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불교 음악의 대가, ‘월인천강지곡’을 현대곡으로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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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있는 달이 천 개의 강에 ‘꽝’하고 도장(印)을 찍는다. 그래서 하늘에도 달이 뜨고, 강에도 달이 뜬다. 천 개의 강, 그건 우리 모두의 마음이다. 부처의 깨달음은 그런 식으로 나의 깨달음이 되고, 우리의 깨달음이 된다. 그게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다. 부처의 일대기를 주제로 세종대왕이 몸소 한글로 가사를 짓고, 노래까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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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훈 불교음악원장은 중학생 때부터 트럼펫 연주를 했다. 또 고등학교부터 국악을 공부했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등에서 개막식 작곡과 지휘, 음악감독을 맡았다. ". 김종호 기자

8일 서울 강남의 봉은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박범훈 불교음악원장을 만났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불교 음악의 대가’다. 그가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현대적 불교 음악으로 만들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봉은사 야외 특설무대(17일 오후 4시)와 평택아트센터 대공연장(18일 오후 7시)에서 공연한다. 2023년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공연에서 처음 공개한 작품이다.

세종대왕이 음악에 관심이 많았나.
“그렇다. 세종대왕은 국악의 음높이도 정했다. 관을 불어서 음을 정하고, 항상 연주를 할 때는 그 음이 기준이 되도록 했다. 서양 음악이 들어오기도 전에 말이다. 당시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례 음악이 중국식이었다. 세종은 ‘왜 우리가 죽어서도 중국 음악을 들어야 하느냐’며 우리 음악인 향악으로 종묘 제례악을 바꾸었다.”
세종은 악기에도 관심이 많았나.
“국악기 전반에 관심이 많았다. 중국 악기를 꼭 그대로 쓸 필요가 있느냐며 우리 식으로 개량했다. 악기 제작을 직접 지시할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다. 작사도 하고, 작곡도 직접 했다. 대표적인 게 ‘월인천강지곡’이다.”

박 원장은 “‘월인천강지곡’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다룬 곡이다. 세종이 51세로 세상을 떠난 아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손수 만든 노래”라며 “그 바탕에는 그리움과 애틋함이 진하게 흐르고 있다. 원작인 ‘월인천강지곡’에는 없지만, 공연에서는 처음과 끝에 세종과 소헌왕후의 사랑과 그리움을 잠시 표현했다”고 말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애틋함이 뭔가.
“세종(충녕대군)이 12세, 소헌왕후(심씨)가 14세 때 둘은 혼인했다. 세종의 즉위 직후에 장인인 심온은 영의정이 됐다. 왕의 장인이자 왕비의 아버지, 거기에다 영의정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심온의 집은 문전성시였다.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태종은 이걸 보고 세종의 외척을 경계했다. 결국 심온은 역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고 죽었다.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친척은 모두 관노가 됐다. ‘역적의 자식을 왕후 자리에서 폐위하라’는 상소가 빗발쳤지만 세종이 온몸으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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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으로 장식된 봉은사 대웅전 앞뜰에 박범훈 불교음악원장이 서 있다. .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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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 공연의 한 장면. 소리꾼 김준수가 극의 중심인물인 세존(부처, 가운데)역을 맡았다. 사진 불교음악원

비극적인 이야기다. 
“소헌왕후의 삶에는 그런 아픔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소헌왕후의 불심(佛心)이 대단했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노비가 됐다. 가문이 몰락한 슬픔을 부처님께 기댔을까. 금슬도 좋았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8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조선의 역대 왕과 왕후 사이에서 가장 많은 자녀 수다. 조선사에서 왕과 왕후가 죽은 후에 합장한 능도 세종의 영릉(경기 여주)이 최초였다. 물론 세종이 원한 것이었다. 그만큼 왕후를 사랑했다.”

세종대왕이 한글로 지은 최초의 찬불가, ‘월인천강지곡’. 박범훈 원장은 이걸 교향곡과 합창곡을 합한 교성곡(칸타타)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작곡과 지휘는 박 원장이 담당하고, 연출은 손진책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맡았다. 국수호 명인이 안무를, 배우 김성녀가 노래와 연기지도를 했다. 중심 인물인 세존 역은 소리꾼 김준수가, 세종대왕 역과 소헌왕후 역은 김수인과 이소연이 각각 맡는다. 도창 역은 유태평양과 홍승희가 연기한다. 소리꾼 박애리는 교성곡 ‘니르바나’를 노래한다.

우리 음악의 뿌리는 어디인가.
“어느 나라 음악이든 뿌리가 있어야 한다. K팝이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신라의 향가, 원효 스님이 시장통에서 부른 무애가, 고려가요 등에 불교 음악이 많다. 그런 불교 음악은 단순한 종교 음악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 음악이다. 나는 거기서 뿌리를 느낀다. 그 뿌리의 연장 선상에 세종의 ‘월인천강지곡’이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왜 한글로 지어졌나.
“노래로 만들어서 백성에게 널리 한글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것 하나만 봐도 세종의 애민(愛民)을 엿볼 수 있다. 소헌왕후에 대한 사랑과 백성을 향한 사랑이 ‘월인천강지곡’에 두 개의 물줄기로 흐른다. 세종은 또 ‘여민락(與民樂)’도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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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은 음악과 노래, 춤이 함께 어우러진 무대다. 부처의 일대기를 담은 세종의 운문 '월인천강지곡'을 국악과 서양 악기가 어우러지는 무대로 빚어낸다. 사진 불교음악원

어떤 곡인가.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이 담긴 곡이다. 세종 이전의 궁중 음악은 주로 중국의 아악에 의존했다. 세종은 조선만의 고유한 정서와 철학을 담은 음악을 만들었고, ‘여민락’은 그러한 결실 중 하나였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월인천강지곡’을 생각했다. 세종의 가사는 있지만, 곡은 전해지지 않는다. 원래 어떤 곡이었을까. 백성을 염두에 두고 지었으니 쉽고 대중적인 곡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소리를 들려주기보다 소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악가무(樂歌舞)가 함께하는 작품으로 세종의 마음을 그려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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