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내가 남편보다 먼저 사법시험 합격하면서 벌어지는 일
-
4회 연결
본문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은 성이 같은 두 주인공 사치(키시이 유키노, 오른쪽)와 타모츠(미야자와 히오)가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겪는 갈등과 균열을 그렸다. 사진 엣나인필름
일본판 ‘결혼 이야기’.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 리뷰
미국의 영화 리뷰 사이트 로저에버트닷컴은 일본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지난달 29일 개봉)을 이렇게 정의했다.
“섬세한 관찰과 뛰어난 연출로 완성된 관계의 드라마”라는 평가과 함께다.
이혼이라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부부의 씁쓸한 이야기를 다뤘던 ‘결혼 이야기’(2019, 노아 바움백 감독)처럼 이 영화도 현실적인 설정과 심리 묘사로 어긋나는 부부 관계를 적나라하고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영화의 시작은 여느 일본 로맨스 영화처럼 풋풋하고 화기애애하다. ‘사토’라는 같은 성(姓)을 가진 두 주인공 사치(키시이 유키노)와 타모츠(미야자와 히오)는 대학교 커피 동아리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동거하게 된다.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은 성이 같은 두 주인공 사치(키시이 유키노, 왼쪽)와 타모츠(미야자와 히오)가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겪는 갈등과 균열을 그렸다. 사진 엣나인필름
사치는 번번이 사법시험에 떨어지는 남자친구 타모츠를 응원하기 위해 함께 공부를 시작한다. 일종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이다. 하지만 또 다시 낙방한 타모츠와 달리, 사치가 단번에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면서 둘의 관계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축복 받아야 마땅한 사치의 임신은 오히려 둘 간의 갈등을 깊게 하는 계기가 된다.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둘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없이 임신했다는 이유 만으로 혼인 신고서에 도장을 찍는다. 이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지 아는 관객이라면 스크린 속에 들어가 둘의 결혼을 뜯어 말리고 싶어진다.
사법시험 공부 만도 벅찬 데 육아까지 병행하느라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는 타모츠. 신참 변호사로 정신없이 일하다 녹초가 돼서 귀가한 뒤 아기를 돌봐야 하는 사치.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은 성이 같은 두 주인공 사치(키시이 유키노, 오른쪽)와 타모츠(미야자와 히오)가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겪는 갈등과 균열을 그렸다. 사진 엣나인필름
넉넉하진 않지만 꿈과 사랑으로 가득했던 둘의 공간엔 긴장과 균열이 스며든다. 화장실 휴지를 누가 사다 놓느냐 같은 사소한 언쟁은 결국 ‘내가 더 힘들다’는 한탄과 서로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지며, 둘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조금씩 다가간다. 연애와 동거 시절, 둘을 웃음 짓게 했던 배려는 사라진 지 오래다.
관객은 성별 보다는 처한 환경에 따라 사치 또는 타모츠에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전통적인 성 역할의 전복이 가져다주는 효과다.
누구에게 감정이입하든 관객이 영화에서 느끼는 바는 똑같다. 예정된 수순처럼 찾아오는 둘의 파경에 대해 어느 한 쪽에 귀책 사유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의 비극은 상대방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 얼마나 힘든 지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의 고통과 희생에만 매몰된 결과일 뿐이다. 영화는 주인공 부부의 파경 뿐 아니라, 50년을 함께한 아내에게 이혼 소송을 당한 사치의 고객 사례를 통해 결혼의 의미를 되새긴다.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은 성이 같은 두 주인공 사치(키시이 유키노, 오른쪽)와 타모츠(미야자와 히오)가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겪는 갈등과 균열을 그렸다. 사진 엣나인필름
결혼은 ‘낭만’이 아닌 ‘생활’이며, 평생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배려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제도라는 사실 말이다. 영화는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법학부 출신으로 주변의 변호사 지망생들을 지켜본 경험 등 아마노 치히로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아마노 감독은 “출산 이후 사회에서 멀어진 듯한 고립감과 정체성의 혼란은 물론, 이전에는 체감하지 못했던 사회 구조의 한계를 느꼈다”면서 “그 경험이 극 중 두 사토가 마주하는 현실적 갈등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해 부족에 따른 관계 파탄은 사토 부부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어떻게 타협하며 살아갈 것인지 등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3, 미야케 쇼 감독)으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키시이 유키노는 22살부터 37살까지 15년의 세월에 걸쳐 사랑이 서서히 시들어가는 과정을 현실감있게 그려냈다.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은 열연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