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300억 대작 ‘대군부인’ 굴욕…감독 “판타지 설정에 매몰, 무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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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화 감독.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2007~2013)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싸우자 귀신아'(2016),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 '환혼'(2022), '환혼: 빛과 그림자'(2022~2023) 등을 연출했다. 사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제작진은 저뿐이잖아요. 시청자들께 불편함을 끼치게 되어 죄송하다고 명확히 사과하고 싶어 나왔습니다.

16일 13.8%의 시청률로 종영한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이 드라마를 연출한 박준화 감독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MBC에서 300억대 제작비를 투자했다고 알려진 대작으로, 아이유와 변우석의 주연 배우 캐스팅이 확정되며 지난해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극본은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2022년 MBC 드라마 극본공모에 우수상을 받은 신인 유지원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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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변우석(왼쪽)과 아이유가 지난달 6일 '21세기 대군부인'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혔던 이 작품이 감독의 사과로 마무리된 건 ‘역사 고증 논란’ 때문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일제로 인한 조선 왕조의 멸망 없이, 21세기에도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왕실이 존재해 입헌군주국이 된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계급제 역시 남아있는 이 사회에서, 재벌이지만 계급이 평민인 성희주(아이유)와 왕족이지만 권력은 잡을 수 없는 선왕의 차남 이안대군(변우석)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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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군부인'의 11회 방송장면. 사진 MBC 유튜브

논란은 지난 15일 방송된 11회에 불거졌다. 이안대군의 즉위식 장면에서 제후국이 사용하는 ‘천세’ ‘천천세’라는 표현이 쓰이고, 독립된 나라의 황제가 쓰는 십이면류관 대신 제후가 쓰는 구류면류관이 사용되며 시청자들과 일부 역사학자로부터 “중국의 ‘동북공정’ 작업에 빌미를 주는 것이 아니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제작진은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재방송·VOD·OTT에서 해당 부분의 오디오와 자막을 수정하겠다고 했다. 주연배우 아이유와 변우석은 18일 개인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박 감독은 이날 “4화 분량의 대본이 나온 상태에서 연출을 결정했다”며 “당시에는 왕실의 남자와 강한 성향의 평민 여자의 러브 스토리가 강했다. 그 뒤로부터는 ‘21세기에도 왕실이 남아있다면’이라는 가정에 따라 판타지적 상상을 더하며 함께 만들어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선의 왕실을 기준으로 자문을 받았다. 관혼상제를 담은 장면은 웬만하면 고증에 맞게 촬영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와 현대 사이 100년 이상의 공백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신분제가 흐려지는 등 어느 정도 차이가 생겼으리라 생각돼 극적 허용 아래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천세’를 외치는 장면과 구류면류관을 쓴 장면에서도 박 감독은 “자문해주신 분이 있었다”며 “일상적이지 않은 (말인) 건데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문하는 분께 요구한 건 조선왕조가 남아있다면 그 왕조의 모습을 우리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말해달라는 거였다. 즉위식 장면이 그 결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의 억압을 받은 상황을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보여드리려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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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속 한 장면. 입헌군주국이라는 설정 아래 왕실의 이안대군(변우석, 오른쪽)과 재벌 성희주(아이유)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MBC

그는 “극적 허용이 발생하는 ‘판타지 설정’에 제작진이 매몰됐다”며 사과했다. “판타지가 답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주적이었던 역사인 대한제국 시기를 왕위 즉위식에 표현이 돼야 했었는데, 설정에 매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제가 너무 무지했다”면서다.

박 감독은 “드라마를 할 때 매번 ‘누군가 내 드라마를 보면서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코믹이 있는 드라마를 많이 했다”며“이 드라마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려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고민하는 모습으로 임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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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군부인 홈페이지에 적힌 주요 연표. 왼쪽 상단에 적힌 '정조' 이후의 왕들은 모두 드라마 설정 상 새로 쓰인 걸로 나온다. 사진 MBC 홈페이지 캡처

드라마 홈페이지에 올라온 ‘주요 연표’에 따르면 실제 역사와 다르게 설정한 건 조선의 22대 왕 정조(1752~1800) 이후부터다. 실제로는 어린 나이 사망한 문효세자(1782~1786)가 그대로 왕위를 이어 통치하고 1831년 사망한 것으로 설명된다. 입헌군주국은 2차 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1945년 선포된다고 설정했다. 박 감독은 “해당 연표는 작가가 공모전에 내기 전에 적은 내용에 기반하여 올린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실존 인물, 누군가를 기점으로 한 고증보다는 전체적인 조선 왕실을 기준으로 고증을 받았다고 하는 게 맞다”고 전했다.

대군의 섭정이 드물었던 조선의 역사와 달리 이안대군의 섭정을 초기 설정으로 잡은 데 대해서도 박 감독은 “섭정이 (이안대군과 성희주의) 관계 시작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설정이 없으면 스토리 자체가 표현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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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군부인의 6회 장면. 정, 재계 유력 인사들을 비롯한 고위층이 모인 내진연의 2막인 '왈츠 파티'에 성희주와 이안대군이 참석한 장면이다. 사진 MBC

드라마에는 와인을 마시며 왈츠를 추거나, 총리와 대군이 체스를 두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박 감독은 어떤 레퍼런스를 두고 현대의 왕실을 상상했냐는 질문에 “연회장 등 행사의 모습을 꼽으며 유럽의 왕실을 참고했다”고 했다. 그는 “작가가 브리저튼을 좋아했다. (작가가) 과거 순정만화를 보며 왕실의 공간과 무도회 등을 꿈꾸며 그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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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속 혼례 장면. 사진 MBC

박 감독은 “전통 의상은 고민을 많이 했는데, 현대의 왕실에서 모든 사람이 한복을 입을 것 같진 않다는 생각에 80%의 전통을 이윤(왕)이 가지고 있다면 대비는 70%, 이안은 50%, 나머지 사저 사람들의 의상에 30% 정도의 전통이 녹아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성희주는 전통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극단의 사람이라고 봤다”고 했다.

그는 논란이 커진 이후 배우들과 통화를 했다며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배우들이 ‘감독님 고생하셨다’고 연락했다. ‘좀 더 서로가 책임감 있게 고민하고 노력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작가와 대화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박 감독은 “작가도 어찌보면 개인의 행복이 위치와 명예가 아닌 평범함에서 온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표현 안에서 미숙했다고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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