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픈 뒤론 외식도 못했는데”…소아암 이겨낸 아이들의 특별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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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질환을 이겨낸 환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회공헌활동 ‘아워 히어로즈’에 참여한 김수오 환아(왼쪽 두번째)와 가족들이 울산 여행에 초대받았다. 지난 10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 그라운드에서 울산 HD FC 말컹 선수와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친구들한테 전부 다 자랑할 거예요."
지난 10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 다섯 살 수오는 축구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손을 맞잡았던 얘기를 하며 활짝 웃었다. 전날 조선소에서 본 "엄청 큰 배"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수오는 2년 전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을 진단받아 얼마 전 항암치료를 마쳤다. 투병 기간 가족 나들이가 쉽지 않았던 수오와 가족들에게 조선소와 바다, 축구장은 오래 기다려온 바깥세상이었다.
수오네 가족을 비롯한 소아암 환아와 가족 40여 명은 지난 9~10일 울산에서 1박 2일을 함께했다. 서울아산병원과 HD현대1%나눔재단,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마련한 사회공헌활동 '아워 히어로즈'의 첫 여행이었다. 오랜 시간 병과 싸워 이겨낸 아이들을 '작은 영웅'으로 응원한다는 뜻을 담았다.
여행 첫날 가족들은 HD현대중공업 야드를 둘러봤다. 거대한 선박 등 조선소 풍경에 아이들은 "와아" 하며 버스 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오의 형 지오(10)는 "이렇게 큰 배는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울산대교 전망대와 슬도, 대왕암공원도 찾았다. 아이들은 바닷가를 걸으며 조개껍질을 모으고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병원과 집을 오가던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이 함께 걷고 사진을 찍는 평범한 시간이 아이들에겐 특별한 추억이 됐다.
중증 질환을 이겨낸 환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회공헌활동 ‘아워 히어로즈’에 참여한 소아암 환아와 가족들이 울산 여행에 초대받았다. 환아와 가족들이 지난 10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 그라운드에서 경기 시작전 선수들을 바라보며 기대감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2021년 조직구성육종을 진단받고 이식과 항암치료를 이겨낸 한승리(16)군은 어머니 이수지(48)씨와 팔짱을 끼고 슬도 바닷가를 걸었다. 모자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한참 웃었다. 이씨는 "선물 같은 1박 2일이었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소아암 환아 가족에게 여행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항암치료 중에는 감염 걱정이 있고, 치료가 끝난 뒤에도 응급 상황에 대한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선천성 이상각화증으로 지난해 7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김남윤(20)씨는 "혹시나 싶어 아픈 뒤론 가족 외식도 엄두를 못 냈지만 의료진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용기를 냈다"고 했다. 그는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고 바다를 바라보니 힐링이 됐다. 나를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구나 싶어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둘째 날 가족들은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을 둘러본 뒤 축구경기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울산 HD FC 홈경기를 관람했고, 경기 시작 전 선수들과 손을 맞잡는 '승리의 하이파이브' 행사에도 참여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함성 속에서 아이들도 박수를 치며 목청껏 응원했다.
림프종을 앓았던 홍시영(13)양은 "아프고 난 뒤 온 가족이 함께 온 첫 여행이라 설렜다"고 말했다.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경기장에서 직관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라고도 했다. 이번 여행은 환아뿐 아니라 형제자매에게도 위로가 됐다. 홍양의 오빠 홍도경(15)군은 "동생이 아팠을 때는 어딜 가도 저만 즐거워해도 되나 싶어 마음 한편이 늘 무거웠다"며 "이번 여행에선 아무 걱정 없이 동생이랑 가족이 다 같이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슬도 바닷가를 거닐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환아와 가족들. 서울아산병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강성한 교수와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 이은옥 간호사가 일정에 동행했다. 장거리 여행이 부담스러운 환아와 가족들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응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한 환아 어머니는 "아이가 갑자기 아플까 봐 먼 거리 여행은 엄두를 못 냈는데, 그동안 의지해온 선생님들이 함께 간다고 해서 안심하고 왔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소아암 환아들은 치료 중에도, 치료를 마치고 나서도 평범한 일상생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항암치료 자체도 힘들지만, 소풍이나 수학여행처럼 또래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경험을 하지 못하면서 겪는 사회적 고립이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며 "투병 시기가 어둡기만 한 시간으로 남기보다 아이들의 삶에서 추억할 수 있는 한 부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환아와 가족들이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을 둘러보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강 교수는 "오랜 치료로 늘 긴장감 속에 살던 아이들이 조선소의 거대한 배 앞에서 눈을 반짝이고, 축구장에서 선수들과 손을 맞잡으며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며 "이번 여행이 환아와 가족들에게 더 희망차고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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