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폭소에 기립박수 7분…칸 ‘호프’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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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제79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영화 ‘호프’의 배우 알리샤 비칸데르, 정호연, 테일러 러셀, 나홍진 감독, 마이클 패스벤더, 황정민, 조인성(왼쪽부터)이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홍진 감독의 10년 만의 신작 ‘호프’가 단숨에 칸영화제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호프’는 17일(현지시간),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총 22편의 진출작 중 12번째로 베일을 벗었다. 이날 밤 9시 30분 늦은 시각, 160분이란 긴 상영시간임에도 뤼미에르 대극장의 2300여석을 끝까지 지킨 관객들은 총 7분간의 기립박수로 감독의 과감한 실험에 호응했다. 외계인을 연기한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샤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등도 이날 나 감독, 주연 황정민·조인성 등과 함께 참석했다. 상영 후 나 감독은 객석을 향해 “이렇게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거듭 말했다.

작가주의 감독의 드라마 영화가 주를 이루는 칸 경쟁부문에서 ‘호프’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액션 스릴러란 점부터 파격이었다. 이런 대중적 장르 영화가 칸 경쟁부문에 호명된 것 자체가 “놀라운 일”(데드라인)이란 반응이다.

영화 배경은 1980년대 비무장지대(DMZ) 인근의 외딴 마을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은 마을 주민과 소가 줄줄이 죽어나가자 총을 들고 침입자를 추격한다. 마을 청년 성기(조인성) 무리도 가세한다. 그렇게 1시간 넘게 숨 가쁜 추격전이 지속된다.

왜 죽는지, 무엇에 죽는지도 모른 채 던져지고 짓이겨진 시체가 두메산골, 논두렁을 가리지 않고 쌓일 무렵 괴력의 생명체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고향을 잃고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이다. 영화엔 이들의 사연보다 질주하는 액션, 유혈낭자한 살육 그 자체의 스펙터클이 강조된다.

데뷔작 ‘추격자’(2008)부터 나 감독의 연출작 4편을 모두 초청한 칸영화제 측은 이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나 감독에 대해 “‘황해’(2011), ‘곡성’(2016)으로 컬트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고 소개했다.

‘호프’는 “불가해한 공포와 편집증에 휩싸인 공동체, 미숙한 경찰들을 보여준다”(스크린데일리)는 점에서 일면 ‘곡성’과 닮았지만 장르적으론 훨씬 확장된 변주를 보인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일찍이 본 적 없는 나홍진표 하이브리드 영화”라고 명명했다.

이튿날 오전 열린 ‘호프’ 기자회견에서 나 감독은 “우리가 왜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이 발생하며 다양한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가. 원인을 고민하다보니 우주까지 갔고, 자연스럽게 외계인이 나왔다”며 “찍다보니 액션이 재밌더라. 저조차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액션영화가 돼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패스벤더는 “나 감독과의 촬영은 다음에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며 ‘호프’를 “희귀한 영화적 체험”이라고 말했다.

‘호프’는 나 감독의 전작들만큼 폭력수위가 높지만,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 극의 분위기를 예전보다 가볍게 만들었다. 마을 노인(임현식)이 숲에서 용변을 보다가 외계인들을 만나게 되자, 설사를 틀어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장면을 두고 버라이어티는 “턱시도와 오트쿠튀르 의상을 차려입은 관객들이 ‘영화의 성전’에서 이 장면에 폭소를 터뜨렸다”고 전했다.

반면 외계인 CG(컴퓨터그래픽) 완성도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다.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는 “‘호프’의 첫 한시간은 황홀하나 외계인 등장부터 몰입이 깨진다”고 비판했다.

인간 대 외계인의 살육 구도도 뚜렷한 명분이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여백이 다양한 해석을 낳기도 했다. 영국 매체 스크린데일리는 “누가 진정한 괴물인지, 누구를 옹호해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고, 버라이어티는 “패스벤더,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CG로 분장한 채 무표정한 외계인 일족을 연기한 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아시아 배우들을 소외시키는 전통적인 방식을 교묘하게 뒤집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데드라인은 “인간들은 외계인들이 진짜 적일까, 하는 의문조차 품지 않는다. 이는 이민자를 추방해야 할 침입자로 여기는 현대사회에 대한 함의를 더한다”고 했다.

화제작이 없었던 올해 칸영화제에서 ‘호프’는 이튿날 상영까지 대부분 매진되며 달아오른 관심을 입증했다. ‘호프’는 ‘기생충’(2019)부터 6년 연속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의 북미 배급권을 선점한 네온이 북미·영국·호주 배급한다. 올해 칸영화제 수상 결과는 오는 23일 폐막식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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