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호프’ 판권 완판…세계는 이미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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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호프’의 한 장면.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 ‘호프’는 1980년대 비무장지대(DMZ) 인근 마을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주민들의 추격전과 유혈 낭자한 사투를 그렸다. [사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나홍진 감독 영화 ‘호프’의 수상은 불발됐지만, 79회 칸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계에 희망을 남겼다.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장에 위촉됐고, 나 감독은 대중적 장르인 액션과 스릴러가 결합된 SF로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연상호 감독(‘군체’), 감독 주간에 초청된 정주리 감독(‘도라’), 학생 부문에 초청된 진미송 감독(‘사일런트 보이시스’)과 최원정 감독(‘새의 랩소디’)도 있다. 진 감독은 학생 부문 2등상을 받았고, 최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처음으로 학생부문에 초청됐다. 박 감독은 개막식 직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더 이상 영화의 변방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침체를 겪던 극장가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으로 되찾은 활기가 칸영화제와 함께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1억명을 간신히 넘기며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2억2667만명이 찾았던 2019년의 반토막도 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칸영화제에 초청된 ‘군체’가 개봉 나흘 만인 24일 오전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685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보다 빠른 속도다. 올 여름 개봉하는 ‘호프’가 배턴을 이어 받으면 극장가는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그간 나 감독은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영화를 추구하면서도 대중과 유리되지 않는 작품을 추구해왔다. 그가 앞서 내놓은 세 편의 장편 영화 ‘추격자’(2008), ‘황해’(2010), ‘곡성’(2016)은 각각 504만, 226만, 687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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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의 첫 글로벌 시사회가 열린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 공연장 팔레 데 페스티발 앞. 관객들이 ‘호프’의 시사회 티켓을 구하기 위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스1]

한국 영화의 글로벌 흥행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호프’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영미권 주요 매체들에게 ‘재미’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미국 인디와이어는 “경쟁 부문 최초로 흥행도 가능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영어권 인구 13억명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문화 소비 시장으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북미 수출을 통해 영화 산업을 살리는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호프’는 영화제 기간 주요국에 판권을 ‘완판’하며 현재 한국 영화로는 역대 최고 해외 판매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군체’도 120여개국에 선판매됐고, 박찬욱 감독의 신작 ‘래틀크릭의 강도들’은 워너브러더스 계열사가 북미 판권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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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희망과 함께 과제도 남았다. ‘호프’는 과작(寡作) 감독인 나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공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호프’ 이전 한국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4년 간 경쟁 부문에 진출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모든 부문에서 초청받지 못하는 전멸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년 가까이 박찬욱·봉준호·홍상수 등을 잇는 다음 세대 거장이 나오지 못한 탓이다. 세대 교체에 성공한 일본 영화계가 지난해엔 70~90년대생 감독만 5명, 올해 70~80년대생 감독 3명을 칸에 보낸 것과 비교된다.

한국에서 ‘넥스트 나홍진’이 나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다양성 부족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했다. 한국 영화는 범죄·스릴러·액션·사극 등 특정 장르를 선호한다. 기존의 흥행 요소를 답습하려는 상업주의 영향이다. 영화 감독이 되는 길이 좁고 사실상 ‘엘리트 코스’가 존재한다는 점도 다양성 측면에서 불리한 요소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계 관계자는 “국내에선 한국예술종합학교 또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를 나온 신예 감독이 수십억의 투자를 받아야 개봉에 성공할 수 있다”며 “같은 교육 과정을 거친 감독과 배우들이 점점 ‘이너 서클’이 되면 다양성 측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선 영화 감독을 배출하는 대학 등 교육 기관도 다양하지만 독학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도 1억~2억원대의 초저예산 영화로 데뷔할 수 있다. 김헌식 영화평론가는 “‘아이언맨’도 1편은 가볍게 만든 B급 영화로 출발했다”며 “처음부터 큰 투자금을 쏟아 붓지 않고도 흥행하는 다양한 영화가 나오려면 B급 영화가 나오고 개봉할 수 있는 루트가 많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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