역할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일 뿐”이라고 했다.
8일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합동기증식에서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이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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