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강뷰 아파트, 슈퍼카보다 쉬웠죠”…4남매 키우는 ‘전업주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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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반칙왕 몽키'(20일 개봉)의 "10년차 전업주부" 문현준씨가 아내 조안나씨,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자택 식탁에서 지난 14일 포즈를 취했다. 포스터 속 그림은 육아하며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는 그의 모습. 사진 그레인풀

아기를 안고 요리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시장을 보는 별난 아빠가 있다. 스스로를 “4남매를 키우는 10년차 전업주부”라 소개하는 문현준(40)씨다. “바깥양반”으로 불리는 아내 조안나(41)씨가 직장일을 하는 사이, 오토바이 운전석 앞뒤로 아이 셋을 태우고 온 동네를 놀이터처럼 누비기도 한다. 돌쟁이부터 초등학생까지 아이들을 등·하원(교)시키고 먹이려면 지치지 않는 체력과 속도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행인이 “아이고, 위험하다” 하며 혀를 찰 때도, 아이를 넷쯤 낳고 보니 이렇게 답할 내성이 생겼다. “첫째 때도 같은 말한 분들 있었는데 잘 컸습니다. 이 아이가 넷째에요. 똑같이 잘 키우고 있습니다.”

20일 개봉 다큐 '반칙왕 몽키' #10년차 전업주부 문현준씨 #아내 외벌이로 4남매 키워 #"지금 이대로의 삶이 가장 행복"

4남매 아빠 '반칙왕' 만드는 사회가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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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반칙왕 몽키'(5월 20일 개봉)는 저출산 시대에 4남매를 키우는 문현준씨의 육아와 일상 모습을 경쾌하게 그렸다. 다큐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2023)로 전국 돌봄노동자 법적 지위 확보 및 처우개선 기본법 제정 끌어냈던 황다은, 박홍열 감독 부부가 전작에 이어 10년 이상 거주중인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서 촬영했다. 사진 스튜디오 그레인풀

2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반칙왕 몽키’는 공동 육아 마을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서 롤모델로 꼽히는 그의 유쾌한 육아와 일상사를 담은 영화다. ‘몽키’는 마을에서 문씨의 애칭(뭐든 잘 따라하고 뚝딱 잘 만들어, 어릴적부터 불려온 별명이란다). 마을 이웃이자 부부인 다큐멘터리 감독 겸 각본가 황다은 감독, 홍상수 영화 촬영감독으로 알려진 박홍열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두 감독은, 2016년 대안적 돌봄을 찾아 성미산마을로 이사 온 문씨가 체력과 시간을 ‘스펙’삼아 어떤 사교육도, 소속된 공동체도 없이 아빠 자신이 방과 후 놀이 교사가 되고, 산타가 되고, 군대 취사병 경력까지 총동원해 돈으로도 못 사는 경험과 추억을 온마을 아이들과 나누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 다큐를 제안했다.
다큐는 문씨 가족을 ‘반칙왕’으로 명명한다. 올해 1~2월 합계출산율이 간신히 0.9대에 턱걸이한 저출산 사회에서 △4남매부터 반칙이다. △남성 전업주부, △맞벌이도 모자랄 판에 외벌이란 점, △이웃 아이들까지 챙기는 것, △ “직장에 가족의 삶을 끼워맞출 수는 없다”는 지론의 엄마 안나, 그리고 △몽키의 존재 자체 등이 이른바 ‘죄목’이다.
문씨가 직접 찍은 인스타그램 세로 화면 영상들이 감독들이 촬영한 가로 화면과 수시로 교차한다. 이런 장면 전환 그 자체가 저출산 사회에 불시착한 문씨의 유쾌한 도발처럼 느껴진다. 편집 과정에서 문씨의 영상을 더욱 부각한 까닭이다.

부모는 취미생활 포기? 아이들과 함께 즐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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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반칙왕 몽키'(5월 20일 개봉)에서 문현준씨가 촬영 당시 셋째아들 세윤(현재 7살)과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다. 셋째를 낳고부터 보드를 되찾아왔고 아이들도 틈틈이 보드를 가르쳐주고 있다. 올해 문씨 가족의 목표는 홍대 거리에서 온가족이 함께 버스킹하기이다. 문씨는 "자녀들을 통해 다양한 분들을 만나는데, 많은 전업주부가 정체성 고민을 한다. 아이를 돌보고 있으면서도, 경력 단절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현재 아이와 함께하는 만족감과 행복을 찾아 나서지 않고, 유예하는 것은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진 스튜디오 그레인풀

14일 문씨와 함께 두 감독을 문씨의 집에서 만났다. 네 아이의 옷이 가지런히 걸린 4칸의 ‘관물대’를 지나자, 거실 벽에 삐뚤빼뚤 키를 표시한 손글씨가 가득했다. 아이들이 그린 엄마·아빠 얼굴 아래론 아이들이 쓴 신상이 소개돼 있었다.
‘엄마: 좋아하는 것: 가족, 잘하는 것: 청소…’ ‘아빠. 잘하는 것: 요리…’.
어쩌면 이 부부는 이렇게 철저히 아이들을 위한 행복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부모가 되기 전의 삶을 되찾고 싶은 순간은 없을까.
“자녀를 양육하며 많은걸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말문을 뗀 문씨가 덧붙였다. “저도 20대 때 취미가 많았어요. 촬영 즐겨했고, 좋아했던 운동은 유도랑 스케이트보드고….”
모두 다큐 속에서 문씨가 아이들과 늘 하던 활동들이었다.
“맞아요. 다 하고 있습니다.” 문씨가 미소지었다.

"한강뷰 아파트, 슈퍼카보단 4남매가 쉬웠어요" 

그가 대학에 가며 갓 상경한 20살때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삶이다. 대구 출신인 문씨는 1남 1녀 중 장손으로 온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기대에 부응하려고 서울 소재 대학을 택했다. 문득 “내가 원하는 삶을 20년 인생에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정학과로 전공을 바꾸고 취직도 해봤지만,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이란 생각은 안 들었단다. 그러다 여자친구가 임신소식을 알렸다. 대학시절 국토대장정에서 서로를 만난 바로 지금의 아내 조씨다. 연애 7년만에 그렇게 웨딩마치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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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반칙왕 몽키'(5월 20일 개봉)에서 문현준씨는 아이들의 방과 후 놀이를 직접 전담한다. 사진은 크리스마스 시즌 산타 복장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이다. 체력과 시간이 '스펙'인 그의 라이벌은 "재벌 아버지"라고. 사진 스튜디오 그레인풀

다둥이 가족은 의외로 철저한 계획 속에 탄생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남동생과 외롭게 자란 조씨는 엄마가 되면 ‘딸·딸·아들·아들’ 4남매가 북적이는 가정에서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한강뷰 아파트, 슈퍼카, 분기마다 해외여행 같은 목표에 비하면, 네 자녀를 낳고 기르는 건 쉬운 목표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부부만 노력하면 되니까요.”(문현준)
첫째 때는 부부가 맞벌이하며 장모의 도움을 받았지만, 둘째 딸 세연(10)부턴 모교에서 계약직 근무 중이던 문씨가 육아를 자처했다. 행정학과 시절 사례 연구를 했던 성미산마을로 이사를 제안한 것도 문씨였다.
청소년 지도사였던 아내 조씨도 육아휴직과 복직을 거듭하며 ‘워킹맘’으로 아이들을 돌봤다. 넷째부턴 10년 경력을 내려놓고 비정규직 사회복지사로 재취업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취업공백, 여섯식구 월 140만원으로 버텨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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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반칙왕 몽키'(5월 20일 개봉)에서 체육 대회에 참여한 조안나씨. 품안에서 막내 승윤이 잠들어있다. 조씨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직장을 옮겼다. 사진 스튜디오 그레인풀

아내의 재취업에 공백이 생겼던 시절, 부부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매달 140만원을 갖고 여섯 식구 살림을 꾸렸다. 가족과 함께여서 그 시절조차 추억이 됐다. 문씨는 이렇게 돌아봤다. “외식 안하고 이웃들과 각자 음식 가져와서 먹었더니 한달 식비가 50만원도 안 됐어요. 지금도 더 싸고 좋은 식재료를 찾아다니죠. 한솥 끓여 놨다가, 같이 아이 하원·하교시키는 이웃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요.”
다큐는 지난해 경기도 파주에서 개최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서 처음 상영됐다.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을 자처할 만큼 의젓하게 자란 두 딸은 그런 가족 모습을 대형 스크린에서 보는 걸 신기해했다. 문씨는 이번 다큐 촬영을 수락한 계기도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이 되니까 아이들이 기성 사회의 인식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가족의 맥락을 많은 사람에게 인증받을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가족의 삶이 외부적인 문제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는 게 행복”이라고 말했다.

감독 "나의 삶, 사회 선택 아닌 내 선택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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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황다은 감독과 다큐 주인공 문현준씨, 박홍열 감독이 문씨의 집에서 어깨를 맞댔다. 부부인 황 감독과 박 감독은 문씨와 10년째 한 마을에서 온가족이 왕래해온 이웃이기도 하다. 다양한 삶의 형태와 시도가 만나 성미산마을에선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킨다고 두 감독은 입을 모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황 감독과 박 감독은 역시 성미산마을에서 찍은 전작 다큐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2023)를 통해 전국 돌봄노동자 법적 지위 확보 및 처우개선 기본법 제정 끌어냈던 바다. ‘반칙왕 몽키’는 문씨의 가족이 반칙처럼 느껴지는 사회가 반칙이란 화두를 던졌다. 출산은 장려하면서 정작 산부인과, 소아과, 돌봄 인프라 등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황 감독은 “젊은 세대는 돈 없으면 결혼도, 출산도 못한다고 하는데, 나의 삶은 사회의 선택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어야 한다”면서 “영화를 통해 가보지 않은 삶의 다양한 풍경을 봐주시길 바랐다”고 의도를 전했다.

'반칙' 가족들과 함께하는 상영회

‘반칙왕 몽키’ 개봉에 맞춰 주인공 가족들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마련된다. 오는 23일부터 31일까지 에무시네마‧인디스페이스‧더숲아트시네마‧아트하우스모모‧상상마당 등 서울 내 독립예술영화관에서 다채로운 관객과의 대화(GV)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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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반칙왕 몽키'에서 문현준씨와 막내 승윤의 모습. 지금은 만 4세가 되어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사진 스튜디오 그레인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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