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보니 안보 자립밖에 답없다”…유럽, 새 방위연맹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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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집권 이후 대서양 동맹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유럽 주요국들이 안보 자립을 위한 실전 행보에 나섰다.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에 군함을 급파하며 미국과 별개의 안보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고, 유럽 내부에선 새로운 방위 동맹 창설을 촉구하는 제안까지 등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의 그린란드 편입 압박을 거치며 담론 수준에서 제기돼온 ‘미국 없는 유럽 방위’가 이란 전쟁을 계기로 행동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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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 구축함 HMS 드래곤이 지난 3월 4일(현지시간) 영국 남부 포츠머스 해군기지 인근에 정박해 있다. AFP=연합뉴스

美 주도 안보 질서에만 맡길 수 없다…영·프 군함, 중동 급파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해군은 구축함 HMS 드래곤을 중동에 배치하기로 했다. 영국 국방부는 “호르무즈해협의 상선 통항을 보호하기 위한 다국적 임무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HMS 드래곤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키프로스 방어 지원을 위해 동부 지중해에 투입됐다가 이번엔 중동 해역으로 향하게 됐다.

프랑스도 앞서 지난 6일 항공모함 샤를드골함 전단을 홍해로 이동시켰다. 이란 선박의 통행을 막지 않는 대신 미국의 봉쇄 완화도 끌어내 해상 대치를 협상 국면으로 돌려놓겠다는 구상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와 영국이 구축한 다국적 임무가 선주와 보험사들의 신뢰를 회복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난달 22~23일 런던에서는 30여 개국 군 관계자들이 영·프 주도 작전의 실무를 협의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과 별개 명분으로 다국적 해상 임무를 꾸리는 장면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이란 전쟁 발발 후 유럽의 이익과 직결되는 교통로와 에너지 공급망을 더 이상 미국 주도의 안보 질서에만 맡길 수 없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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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방부는 지난 6일(현지시간)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중동 동맹국 지원을 위해 지중해 동부에 배치한 샤를드골 항공모함 전단이 홍해와 아덴만으로 이동 중”이라며 “호르무즈해협 항행의 자유를 지원하기 위한 향후 임무 준비의 일환으로 해상무역 관계자들의 안도감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에즈운하를 거쳐 홍해로 향하는 샤를드골 항공모함 전단. AFP=연합뉴스

“위험한 NATO 해체 목격…새 방위 동맹 필요”

작전적 움직임과 동시에 정치적 차원에서도 기존 안보 틀을 대체하려는 구체적인 구상이 유럽 내부에서 분출하고 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8일 독일 일간 벨트에 “우리는 지금 위험한 나토의 해체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유럽 방위 동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럽 방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봤더니 “유럽이 자립해야 한다는 것 외엔 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고도 그는 덧붙였다.

라스무센 전 총장은 구체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모임인 ‘의지의 연합’을 공식화할 것을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시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을 위해 고안된 임시 연합 모델을 확대 개편하자는 취지다. 그는 연합 가입 조건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까지 국방비 지출 ▶나토 5조에 준하는 상호방위 약속 ▶개별국이 공동 군사행동을 거부권으로 막을 수 없는 의사결정 구조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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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나토 사무총장이 지난해 5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라스무센 전 총장이 동맹 내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옹호해온 대표적 대서양 동맹 신봉자로 꼽혀왔다는 점에서 이번 제안이 유럽 내 안보 불안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 그조차 “유럽은 너무 오랫동안 러시아의 값싼 에너지, 중국의 저렴한 상품, 미국의 값싼 안보에 의존해왔다”며 “미국 없는 유럽 안보를 구상해야 하는 현실이 매우 고통스럽다”고 토로한 것이다.

“美 의존은 위험한 도박”…유럽의회와 여론도 동조

유럽의회 내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의회 초당파 의원들은 9일 ‘유럽의 날’을 맞아 유럽 방위연합 창설을 촉구했다. 이들은 “유럽 방위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위험한 도박”이라며 “비상 상황에서 미국 주도 나토 없이도 유럽이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지휘 체계와 신속대응군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론도 이 같은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최근 27개 회원국 2만6000여 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1%는 EU 회원국 간 공동 방위·안보 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최근 20년 사이 최고 수준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 동맹 국가들의 계속되는 충돌은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주둔 미군 5000명을 철수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AP통신은 “해당 결정에 대해 유럽 정상들은 유럽이 안보 책임을 더 떠안아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분석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나토 안에서 더 강한 유럽 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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