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완용, 단순한 매국노 아니다”…日 역사학자가 파헤친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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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친일파-매국과 애국의 한국사』 에 대해 설명하는 오노 야스테루 규슈대 교수. 유성운 기자

2005년 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캠퍼스에서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학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철거하라는 시위였다.

‘인촌을 왜 친일파라고 할까. 그리고 해방된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왜 한국인들은 친일파 청산을 외치고 있을까.’

시위를 바라보던 한 일본인 대학원생은 이런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이해 고려대 한국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던 그는 이후 친일파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약 20년 뒤 친일파에 대한 책을 냈다. 지난달 23일 『친일파-매국과 애국의 한국사』(주오코론·中央公論) 신년호에)를 펴낸 오노 야스테루(小野容照) 규슈대 인문과학연구원 부교수다.

그는 왜 지금 일본에서 친일파를 다룬 책을 냈을까. 한국의 친일 청산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안식년을 맞은 오노 교수를 7일 교토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책을 쓴 계기가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 때 반일적인 경향이 강해지면서 친일파를 주제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도 한국의 친일파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보도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또,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상황이 더 고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게 한국에서 친일파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겼고,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하고 싶었다.
일본인들도 친일파에 대해 알고 있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2010년대 이후로는 과거 일제 협력자 뿐만 아니라 진보세력이 보수세력을 공격할 때 쓰는 용어가 됐는데 일본 사회에선 그런 내막까지는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치권에서 ‘친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일본인들은 ‘한국은 여전히 반일 감정이 막강하고, 과거 일본에 협력한 사람들을 아직도 공격하고 있다’는 식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는 다양한 친일파가 등장한다. 이완용 같은 유명한 친일인사도 있지만, 임문환 등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사들의 친일 행적과 평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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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의 한 서점에 진열된 오노 야스테루 규슈대 교수의 저서 『친일파-매국과 애국의 한국사』 유성운 기자

친일파를 다루면서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임문환과 이승우다. 임문환은 1974년 회고록을 일본에서 발표해 한국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 유명해졌다. 그는 동경제대를 나와 조선총독부에서 일했고 친일파라고 비판도 받았지만, 자신의 학업과 공직 경험이 독립 후 새 국가에 필요하다고 줄곧 생각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과거 조선총독부에는 총 1만5000명의 조선인이 근무했고, 그중에서 요직에 오른 경우도 400명 정도 되는데,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조선총독부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긴 건 임문환 정도다.  
이승우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일제강점기 변호사였던 이승우는 조선총독부에서 태평양전쟁에 관련된 회의에 조선인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해 ‘전쟁에 협력하는 대신 차별받는 조선인들에게 일본인과 똑같은 참정권과 의무교육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 또, 이용구는 일본과 조선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처럼 동등한 자격으로 1:1 합방되는 줄 알고 일본에 협조했다가, “속았다”며 괴로워하면서 작위도 거부하고 죽었다. 일본인인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당시 친일파의 사고를 단순히 이분법으로 재단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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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의 한 서점에 진열된 저서 『친일파-매국과 애국의 한국사』앞에서 포즈를 취한 오노 야스테루 규슈대 교수. 유성운 기자

이완용에 대한 평가도 궁금하다.
이 책에서는 이완용이 단순한 매국노가 아니라 대한제국이라는 국가를 위해 일본에 협력한 부분이 있다고 봤다. 그는 애초에 미국에 많은 기대를 했고, 일본보다는 미국을 모델로 삼았다. 그런 점에서는 이승만과 비슷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도 분명했다. 이승만은 끝까지 일본에 협력하지 않았던 반면, 이완용은 결국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봤다.  
한국에서 친일파에 대한 정의나 범위가 달라졌다고 썼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에서 시기에 따라 친일파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처음엔 일제강점기에 협력해 돈을 받거나 유복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지칭했다. 식민지 청산의 문제로 다뤄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들이 이승만·박정희 정권에서 요직에 오르며 반민주적 정치에 협조했다는 비판으로 확장됐다. 그러면서 과거 반민특위 때 기준으로는 친일파가 아니었던 사람이 2000년대 이후 친일파로 규정되기도 했다. 특히 2010년대 이후로는 진보 세력이 보수 세력을 공격하는 정치적 레토릭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친일파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요인 중 하나다. 친일파 문제를 정치적 대립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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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총리대신으로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이완용.

학교에서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이나 한국의 독립운동도 다루나
그렇다. 일본 역사수업에서는 고등학교까지 한국에 대해서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놀랐다’는 감상을 많이 이야기한다. 당시 일본의 식민정책에 대해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일본은 조선에서 나쁜 짓만 했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근대화를 앞당긴 측면도 있어서 놀랐다’는 의견도 있고, 반대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이 경제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지배를 강요당했으니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오노 교수는 2017년 『제국 일본과 조선 야구』라는 책도 냈다. 야구가 조선의 민족의식과 총독부의 식민정책에 이중으로 활용됐다는 내용이다.

야구라는 소재로 접근한 것이 인상적이다.
2006년 봄, 고려대에서 유학한 지 1년 지났을 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렸고, 한국이 일본을 두 번 이겼다. 그때까지 내가 알던 한국은 축구가 가장 인기 스포츠였다. 그런데 WBC에서 일본을 상대로 선전하자, 고려대 중앙도서관에 큰 모니터를 설치해 중계를 해줬다. 공부하던 학생들이 모여들어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질 때마다 박수를 쳤다. 그 전까지는 야구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열기에 깜짝 놀랐다. 이것을 보고 한국의 야구 역사, 특히 일제강점기 시대는 어땠는지 궁금해서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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