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감정의 골 같은 건 없다…서로의 골 위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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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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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의 공격을 이끌 두 에이스 손흥민(아래)과 이강인. 한국 팬은 이강인의 패스를 손흥민이 득점으로 연결한다면 세계가 놀랄 성적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사진은 2024년 태국전에서 골을 합작하고 기뻐하는 두 선수. 연합뉴스
2024년 3월 26일,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 이강인의 침투 패스가 칼날처럼 빈 공간을 갈랐다. 손흥민은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로 골네트를 흔들었다. 달려온 이강인이 펄쩍 뛰어오르며 안겼다. 손흥민은 두 팔 벌려 맞이했다. 환한 웃음이었다.
북중미 월드컵에 나설 한국 대표팀 최종 26인 명단이 16일 발표됐다. 예상대로 손흥민(LAFC)과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6월 중국전에서 골을 터트린 이강인이 손흥민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뉴스1
아홉 살 터울인 두 사람은 2년 전 ‘탁구 게이트’의 당사자다. 2024년 2월 아시안컵 준결승 전날 밤, 식사 후 탁구를 치려던 이강인과 팀의 결속을 강조하던 주장 손흥민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고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손흥민은 탈구된 손가락에 붕대를 감은 채 요르단전에 나섰지만 0-2 패배를 막지 못했다. 그날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품에 안겨 오랫동안 흐느꼈다.
이강인은 영국 런던으로 직접 날아가 고개 숙였다. 손흥민이 사과를 받아주면서 갈등은 봉합됐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날아라 슛돌이’로 국민의 사랑을 받던 이강인의 이미지는 흐려졌다.
2년이 지났다. 스물다섯의 이강인은 최전성기 나이에 접어들며 대표팀의 전술적 중심이자 실질적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PSG에서 핵심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유럽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누볐다. 전 동료 킬리안 음바페로부터 “슛을 너무 강하게만 차려 하지 말고, 부드럽게 밀어 차라”는 조언을 들은 뒤 이른바 ‘축구 지능’도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후배들도 그를 믿고 따른다.
서른넷 손흥민은 커리어의 황혼기를 지나고 있다. 미국 무대로 옮긴 그는 올 시즌 LAFC에서 어시스트 15개를 올리며 이타적인 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지만, 최근 11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치는 등 부침을 겪고 있다. 국가대표 주장 완장을 찬 경기만 어느덧 63경기. 한국 축구를 홀로 등에 업고 뛰어온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난해 10월 브라질과 평가전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이 공격을 전개하고 있다. 뉴스1
두 선수의 조합은 매력적인 동시에 까다롭다. 이강인은 측면에서 안으로 파고들며 송곳 같은 침투 패스를 찔러주는 스타일이다. 직접 드리블 돌파와 공간 침투를 즐기는 손흥민의 동선과 겹칠 때도 있다. 프리킥 상황에서도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둘 다 워낙 날카로운 킥을 지닌 탓에 전담 키커 자리를 두고 벌이는 선의의 경합은 지금도 남아있다.
강팀과 맞서야 하는 월드컵 본선에서는 둘이 동시에 공격에만 치중하면 뒷공간이 노출된다. 한 명이 더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유기적인 역할 조율이 필수적이다. 태국전에서 증명됐듯, 이강인이 정교하게 찌르고 손흥민이 날카롭게 파고드는 구조가 훨씬 효율적이다.
홍명보 감독은 “손흥민이 LAFC에서 한 칸 밑으로 내려와 뛰다 보니 직접적인 찬스가 적었던 것”이라며 베테랑 주장의 기를 세워줬다. 이강인을 향해서는 “2년간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매우 똑똑하고 생각도 바른 친구”라며 두터운 신뢰를 보였다. 이강인 역시 지난해 홍 감독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일었을 때 “우리의 보스”라며 지지하고 나선 바 있다.
두 손을 맞잡는 손흥민과 이강인. 뉴스1
손흥민의 나이를 감안하면 한국 축구에 이 두 천재가 동시에 공존하는 시간은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크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인 손흥민의 월드컵 최고 성적은 카타르 대회 16강이다. 스스로 “월드컵을 위해 LAFC로 이적했다”고 밝힌 만큼 이번이 진짜 승부다. 이강인은 앞으로도 기회가 많겠지만, 손흥민 같은 걸출한 포워드와 호흡을 맞추는 행운은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누가 더 밝은 태양인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한국 축구에 필요한 건 2024년 3월 서울의 밤하늘 아래서 보여준 이강인과 손흥민의 진심 어린 포옹이다. 둘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면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지만, 누가 더 빛나는지 경쟁을 한다면 두 선수 모두 월드컵은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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