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해군 첫 여성 주임원사 “벚꽃축제서 군함에 꽂혀…특기는 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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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네이비 클럽에서 황지현 주임원사가 해군 첫 여성 주임원사가 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해군작전사령부

숨소리마저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철혈(鐵血)의 군인’을 만날 것 같았다. 80년 가까운 해군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주임원사가 된 황지현(44) 해군작전사령부 상황보좌관과 인터뷰를 앞두고 들었던 생각이다.

그런데 선한 눈매에 서글서글한 얼굴, 부드러운 목소리를 접하는 순간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고충을 묻자 “특별한 어려움이나 슬럼프를 겪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8일 해군작전사령부 네이비클럽에서 황 주임원사를 만났다.

해군 첫 女주임원사 ‘군함은 내 운명’

황 주임원사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을 꿈꿨다"고 했다. 가족의 영향이 컸다. 그의 아버지(황승주ㆍ해군 부사관 24기)와 작은아버지(황상주ㆍ해군사관학교 32기) 모두 해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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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 주임원사가 2016년 교관 시절 부사관 후보생들의 야간 비상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당시 '얼음교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진 해군작전사령부

황 주임원사가 해군 입대로 마음을 굳힌 건 대학생 시절 갔던 군항제 때다. 경남 진해의 수십만그루 벚나무보다 그 사이로 우뚝 선 군함의 모습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그는 “군함의 모습에 이끌리듯 다가갔다가 내부를 구경할 기회까지 얻었다. 그때 배를 타는 해군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해군부사관후보생(211기)에 지원해 2006년 3월 임관했다.

수많은 군의 주특기 가운데 ‘전탐(전파탐지)’을 택했다. 황 주임원사는 "군함에서 레이더 등 정보를 취합해 안전항해를 돕고, 전투 정보까지 종합해 상대 선박의 위험성 등을 지휘부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역할”이라고 했다. 임관 이후 1함대 문무대왕함과 기동함대사령부 최영함ㆍ광개토대왕함에서 황 주임원사는 이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박찬호, TMT는 맞지만… ‘왜 월드클래스인가’ 배웠죠”  

함정 임무 수행 만큼이나 군인으로서 그가 공을 들여온 건 후임 양성이다. 그는 2007년 교육사령부 기초군사교육단 부교대훈련조교를 시작으로 해군 최초의 여성훈련소대장, 교육사령부 전투병과학교 항해학부 전탐교관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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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 주임원사가 2016년 선임소대장으로서 해군야전교육대에서 부사관후보생 전투구보 시 대열의 맨 앞에서 훈련을 이끌고 있다. 사진 해군작전사령부

부사관 후보생 등 18개 기수에 걸쳐 6000명 넘는 인원을 교육하는 동안 황 주임원사는 ‘얼음 교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내 본래 모습은 부드러운 쪽에 가깝다. 하지만 후보생들 전사 정신을 함양해 제대로 지도하려면 변화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후보생 지도를 위해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따고 심리상담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부사관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 지원한다. 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 공부했다”고 전했다.

황 주임원사에겐 평생교육사 자격증도 있다. 그는 “자격증이 있으면 교육장에서도 학점은행제를 통해 병이나 후보생이 학점을 채우도록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마음 씀씀이 덕분인지 오래전 교육받은 후배 군인들과도 10년 넘게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2016년 TV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교관으로 출연했던 일을 두고 황 주임원사는 “오히려 부사관 후보생(출연자)들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기억에 남은 건 야구선수 출신 박찬호다. “진짜 TMT(Too Much Talker)더라”는 게 박찬호에 대한 그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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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TV 프로그램 '진짜사나이2 해군부사관편'에서 참가 연예인들이 수료식을 마친 뒤 황지현 당시 교관을 헹가래를 하는 모습. 사진 해군작전사령부

하지만 ‘월드클래스’의 품격을 엿본 순간도 있다. 황 주임원사는 “윗몸일으키기 훈련을 하던 중 박찬호 후보생 허리에 심한 경련이 왔다. 일종의 직업병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가 회복하는 동안 순서가 팔굽혀펴기로 넘어갔다. 그런데 회복한 박찬호는 카메라가 돌지 않는데도 윗몸일으키기부터 완수해냈다. 스스로 얼마나 엄격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군에서 여러 번의 ‘최초’와 ‘최고 성적’ 등 기록을 보유한 그는 “여군보다는 군인으로 매 순간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하지만 여군으로서 처음 맡게 된 보직을 수행할 땐 ‘내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이 보직을 꿈꾸는 후배 여군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걱정도 했다.

“부대원 마음 잘 탐지하는 ‘엄마 주임원사’가 목표”

황 주임원사는 동료나 후임 해군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고민을 헤아리고 기댈 수 있는 게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주임원사상’이다. 황 주임원사는 “제 특기는 탐지다. 상황보좌관으로서는 물론, 주임원사로서 저 또한 동료 마음을 잘 탐지해 어떤 고민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의지가 되는 엄마 같은 주임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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