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MZ 난리난 ‘기운 맛집’ 관악산…‘산BTI’ 안 맞으면 헛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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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에 눈 돌리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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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관악산 연주대 정상에 오르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김정훈 기자

‘보지 않은 것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갔다.

지난 1일 관악산. 정상 연주대 근처에 300여 명이 운집해 있었다. 동시간대 체류로는 역대 최다. 길이 좁아지는 병목 구간 곳곳에선 소셜미디어(SNS)에서 관악산의 현재를 빗대는 단어 ‘웨이팅’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졌다.

대학생 정원서(22·서울 동작구)씨. 등산은 좀처럼 해본 적이 없다는데, 이틀 전에 이어 두 번째 관악산행이란다. “한 역술인이 방송에서 ‘운이 안 풀리면 관악산에 가라’더군요. 취직 걱정에 와보니 잘될 것 같은 느낌이 왔어요.” 정씨처럼 최근 연주대를 찾는 2030세대의 발걸음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이에 대해 관악산 ‘로컬(상주하다시피 특정 산을 자주 찾는 등산객)’인 김영민(59·경기도 과천)씨는 “다른 연령대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장사가 코로나19 때보다 안 되는데 그분 말 믿고 한번 와봤어요. 나쁠 게 없잖아요”라는 강모(57·서울 관악구)씨처럼.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연주대 주변 인파에 놀란 김모(66)씨의 혼잣말. “정말 그 역술인 말대로 세 번 와서 소원 빌면 일이 풀려요?” 이들의 궁금증은 중앙SUNDAY가 관악산을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장사 잘되게” “이번엔 꼭 취직”…돌탑에 소원 하나쌓고 옵니다

지난 1월 역술인의 해당 발언 이후 기자는 이날 관악산을 세 번째 찾았다. ‘관악산 629m’가 새겨진 큼지막하고 네모난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줄이 100m 넘게 이어졌다. 대기는 무려 1시간. 관악산 등산객 수가 정점을 향하고 있음을 방증이라도 하듯 50대 남성이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이러다 사고 나겠다. 대응해 달라.” 경찰관 10여 명이 출동해 등산로 입구에서 “산행을 자제해 달라”고 했지만 등산객들은 “고생 많네요”라며 정상으로 향했다.

“입대 앞두고 뒤숭숭한데 역술인 말도 있고, 이참에 등산도 하고 손해 볼 게 없을 것 같아요.”(조형원·21·경기도 김포시) “올해 30대 아홉수에 걸린 아들 장가보내는 게 소원이라 같이 왔어요. 혹시 알아요? 여기서 (며느릿감을) 만날지, 허허.”(이대형·68·경기도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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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관악산에는 크게 네 부류의 등산객이 있다. A형: 이들처럼 ‘운수 명당’이라며 찾는 사람. B형: 원래 등산하던 사람. C형: 봄철이라 모처럼 산행하는 사람. D형: ‘K등산’에 빠진 외국인. 해당 지자체들은 관악산 등산객이 3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B형은 고정된 상수고 역술인 말이 트리거가 되면서 북한산으로 향하던 C형과 D형까지 부르는 상황입니다.”(과천시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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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관악산 정상에 인파가 몰려 있다. 등산객들은 인증샷을 찍은 뒤 정상석 뒤에서 다시 줄을 한바퀴 만들어 정상석 오른쪽으로 하산하고 있다. 정상석 뒤의 바위 웅덩이 '매염정(사진 가운데에서 조금 오른쪽 주황색 부분)'은 오염된 상태였다. 김정훈 기자.

정상석 뒤의 바위 웅덩이는 정체불명의 액체(라면 국물 추정)와 휴지로 오염된 상태였다. 이 웅덩이는 매염정(埋鹽井)으로 부른다. 조선 시대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소금을 묻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 산은 물과 더불어 풍수의 핵심이다.

‘보지 않은 것은 말하지 말라’는 표현은 풍수지리학에서 금과옥조로 여긴다. 땅을 직접 보지 않고 지기(地氣·땅의 기운)를 논하지 말라는 뜻. “관악산에 가면 운이 풀린다”는 발언은 사주명리학보다 풍수지리학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풍수는 공간과 환경의 이치를 보는 학문, 사주명리는 시간과 기질의 구조를 보는 학문이다. 대학생 정원서씨의 ‘잘될 것’이란 말은 발복(發福·운이 틔어 복이 닥침)의 소망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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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기상관측소와 이어지는 암릉에서 정체 중인 등산객들. 뒤로 정상 연주대의 인파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관악산 가면 운 틘다’ 역술인 방송 발단
“세상에 발복을 거부하는 사람 있습니까. ‘역학’ 혹은 ‘동양철학’으로 부르는 풍수지리학과 사주명리학·관상학의 궁극은 발복입니다.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죠.”(옥한석 강원대 지리교육학과 명예교수)

취직 걱정하는 정씨, 잘되는 장사가 과거로만 남은 자영업자 강모씨, 아들 결혼으로 가정의 행복을 일구고 싶은 이대형씨….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저마다의 ‘발복’을 위해 관악산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발복과 관련해 ‘관상(2013)’ ‘명당(2018)’ ‘궁합(2018)’ 등 이른바 ‘역학 3부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도 이어졌다. 각각 관상학·풍수지리학·사주명리학을 소재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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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민간신앙 소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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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위된 연산군의 묘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 민가 한가운데 있다. 김홍준 기자

“조선은 역학의 전성기였습니다. 풍수지리학만 해도 왕들의 관심이 지대했죠.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헌릉 길 폐쇄 여부를 놓고 신하들과 논쟁을 벌일 정도로 풍수지리학의 고수였어요. 광해군은 한양의 기운이 쇠했다며 풍수지리가 이의신으로 하여금 교하(파주) 천도를 추진하도록 했고요. 정조도 아버지 사도세자의 이장을 놓고 풍수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최원석 경상국립대 경남문화연구원 교수)

이 세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계유정난(관상)과 세도정치(명당), 가뭄으로 인한 민심 달래기(궁합) 등 정치적 목적으로 역학을 빌렸다는 점이다. “왕들이 풍수에 관심을 두고 묫자리(음택)와 궁궐터(양택)를 명당으로 골랐어도 조선 왕조가 망했습니다. 아이러니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정치권력의 논리로 왕릉이 결정되거나 이장됐거든요. 하지만 명당만 잘 쓰면(풍수지리) 되는 게 아니라 사람도 잘 써야(인사) 어우러지는 거지요.”(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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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 무덤인 소령원 산도(山圖·명당 지도).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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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자리잡은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묘 소령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산도(山圖) 연구가 이뤄진 곳이다. 김홍준 기자

역학 3부작은 등장인물의 말을 빌려 ‘미신’ ‘음양잡술’이란 인식도 있음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현재 관악산 인파를 이룬 세대들의 생각은 어떨까. 조씨는 “저는 (역학을) 믿어요. 묫자리가 자손의 번영을 가늠하고 내가 사는 곳이 내 삶을 바꾸게 되잖아요. 태어난 날도 내 운명과 상관있지 않습니까”라며 풍수지리와 사주명리학을 언급했다. 친구 송예준(22)씨는 “저는 믿지 않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너무 뒤떨어진 믿음이잖아요”라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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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수경 기자

외국인도 빠지지 않는다. 발레리아(31)는 고국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피해 한국에 왔다. “한국을 좋아해 한국 이름을 갖고 싶었는데 사주를 보고 원하는 성에 맞는 이름을 지어준다는 곳이 있더라고요. 앱을 통해 신청했더니 ‘안현주’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도장까지 만들어주더라고요.” “현주씨는 사주를 보니 차가운 기운이 강해요. 화의 기운을 보충해 주는 이름입니다. 외국인도 사주요? 태어난 일시를 알면 가능합니다. 서울 근교에서 등산한다면, 현주씨는 북한산보다 관악산이 맞을 것 같습니다.”(정기조 사주·작명 청연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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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온 발레리아(오른쪽)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사주·작명 청연재 사무실에서 정기조 대표와 상담하고 있다. [사진 청연재]

우리나라 국민의 40%는 점·사주·관상을 믿는다. 한국갤럽이 ‘관악산 열풍’ 초창기인 지난 3월 조사한 수치다. 2009년 조사보다 9%포인트나 올랐다. 이 ‘역학’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40%. 한국리서치의 지난해 11월 조사도 비슷한 수치였다. 특히 2030(42%)이 점·사주에 의지하는 정도가 60대와 70대 이상보다 높았다. 이는 관악산 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정상 연주대 근처의 300여 명 중 2030이 절반이 넘었다. 김수민(30·경기도 고양시)씨는 역학에 유연한 태도였다.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 현실이 답답하니 사주와 관상을 보고 나면 결과야 어떻든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는 것 같더라고요. 또 안 맞으면 어떻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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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현민 기자

“조선은 역학 전성기, 세종도 풍수 고수”
“누구나 미래가 불안하면 통제력이 상실됩니다. 불경기에 립스틱을 많이 찾는 이유는 치장을 통해 몸에 대한 통제력부터 찾으려는 심리입니다. 관악산도 마찬가지죠. 세대를 불문하고 ‘몸으로’ 등산하는 행위를 통해 통제력을 갖춥니다. 누구는 인스타그램에 연주대 인증샷을 남기며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게시를 통해 자신을 위로합니다.”(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2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상향이 막혀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면 복권 등 행운에 기대거나 초월적 존재를 믿으려는 ‘비과학적’ 경향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세대를 막론하고 역술가의 말을 잠시라도 믿어보려는 거죠.”(김영주 동국대 경영대학원 연구원)

그럼 관악산 열풍을 빚은 역학은 과연 ‘비과학적’인가. “과학은 실증을 통해 규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역학은 실증하지 못합니다. 풍수에서 응용하는 음양오행에서 북쪽은 수, 동쪽은 목, 남쪽은 화, 서쪽은 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냐고 하면 설명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사상체계, 즉 ‘철학’으로 부르는 게 맞습니다.”(옥한석 교수)

실생활에는 어떻게 쓰일까. “첨단 과학을 이용하는 현대 건축 기술도 역학을 응용합니다. 물과 바람의 길, 햇빛·동선 등을 가늠하죠. 창은 어느 쪽에 놔야 하는지, 가구 배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요. 좋은 땅의 조건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운이 달라집니다.”(김영기 대한풍수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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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수경 기자

그런데 한국리서치 조사를 연령대별로 보면 50대가 역학에 의존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고 2030에겐 부양받지 못하는 ‘마처세대’다 보니 현재와 미래가 혼란스러운 거죠.”(최훈 교수) “관상학의 경우 40대가 봐달라는 요청이 많습니다. 상법(相法·얼굴과 체형 등을 보는 방법)은 희망적인 답을 주는 게 관상가의 능력이자 배려죠. 40대는 가정과 직장 등에서 한계에 부닥치게 되는 때입니다. 희망을 듣고 싶은 거죠.”(최인영 동방문화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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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정상의 너른 바위 차일암에서 한 남성이 기운을 받으려는 듯 정상석을 껴안고 있다. 김홍준 기자

관악산의 기운은 누구에게나 통할까. “MBTI처럼 성향과 기질 따라 자신에게 맞는 산이 있어요. 삼각형의 용문산이나 물결치는 대모산이 맞을 수도 있죠. 조화가 중요합니다. 역학은 자기 이해와 삶의 조정, 심리적 위로를 주는 생활철학입니다. 풍수는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좋은 환경을 선택하고 조성하는 환경공간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 회장) “간혹 역학에선 과신이 문제입니다. 그걸 악용해 혹세무민이 되기도 하죠. 경계해야 합니다.”(옥 교수) “화기가 약한 김 기자는 녹색 옷을 입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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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들머리 중 하나인 서울대 공학관에서 연주대로 향하는 산길에 만들어진 '돌탑밭'. 뒤로 등산객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관악산 하산 길. 올해 첫 번째, 두 번째 왔을 때보다 더 많은 돌탑이 세워져 있었다. 사위와 함께 올라온 노인이, 중간고사를 마친 대학생이, 엄마와 손을 잡고 올라온 아이가 저마다 작은 돌을 들고 자연과 자신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소소하면서도 무의식적인 무속 의식. 덩달아 기자도 돌탑에 돌을 하나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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