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팔 달린 베일’ 쓴 리사…이 희한한 파티에 617억 모인 까닭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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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도 없고 티켓을 팔지도 않는다. 그런데 마케팅 효과는 슈퍼볼(미국프로풋볼 결승전)의 두 배다. 하룻밤 모금액은 4200만 달러( 617억원), 입장권으로 환산하면 인당 10만 달러(1억 4700만원)인 행사가 있다. 매년 5월 첫 번째 월요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는 ‘멧 갈라(Met Gala)’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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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멧 갈라에서 비욘세가 레드카펫을 걷고 있다. 멧 갈라는 현재 가장 유명한 패션 행사이자, 강력한 패션 광고 플랫폼이다. AFP=연합뉴스

지난 4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멧 갈라’는 패션계 오스카로 불리는 최대 행사다. 올해는 비욘세·리한나·도자켓 등 할리우드 스타들뿐만 아니라 블랙핑크·안효섭·에스파 등 K팝 스타들도 가세해 국내서도 큰 화제가 됐다.

미국의 빅데이터 분석기업 런치 매트릭스에 따르면 멧 갈라의 미디어 영향 가치(MIV)는 2023년 기준 9억9500만 달러(1조4600억원)로 슈퍼볼의 두 배다. MIV는 미디어 노출을 광고비로 환산한 지표로 지난해에는 13억 달러(1조 9100억원)를 기록했다.

멧 갈라는 194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 기관인 코스튬 인스티튜트(costume institute, 패션 연구소)를 후원하기 위한 자선 파티로 시작했다. 소수의 사교계 인사들만 참여했던 작은 자선 파티가, 어떻게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최대 패션 행사가 됐을까.

‘드레스’가 콘텐트 되는 유일무이 쇼

레드카펫과 셀럽, 시상식은 늘 주목받는 조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상식은 수상 작품과 인물에 주목한다. 드레스는 조연에 머물렀다. 멧 갈라는 드레스가 주인공이 되는 유일한 쇼다. 매년 의상 주제도 달라진다. 올해의 멧 갈라 주제는 ‘패션은 예술이다(Fashion is Art)’였다. 누가 얼마나 주제에 맞춤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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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리사가 로버트 운의 독특한 드레스를 입고 2026 멧 갈라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가장 화제가 된 이는 블랙핑크의 리사. 마치 조각상처럼 보이는 ‘제3의 팔’이 머리 위 베일을 지탱하는 듯한 기묘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디자이너 로버트 운의 작품으로 리사의 실제 팔을 3D로 스캔해 제작했다고 한다. 그 자체가 조각 작품처럼 보여 올해 주제를 잘 표현하는 의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승리의 여신 니케를 연상시키는 켄달 제너의 날개 의상(갭 스튜디오), 밀로의 비너스에서 영감을 받은 카일리 제너의 드레스(스키아피렐리), 앙리 마티스의 새 조각을 허리 장식에 단 블랙핑크 로제의 의상(생 로랑), 클로드 모네의 색채 표현을 닮은 블랙핑크 지수의 드레스(디올) 등이 ‘예술’이라는 주제를 표현했다. 제니는 약 540시간을 공들여 완성한 1만5000개의 시퀸 장식이 수 놓인 드레스(샤넬)로 시선을 끌었다.

청바지 입은 신데렐라…‘밈’ 문화가 기폭제

다른 시상식보다 압도적으로 긴 2시간에 걸친 멧 갈라 레드카펫은 ‘패션의 의도적 과잉’을 연출하는 무대다. 누가 더 아름다운지가 아니라, 누가 더 창의적인지를 겨루다 보니 멧 갈라엔 종종 기묘한 의상이 등장한다. 이런 과장된 드레스는 최근의 인터넷 ‘밈(Meme) 문화’와 연결되면서 폭발적으로 확산한다. 밈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재생산 및 변형되는 유행 콘텐트를 의미한다.

실제로 멧갈라를 유명하게 만든 상징적 의상들이 있다. 2015년 멧 갈라 테마였던 ‘거울로 본 중국’에 맞춰 중국 디자이너의 무거운 황금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리한나는 ‘오믈렛 드레스’라는 밈으로 회자했다. 드레스는 무게만 25㎏에 달했다. 레드카펫을 걸으며 4번이나 옷을 갈아입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레이디 가가는 멧 갈라 레드카펫(2019년)이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는 점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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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 갈라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드레스는 인터넷 밈 문화와 결합해 끝없이 확산한다. 사진은 배우 사라 폴슨이 지폐 눈 가리개를 한 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 EPA =연합뉴스

올해도 밈이 된 독특한 의상으로 멧 갈라는 소셜 네트워크(SNS)에서 끝없이 재생산됐다. 일명 ‘리츠 크래커 드레스’라는 밈이 된 도자 캣의 실리콘 드레스(생 로랑), 달러 지폐 눈가리개로 ‘1%의 부자들’을 풍자했던 사라 폴슨의 드레스(마티에르 페칼레스) 등이 대표적이다.

과장된 드레스만 살아남는 건 아니다. 인도 모델 바비타 만다바는 올해 멧갈라에 청바지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만다바는 뉴욕 지하철역에서 모델 에이전시의 눈에 띄어 샤넬의 패션쇼 오프닝 무대에 선 화제의 인물. 올해 멧 갈레에선 자신의 인생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샤넬 오프닝 쇼의 청바지와 집업 스웨터를 똑 닮은 의상을 걸쳤다. 인생을 바꿔준 청바지보다 ‘패션은 예술’이란 주제를 더 깊이 표현할 수 있는 의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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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모델 바비타 만다바는 뉴욕 대학교 학생으로 지하철 플랫폼에서 스카웃 제안을 받아 샤넬 쇼에 섰다. 이후 그는 샤넬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최초의 인도 모델이 됐다. 사진 샤넬

멧 갈라의 숨은 권력, 최고의 광고 플랫폼 만들다

작은 후원의 밤 행사에 지나지 않았던 멧 갈라는 1995년 안나 윈투어의 의장 취임으로 완전히 달라진다. 브랜드가 테이블을 구매하는 형식으로 기금을 낸 뒤 셀럽을 초청하는 식으로 파티의 규칙을 바꾼 것. 또한 윈투어는 행사 내부에서의 핸드폰 사용을 금지했다. 행사 참석자들이 핸드폰 사용 없이 “진짜 대화와 교류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게 이유였다. 명분은 진짜 대화였지만 결과적으로 레드카펫이 멧갈라의 유일한 공개 무대가 되면서 희소성과 집중도를 동시에 높이는 효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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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 갈라를 강력한 패션 광고 플랫폼으로 만든 보그 전 편집장이자 현 콘데나스트 최고 콘텐츠 책임자 안나 윈투어. AFP =연합뉴스

이런 규칙을 피해 탄생한 게 멧 갈라의 ‘화장실 셀피(셀프 카메라)’다. 2017년 카일리 제너가 유일하게 핸드폰을 쓸 수 있는 화장실에서 참석자들과 동반 셀피를 올렸고, 이후 전통으로 자리 잡으면서 매년 멧 갈라 화장실 셀피가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는 블랙핑크 4명 멤버 완전체가 찍힌 화장실 셀피가 인기를 끌었다.

외신에 따르면 올해 멧갈라의 티켓은 좌석당 10만 달러(1억4000만원), 10인 테이블은 35만 달러(5억1400만원)부터 시작했다. 브랜드가 거금을 쏟아붓는 이유는 분명하다. 멧 갈라 레드카펫은 가장 효과적인 광고판이다. 셀럽들이 드레스를 입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계단을 오르는 순간, 그 장면은 뉴스와 인스타그램 포스트, 틱톡 영상, 밈으로 무한 복제된다.

일반 시상식과 달리 드레스 자체가 화젯거리가 되기에 진정한 패션 브랜드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좋다. 프랑스 인플루언서 마케팅 분석 플랫폼인 레프티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멧 갈라 하루 동안 인스타그램에서 창출된 브랜드 EMV(미디어 노출의 광고비 환산 가치)는 5억5200만 달러(8100억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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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가 완전체로 등장해 화제가 된 올해 멧 갈라의 화장실 셀피. 사진 바비타 만다바 인스타그램

아마존 베이조스의 합류, 멧 갈라 미래는?

비영리 패션 연구소의 후원의 밤 행사가 가장 비싼 브랜드 광고 플랫폼으로 흥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 역설적이다. 그런데 올해는 패션계를 벗어난 후원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바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약 1000만 달러(147억원)를 후원하고 명예 의장이 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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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노동조합 전 위원장 크리스 스몰스가 4일(현지시각) 뉴욕 멧 갈라 행사장 앞에서 시위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논란 역시 화젯거리다. 패션 업계가 아닌 테크 업계 억만장자가 스폰서에 오르면서 멧 갈라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비싼 광고 플랫폼이지만, 패션 콘텐트 생산자인 패션 하우스들이 주인공이던 멧 갈라가 자본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에 뉴욕 곳곳에는 멧 갈라 보이콧 포스터가 붙었고, 일부 셀럽은 초대를 거절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일까. 제프 베이조스는 올해 레드카펫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올해 멧 갈라의 모금액은 역대 최고인 4200만 달러(617억원)를 기록했다. 스캔들조차 콘텐트가 되는 멧 갈라의 브랜드 파워를 방증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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