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록·펑크·레게도 결합…‘K’ 떼낸 국악, 지금을 노래하다
-
2회 연결
본문

지난달 25일 히어로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 '카디'. [사진 플래닛케이]
지난달 25일 오후 2시, ‘히어로 록 페스티벌’이 열린 서울 문화비축기지. 26도의 땡볕이 내리쬐는 무대 위로 거문고가 올라왔다. 다음 순서인 록 밴드 ‘카디(KARDI)’의 멤버 박다울이 연주할 악기였다. ‘카디’는 2021년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를 통해 결성된 4인조 팀으로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이 속해있다. 박다울은 이날 기타리스트처럼 선 채로 거치대에 놓인 거문고를 연주했다. 오른손에 쥔 술대(대나무 막대)로 여러 현을 빠르게 번갈아 휘갈기고, 팔을 돌리고 방방 뛰다가 거문고를 강하게 내리쳤다. 퍼포먼스 중반 거문고 줄 하나가 끊어졌지만 곧장 무대 뒤편에 준비된 다른 거문고를 꺼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신의 파트를 이어갔다. 관객석의 함성은 오히려 더 거세졌다.
추다혜차지스. [사진 소수민족컴퍼니]
국악은 더 이상 박제된 음악이 아니다. 전통 음악을 기반에 둔 아티스트들은 이제 록 페스티벌, 인디신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악기나 장르의 과감한 조합, 현대적 감각을 덧입힌 가사 등 꾸준한 음악적 실험이 일궈낸 변화다. 일각에선 “기존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른 바 ‘트레디셔널 컨템포러리 장르’의 음악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30일 ‘아시안팝페스티벌’에 오르는 ‘추다혜차지스’는 복잡·다양해진 국악의 변주 양상을 얘기를 할 때 빠질 수 없는 팀이다. 소리꾼 추다혜와 기타리스트 등 4인으로 결성된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 장르를 ‘사이키델릭 샤머닉펑크’라고 명명한다. 추다혜가 부르는 노래는 분명 무가(巫歌)인데 여기에 록, 펑크, 레게, 덥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돼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2집 ‘소수민족’에서 완성도를 높인 이들의 음악적인 실험은 지난 3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안겨줬다. 올 10월부터는 유럽 4개국 투어 콘서트도 진행한다.
가야금과 여러 장르의 음악을 조합하는 밴드 '시오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3월 말 정규앨범을 내고 인디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오트’는 가야금, 기타, 키보드로 이뤄진 3인조 밴드다. JYP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출신의 리더 ‘지쿠’ 영향으로 재즈와 대중음악, 힙합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다. 지쿠는 “이제 국악기는 특이한 컨셉의 하나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레게나 라틴 음악에 사용되는 또 다른 악기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음악 장르에 녹아들고 있다”고 말했다.
악기 조합도 새로워졌다. 고전적인 밴드, 합주 편성이 저음부터 고음까지 음역대별로 다양한 악기들을 배치해 소리를 채웠다면, 최근 주목 받는 아티스트들은 특정 악기나 보컬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둔다. 지난달 21일 신스팝 기반의 신곡 ‘떴다 저 까마귀’를 발표한 ‘이날치’가 대표적이다. ‘이날치’는 베이스 기타와 소리꾼으로만 이뤄진, ‘국악기 없는 국악 밴드’다.
베이스기타, 양금, 퍼커션으로 이뤄진 3인조 밴드 '동양고주파'. [사진 동양고주파]
오는 7월 여우락 페스티벌 출연자인 ‘동양고주파’의 경우 ‘양금’과 베이스기타, 퍼커션으로 이뤄진 팀이다. 보컬은 없다. 동양고주파에서 양금을 연주하는 윤은화는 “중간 음역대를 맡고 있는 양금이 사실상 솔로도 맡고 있기 때문에 사운드 음역대가 빈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있지만 멤버, 악기 충원보다는 이펙터, 다양한 장비를 통해 기존 악기 음색을 변주, 좀 더 특별한 음악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메시지도 다양해졌다. ‘수궁가’ 등 유명 판소리 원전을 개사하던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지난 1~2월 미국 투어 7회 공연을 마친 3인조 팀 ‘상자루’는 “이 넓은 사대문 안팎으로/작은 몸 하나 뉘일 곳이 없단다/월세건 LH건 뭣이 됐건 집을 구해 보자”(청년은 강제로 집시), “태평하고 싶어/아무것도 하기 싫어”(태평가) 등 현 세대의 자화상을 담아내고 있다. 지난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이어 3월 ‘더 글로우’, 지난달 ‘러브썸 페스티벌’ 무대에 선 송소희의 자작곡 ‘낫 어 드림’은 “마음을 놓아/이곳에서 날 불러/눈물은 닦고/달려온 나의 저 길을 바라봐” 등 자기 위안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난달 러브썸페스티벌 무대에 선 송소희. [사진 어센틱]
이처럼 ‘힙’해진 국악의 모습은 국악인들의 생존 노력과 ‘K 브랜드’ 위상 변화 두 가지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국악계 관계자는 “국악과 다른 장르의 결합은 꾸준히 있었지만 관객에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이라며 “최근 해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영향으로 국내에도 젊은 국악 팬이 생기고, 이것이 다시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로 이어지는 선순환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악을 기반으로 여러 음악 장르의 조합을 시도하는 '상자루'. [사진 상자루]
이러한 변화는 젊은 국악 전공자들이 이끌고 있다. 추다혜, 박다울, 송소희 등은 어렸을 때부터 국악인의 길을 걸어온 이들이다. 이들은 과거 재즈, 록 등 서양 음악 신에서 이따금 시도한 장르 간 물리적 결합과 달리, 작곡 단계부터 국악적 문법을 적용하는 화학적 결합을 주도하고 있다. 국악고·서울대 출신의 가야금 연주자 이유림(시오트)은 “내가 음악을 배운 교수님이 활동할 당시만 해도 전공자들이 전통음악 이외의 것을 손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나 역시 대학 때 영국에 교환 학생을 갔다가 유럽의 테크노 음악을 접하며 새로운 장르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최근 10여년 간 국악을 뿌리에 두고 여러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들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으며 이들이 록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등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며 “이들의 공통점은 ‘국악 밴드’로 명명되길 거부한다는 점이다. ‘트레디셔널 컨템포러리 음악’ 등 새로운 명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