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 양반 오면 다 살아난당께”…20년째 낙도 누비는 ‘신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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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김봉식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가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장도 포구에 도착했다. 목포서비스센터 소속인 그는 20년째 낙도 출장 서비스를 전담 중이다. 이영근 기자

지난 15일 오전 11시, 전남 목포에서 배로 3시간을 가야 닿는 흑산면 장도(島)에 소형선 한 척이 들어섰다. 주민 50여 명이 사는 외딴 섬마을에 한 남성이 20㎏짜리 검은 배낭을 메고 양손엔 가득 짐을 들고 내렸다. 20년째 낙도 서비스를 전담하고 있는 김봉식(60) 삼성전자서비스 목포센터 엔지니어다.

그를 본 주민들은 “아이고 삼성 왔구먼”이라며 너도 나도 반가워했다. 서비스를 신청한 이동일(63)씨는 포구까지 손수레를 끌고 마중나와 짐을 나눠 들었다. 가파른 산비탈 골목을 오르던 중 한 할머니가 김 엔지니어를 불러 세웠다.

“우리 집도 와서 함 봐주쇼잉.”
“접수는 안 했는디, 뭣이 안 되는겨?”
“에어컨이 영 이상혀.”
“그라믄 먼저 들렀다 갈까요?”

이씨가 흔쾌히 그러자고 하면서 김 엔지니어는 할머니 집을 들러 10여 분간 실외기를 점검했고, 에어컨에서 다시 시원한 바람이 나왔다. 할머니는 고맙다며 미역을 건네려 했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고 다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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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장도에서 김봉식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가 고객의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가전 고치고 마음 얻고…섬마을 해결사 떴다

이번에는 냉장고 수리였다. 열교환기에 먼지가 잔뜩 쌓여 냉기가 돌지 않는 상태였다. 김 엔지니어가 묵은 먼지를 털어내자 멈춰 있던 냉장고가 다시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이 양반 손만 거치면 다 살아난당께. 신의 손이여”라며 웃었다.

그제야 처음 마중 나왔던 이씨 집에 도착한 김 엔지니어는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한 뒤 흰 봉투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삼겹살 3만원 어치가 들어 있었다. 육지처럼 물품 배달이 쉽지 않은 섬 특성상 주민 부탁을 받아 종종 생필품이나 상비약, 먹거리를 대신 사다 나르는 것이다.

이 곳에선 주고 받는 정이 흐른다. 에어컨 수리가 끝나자 이씨는 자신의 어선으로 김 엔지니어를 흑산도로 데려다줬다. 이씨는 “이렇게 먼 데까지 직접 찾아와주니 그저 고맙다”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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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장도에서 김봉식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가 고객의 부탁을 받아 대리 구매한 삼겹살을 건네고 있다. 이영근 기자

김 엔지니어는 지난 14~15일 이틀 동안 배 다섯 편을 갈아타며 총 283㎞를 이동했다. 흑산도·장도·홍도 등 3개 섬고객 18명을 찾아 냉장고·세탁기·TV·에어컨 등 32개 제품을 점검했다.

20년 동안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갑작스러운 풍랑으로 섬에 발이 묶이거나, 타고 가던 배가 거센 파도에 크게 흔들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지난해에는 어르신들 대신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기도 했다. 김 엔지니어는 “‘아들이 사고를 쳤다’는 전화를 받고 돈을 보내려는 어르신이 있어 전화를 바꿔 달라고 했더니 바로 끊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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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장도로 가는 배에 탑승한 김봉식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 목포서비스센터 소속인 그는 20년째 낙도(落島) 출장 서비스를 전담 중이다. 이영근 기자

삼성전자서비스는 낙도·오지 고객을 위한 ‘찾아가는 출장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전국 약 100명의 전담 엔지니어가 배와 산길을 오가며 고객을 찾는다. 업계에서 유일하게 울릉도에도 서비스센터를 두고 있다.

이준석 삼성전자서비스 프로는 “낙도·오지에서는 엔지니어들이 곧 ‘삼성’ 그 자체로 통한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고객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36년째 현장을 누빈 김 엔지니어는 오는 7월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다. 섬 주민들은 “후임도 잘하겠지만, 김씨만 하겠는가”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 엔지니어는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주민들과의 유대가 버팀목이 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남은 시간도 지금처럼 한 분 한 분 성심껏 찾아뵙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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