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란 전쟁 둘러싼 동상이몽…사우디는 중동판 헬싱키 협정, 이스라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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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이 끝나기도 전 중동의 전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역내 국가들 간 셈법이 엇갈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판 헬싱키 협정 구상으로 외교적 안정화를 꾀하려는 반면 이스라엘은 무력 압박을 계속해 적대 세력의 완전한 궤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상처 입은 이란 더 위험…사우디, 전후 안전판 구상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서방 외교관들을 인용해 “사우디가 이란과 중동 국가들 사이의 불가침 조약을 전후 질서 구상의 하나로 검토해 왔다”고 보도했다. 사우디가 참고하는 모델은 1975년 체결된 헬싱키 협정이다. 냉전기 미국·유럽·소련이 긴장 완화 원칙을 함께 다룬 합의로 충돌을 관리하는 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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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현지시간)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오른쪽)이 사우디 제다에서 셰이크 압둘라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외무장관을 맞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가 이런 구상을 꺼내든 데는 전후 이란이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세로 이란이 약화하더라도 상처 입은 강경 정권이 더 공격적인 태도로 주변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사우디는 보고 있다. 미군의 역내 주둔이 축소될 경우 이란의 위협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이란을 패배자로 몰아붙이는 것보다 최소한의 상호 안전보장 장치 안에 묶어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FT는 “많은 유럽 국가들이 사우디의 제안을 지지하고 있고, 다른 걸프 국가들도 여기에 동참하기를 촉구하고 있다”며 “이란에 대한 안전 보장이 전후 안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핵 협상만으론 부족…미사일·대리세력 빠진 종전 논의에 사우디 우려

현재 진행 중인 미·이란 종전 논의의 한계도 사우디의 중동판 헬싱키 협정 구상에 한몫 하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양 측의 물밑 협상이 전쟁 종식과 호르무즈해협 재개방, 이란 핵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인접 국가들로선 이란의 탄도미사일·드론 전력, 하마스·헤즈볼라 같은 대리세력 지원 문제 등 실질적 위협이 협상의 주변부에 놓여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한 아랍 외교관은 FT에 헬싱키 협정 방식의 불가침 구상이 대부분의 아랍 국가뿐 아니라 이란에서도 환영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 문제는 역내 국가들이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이란의 기존 입장이 사우디의 관련 구상과 어긋나지 않다는 점에서다.

강경파 UAE가 변수…걸프 연대 균열 속 새 안보 축 찾는 사우디

그러나 중동판 헬싱키 협정은 이스라엘은 물론 걸프 국가 내부인 아랍에미리트(UAE)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FT는 “이번 전쟁 과정에서 이란에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 UAE는 이란의 공격적 행태에 다른 아랍 국가들이 더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을 비판해왔다”며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힌 상태”라고 지적했다.

사우디가 파키스탄·튀르키예·이집트 등과 전략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미·이스라엘·UAE와 구축했던 기존 중동의 안보 축을 재편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미다.

네타냐후는 “계속 싸운다”…사우디와 정반대 전후 구상

실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FT 보도가 나온 날 군사적 억제를 앞세우며 사실상 사우디와 다른 길을 걷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14일 예루살렘의 날 국가 기념식에서 “이란의 테러 정권은 그 어느 때보다 약해졌고 이스라엘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며 “우리는 급진 이슬람의 모든 위협에 맞서 단호하게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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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결렬된 4월 12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지상전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들은 이날 일제히 ″이스라엘군이 이란과의 전쟁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연합뉴스

그는 또 “이스라엘이 중동의 국면을 바꿨다”며 “이스라엘과 손을 잡는 것이 이롭다는 점을 깨달은 지역 내 온건 세력들과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온건 세력은 2020년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한 UAE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다자 안보 틀로 이란과 공존을 모색하려는 사우디와는 지향점도, 확보하려는 우군도 정면으로 엇갈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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