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시진핑, 대타협 없었다…“호르무즈해협 개방” 원론적 합의[뉴스분석]
-
2회 연결
본문
14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몰 딜(Small Deal)에 스몰 파이트(Small Fight)’
통 큰 합의(빅 딜)도, 거친 대립(빅 파이트)도 나오지 않고 기존 갈등을 관리하는 정도에 그쳤다는 점에서 14일(현지시간) 미·중 정상회담은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된다.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몽’ 비전을 내세운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란 전쟁, 대만 문제, 무역 현안 등 글로벌 어젠다와 민감한 양국 이슈를 놓고 마주 앉는다는 점에서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며 전 세계적 관심이 집중됐다. 양국은 관세와 첨단기술, 희토류 공급망 등을 둘러싼 기존 전선을 확대(빅 파이트)하거나 대타협(빅 딜)을 내놓는 대신 긴장을 억제하고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 ‘투키디데스 함정’ 들어 “공존” 강조
인민대회당 앞 광장에서 펼쳐진 화려한 환영 행사 직후 마련된 확대 정상회담의 모두발언에서부터 두 정상은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둘 모두 협력과 관계 개선을 말했지만, 접근법이 달랐고 뼈있는 말이 오갔다.
시 주석은 먼저 “‘중·미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 위험이 높아진다는 이론)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국 관계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는 역사와 세계와 인민의 질문이자 저와 대통령님이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적이 아닌 파트너가 돼 공동의 번영을 이루어 새로운 시대 대국 관계의 올바른 길을 만들자”고 했다. 충돌 대신 ‘관리 가능한 공존’ 프레임을 내세워 미국의 견제 및 압박 수위를 낮추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사업 협력 고대”…실리 우선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서로 전화를 걸고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 왔다.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라며 개인적 친밀감을 표했다. 그런 뒤 미국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방중 수행단에 포함된 사실을 거론하며 “그들은 무역과 사업 협력을 고대하고 있다. 전적으로 상호주의적일 것”이라고 했다. 대규모 대미 투자 유치와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 등 경제적 실리를 우선시하는 메시지로 읽혔다.
약 135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시 주석이 ‘중·미 건설적 전략적 안정 관계’라는 새로운 관계 정의를 제안한 대목이다. 그는 “협력에 기반하며, 경쟁하되 적정선에서 관리하고, 이견이 통제 가능하며,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되는 안정 관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진 기자
시진핑 ‘중·미 안정관계’ 제안…트럼프도 화답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함께 소통·협력을 강화하고 이견을 해결해 역사상 가장 훌륭한 미·중 관계를 열고자 한다”고 화답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국가”라는 말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말 ‘부산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G2 정상회의가 곧 열릴 것”이라며 중국을 사실상 G2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었다. 미·중 간 전략적 패권 경쟁이 불붙은 최근 10여년 내 워싱턴 DC 조야에서 ‘G2’라는 용어는 사실상 금기어다.
이번 회담에서는 양국이 경제·무역 분야에서 일정한 합의점을 찾기도 했다. 시 주석은 “양국이 전반적으로 균형 잡히고 긍정적인 성과를 도출했다”며 무역·통상 분야 합의 결과에 만족해 했다. 양 정상은 오는 11월과 12월 중국과 미국에서 각각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에도 합의했다.
14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톈탄공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백악관 “호르무즈해협 개방, 이란 핵무기 불허 합의”했다지만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최대 관심사였던 이란 문제를 포함해 민감한 쟁점들은 뚜렷한 해법을 도출하거나 성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양국 정상이 호르무즈해협 개방과 이란 핵무기 불허에 합의했다”며 “시 주석은 또한 중국이 호르무즈해협의 군사화와 그 이용에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또 “(시 주석이) 향후 중국의 해협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원유를 더 많이 구입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고도 전했다.
그러나 구체적 설명이 나오지는 않아 원론적 수준에서 합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 놓고 시진핑 “잘못 처리하면 양국 충돌”
특히 양국 간 가장 폭발력이 큰 대만 문제는 뇌관으로 그대로 남았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양국 충돌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대만 문제는 (미·중) 양국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한 뒤 “이 문제를 잘 처리하면 양국 관계는 총체적인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부딪치거나 심지어 충돌할 것이고, 미·중 관계 전체를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은 대만에 무기 판매를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한 적은 있다. 그러나 면전에서 ‘충돌’, ‘위험’ 등의 수위 높은 표현을 써 가며 대만 문제를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만 문제를 미국이 넘어서는 안 되는 레드라인으로 재확인하는 동시에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를 거듭 견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러 난제가 쌓인 두 정상 앞에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는 다소 후순위로 밀렸을 가능성이 크다. 신화통신은 두 정상이 의견 교환을 한 지역 현안들 중 한반도가 포함됐다고 알렸지만 구체적 설명은 없었다. 2017년 11월 베이징에서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에서 큰 진전은 없었더라도 ‘북한 비핵화’ 의지를 양측이 재확인하고 협력 강화를 약속한 것과 다소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지윤 기자
“트럼프, 이란전쟁 등 협상력 떨어진 상태”
이번 회담이 대대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것은 두 정상이 처한 처지와도 맞물려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종전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는 데다 관세 패소 판결에, 갈수록 악화하는 국내 여론으로 협상력이 떨어져 있던 시점이었다. 잭 쿠퍼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골치 아픈 문제들에 시달리며 힘이 떨어진 상태로 베이징을 방문한 셈”이라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말했다.
시 주석은 이러한 여건을 활용해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지만 그 역시 회담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시 주석 또한 경기 둔화와 청년 실업 등 국내 경제 압박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번 회담을 맞았다. 두 정상 모두 정면승부보다 상황 관리 정도에 만족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