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단독] 구순의 이우환 “죽어서도 캔버스 앞에서 망설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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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을 맞아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로 회고전을 연 이우환(90). 베니스=권근영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산마르코 아트센터(SMAC), 관광객으로 왁자지껄한 산마르코 광장에 자리 잡았지만 건물 안은 고요하다. 현대 문명의 소음에 침묵으로 응답해온 이우환(90)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1978년작 ‘점으로부터’로 시작해 ‘선으로부터’‘바람과 함께’ 연작, 전시실 바닥과 벽면에 그린 ‘관계항-무한’까지, 8개 전시실에 이우환(90)의 화업 60년을 아우르는 20점이 나왔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다. 지난 6일(현지시간) 열린 프레스 프리뷰에는 이탈리아·일본·중국 등 여러 곳에서 온 취재진이 몰렸다. 한국에서는 중앙일보가 유일하게 초대됐다. 전시는 미국 디아재단의 제시카 모건 디렉터가 기획했다. 모건은 2014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냈다. 그는 “이우환의 90번째 생일을 맞아 미국 디아 비컨과 이곳 SMAC에서 동시에 전시를 열게 됐다. 이우환의 작품이 지닌 영향력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우환과 인터뷰를 하려 기다리는데 일본 가타오카 마미 모리미술관장과 모리 교코 이사장이 이우환에게 인사하겠다며 끼어들었다. 미디어와 컬렉터, 큐레이터 등이 뒤엉킨 자리였다. 다음날 오프닝에도 1000명 넘는 세계 미술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구순 맞아 베니스·뉴욕에서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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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와 뉴욕에서 이우환 회고전을 기획한 미국 디아재단 제시카 모건 디렉터(오른쪽). 베니스=권근영 기자

다음 달이면 90번째 생일이네요. 시작이 궁금합니다. 어릴 적 꿈이 화가는 아니셨던 것 같은데요.
“한국에 있었다면 100% 소설이나 시 쓰고 앉았을 거예요. 그런데 일본으로 건너가 말을 배워서 하는 입장이다 보니 그건 안 되겠다 했죠. 할아버지 친구분이 서너살 때부터 몇 년간 ‘점 찍어봐라, 선 그어보라, 글씨 써보라’ 하고 가르치셨는데, 커서 그걸 구워 먹고 삶아 먹고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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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관계항-무한' 위를 걷는 이우환. 베니스=권근영 기자

이우환은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한학자이자 한방의, 아버지는 동아일보 기자였다. 조부의 친구인 문인화가 황견룡이 자주 집을 드나들었다. 어려서 그에게 시서화를 배웠다. 서울사대부고 졸업 후 1956년 서울대 회화과에 진학했다.

문리대에 가고 싶었는데, 학교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점수가 모자랐어요. ‘그러면 나는 대학에 안 가겠다’고 했죠. 담임 선생님이 미대 가서 문학 하면 된다고 설득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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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작 '점으로부터'(1978) 앞에 선 이우환. 베니스=권근영 기자

그는 대학 입학 후 두 달여 만에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의 작은아버지에게 한약을 갖다 드리고 오라는 집안 심부름이었다.

여름방학도 되기 전인데 ‘얼씨구 좋다’ 하고 마산 거쳐 부산 가서 밀선을 탔어요. 일주일이면 돌아오겠지 했는데, 삼촌은 ‘언제 또 전쟁이 날지 모르니 온 김에 공부나 하고 가라’고 붙잡았어요.

이우환은 니혼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사토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69년 미술평론가로 등단했다. 모더니즘의 종언을 고하던 그 무렵 미술에서는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 미국의 대지미술, 일본의 모노하, 한국의 단색화가 나타난다. ‘가난한 예술’이라는 의미의 아르테 포베라는 흙·나무·천·폐자재 등의 재료에 손질을 최소화하며 상업화된 미술계에 저항했다. 모노하는 작품에서 작가의 흔적을 지우는 방식을 내세웠고, 이우환은 그런 모노하의 핵심이론가이자 작가였다. 그는 “마침 그런 변화의 초창기에 앞자리에 설 수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나 미국 등 여러 곳의 작가들과 어울리고, 부서지고,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 시대의 엄청난 변화를 보고 느끼며 걸어왔다는 건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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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조응'과 2000년대 '대화' 시리즈가 걸린 베니스 산마르코아트센터(SMAC) 전시실. 사진 Lorenzo Palmieri © Lee Ufan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디아재단과 전시를 연 소감은 어떤가요.  
“디아와는 2019년 조각전을 계기로 내 코너가 마련됐죠. 1970년대 성장한 디아는 미국의 주요 미술가들의 근거지가 됐고, 많은 유럽 작가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여기 아시아 작가도 있는 게 좋겠다 해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나는 대단히 자랑스럽습니다.”

1974년 미국에서 설립된 디아재단은 월터 드 마리아, 로버트 스미드슨 등 대지예술가를 후원하는 등 전통적인 미술관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1970년대 미국 미술이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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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에 철사를 수직으로 촘촘하게 세워 풀밭처럼 보이게 한 초기작 '관계항'(1969/2026). 차가운 금속 소재로 자연의 생명력을 시각화하고 공간의 공기를 바꾸는 시도를 했다. 이우환은 1969년 당시 '철의 들판'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1972년 이후 입체 작품은 전부 '관계항'이라는 제목으로 바꿨다. 사진 Lorenzo Palmieri © Lee Ufan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50년 가까이 한 호흡에 점과 선을 그리셨는데, 이제는 아주 쉬운가요 아니면 흰 캔버스를 마주하기기 더욱 막막한가요.  
"더더욱 망설이고, 그 망설임은 언젠가 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완결된 완벽함은 없어요. 가봐도 가봐도 끝이 없는 겁니다. 사람은 늘 바깥 공기와 접촉하는데, 남과의 접촉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유한하지만 접촉에서 오는 것들은 무한하기에. 내가 죽고 나도 내 작품이 시간이나 상황과 계속 접촉하면서 조금씩 변할 테고 다르게 보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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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벽과 바닥에 그린 '대화'(2021~) 시리즈 앞에 선 이우환. 베니스= 권근영 기자

붓에 붉은 물감을 찍어 캔버스에 점을 찍는다. 찍을수록 물감이 없어지면서 점은 점점 흐릿해지고 종국엔 사라진다. 파란 물감을 찍어 캔버스 위로부터 아래로 죽 내려긋는다. 선이 점점 흐릿해지면서 맨 밑에는 붓자국만 남는다. 붓에 찍은 먹처럼 모두가 그렇게 늙고 소멸해간다. 이우환은 “점 찍고 선 긋는 건 아득한 옛날부터 있던 일이고, 내가 발견했다거나 발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내 작품을 보면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건 주변의 힘이 모인 결과이지, 내 힘이 아니다”라고도 덧붙였다.

그의 점과 선은 그리고 쓰는 일의 기초이자 시간예술이다. 그는 1971년 파리 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카셀 도큐멘타, 베니스 비엔날레 등 현대 미술의 최전방에 있었다. 올해로 61회를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쟁 여파로 심사위원단도 사퇴하고 황금사자상도 없어졌다. 국가관끼리의 경쟁처럼 열리는 비엔날레 형식이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장면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본전시와 국가관 두 개의 체제로 이어져 왔죠. 국가관 체제는 예술보다는 각국의 경제적 배경이나 이데올로기가 보인다거나 말썽이 잦았죠. 2015년 오쿠이 엔위저에 이어 이번에 작고한 코요 쿠오 등 아프리카 출신 총감독이 두 번 나왔어요. 지난번에는 남미 출신 감독이었고요. 유럽이나 미국 중심이라든지 모더니즘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는 거예요. 비엔날레가 세계 문명을 어떻게 봐야 할 지 자극도 되고 여운을 남긴 건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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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 그린 '대화' 시리즈. 사진 Lorenzo Palmieri © Lee Ufan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이번 비엔날레는 어떻게 보셨어요?  
“‘단조로(In Minor Keys)’라는 주제가 가진 이미지가 좋거든요. 한 걸음 물러선다거나, 뭔가 덜 만든다거나, 단조롭게 한다거나 하는 뜻일 텐데. 어제 가보니 그런 테마와는 달리 너무 난리를 떨어놓은 느낌이에요.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럽지, 정리되면서 한 걸음 물러선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AI 시대에, 점 찍고 선 긋는 것이 유효할까요.
“AI는 즉각적인 답을 주지만, 예술가로서 우리는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고 마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현대 미술은 다양한 형태를 취해왔습니다. 시각 예술이나 사운드 아트에서 언어와 목소리는 중요하며, 늘 신체를 필요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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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관계항-무한'. 사진 Lorenzo Palmieri © Lee Ufan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일본 나오시마, 프랑스 아를에 이어 한국에서도 2029년이면 이우환 미술관을 볼 수 있게 되는데요. 무엇을 보여주실 계획인가요.  
“처음 안도 다다오와 나오시마에 미술관을 만들 때 제가 제시한 게 동굴의 이미지였습니다. 땅 위로 드러나는 것이 별로 없고 지하에 숨어버렸죠. 돋보이게 한 것은 어느 곳에도 없어요. 이번에도 산기슭에 묻어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좋겠어요.”

삼성문화재단은 지난해 10월 호암미술관 인근 옛돌정원에 이우환의 신작 조각 3점을 설치하고, 희원에 상설공간 ‘실렌티움(묵시암)’을 개관했다. 옛돌정원 부지에 2029년 가을 완공을 목표로 올해 이우환 미술관을 착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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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작 '점으로부터'선으로부터' 세 점이 걸린 전시실. 사진 Lorenzo Palmieri © Lee Ufan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국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는 아주 새로운 것을 제시한다거나 창조한다는 말은 안 씁니다. 대신에 뭔가 산뜻한 만남, 있는 것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느낌을 지향합니다. 내 작품이 있음으로써 주변 풍경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줄 수 있는 장소를 여는 게 내 꿈이에요.”
국내에선 작품 이외의 것들이 자꾸 화제가 되는데요.  
“여러 위작 사건이 있지만, 그건 그 사람들한테 가서 물을 일이죠.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어요. 그러니까 부디 그 사람들에게 가서 ‘그런 범죄적인 걸 그만두라’고. 솜씨도 있으니 자기 일을 하면 굉장히 훌륭한 일을 할텐데, 돈 몇 푼에 그렇게 범죄적인 데 멈춰 있는지 참 답답한데, 부디 자기 일을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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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생각에 잠긴 이우환. 베니스= 권근영 기자

파리 에콜 데 보자르 초빙교수를 지냈고, 일본 다마미술대 명예교수이십니다.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요?  
“그저 개인으로 안주하지 마세요. 주변을 둘러보고, 동물이나 자연과 관계를 맺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신체를 통한 경험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니스 전시를 개막한 뒤 그는 파리 작업실에 돌아갔다가 미국 뉴욕주에 있는 디아 비컨으로 간다. 파리와 일본 가마쿠라를 오가며 지내는 그는 2007년 프랑스 최고 권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2014년 베르사유궁 야외 정원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호암상 예술상, 금관문화훈장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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