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배우 김향기 “모든 책은 쓸모 있어”…그가 철학잡지 펼친 까닭 [젠지GenZ의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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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지GenZ의 책장
1999년생 Z세대 기자가 Z세대 독자를 만나 지금 읽고 있는 책 한 권을 묻습니다. 멋짐과 진심 사이, 우리의 읽기는 어떤 모습일까요. ‘텍스트힙’이라는 말을 걷어내고 독자의 진짜 책장을 들여다보는 기획, ‘젠지의 책장’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2000년생 배우 김향기입니다. 두 번째 주인공의 책장부터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에서 매주 월요일 공개합니다.

김향기의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영화 데뷔작 '마음이...'(2006) 속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아역 출신 배우에게는 몇 가지 수식이 붙는다. ‘익숙한’ 얼굴의 흥행 배우, 과거에 비해 ‘성숙해졌다’는 표현…. 그러나 업력 20년을 채운 배우 김향기는 다르다. 데뷔작 ‘마음이...’(2006)부터 쌓아 온 그의 연기 세계는 미지(未知)에 가깝다. 배역마다 실존 인물처럼 단단히 세워내는 연기력 덕분이다.
천만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로 2018년 최연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열아홉 김향기를 두고, 심사위원들은 “가상의 세계를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평했다. 이제 스물일곱이 된 그는 작품의 장르, 배역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 중이다.
배우 김향기의 세계를 누가 단정지을 수 있을까? 최근 공개된 쿠팡플레이 시리즈 '로맨스의 절댓값'에서 그는 희극에 도전한다. 연합뉴스
최근 김향기는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 주연에 도전했다. 지난달부터 쿠팡플레이에서 방영 중인 시리즈 ‘로맨스의 절댓값’에서다. 그가 연기하는 주인공 여의주는 무려 선생님들을 주인공으로 BL(Boy’s Love) 웹소설을 쓰는 고등학생 작가. 이 작품에서 김향기는 글로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펼쳐내는 여의주가 되어 키보드를 두드린다.
여의주라는 인물과 달리 실제 김향기가 글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보다 독자에 가깝다. ‘집과 현장을 가리지 않고 책을 펼친다’는 일화는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혀졌다. 연기 세계가 또 한 번 넓어지고 있는 지금, 김향기는 어떤 책을 손에 쥐고 있을까.
서면으로 만난 김향기는 “철학 잡지 『뉴필로소퍼(New Philosopher)』를 읽고 있다”고 답했다. 그가 읽은 1월호 잡지의 주제는 이 문장.
“감정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뉴필로소퍼 33호의 표지. 사진 바다출판사
한국의 바다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계간지 『뉴필로소퍼』는 ‘일상 속 철학’을 지향하는 잡지로, 2013년 호주에서 창간됐다. 철학적 논의를 무겁게 다루기보다는 철학적 질문을 토대로 한 가볍고도 넓은 주제의 글을 싣는다.
- 『뉴필로소퍼』 33호를 읽고 있다고 했다. 다른 책에 비해 잡지는 접하기 어려운 장르인데.
- “동네 도서관 잡지 코너를 둘러보다가 표지 속 힐마 아프 클린트의 그림에 이끌려 한 장씩 넘겨봤다. 잡지에서 다루는 내용이 좋아서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꺼내 볼 수 있도록 전자책 정기 구독을 시작했다.”

스웨덴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 사진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33호의 표지는 스웨덴의 여성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의 1922년 작품 ‘무제’다. 대부분의 화폭이 붉게 물든 가운데 확장 중인 청록색 공간이 눈에 띈다. 쉽게 의도를 알기 어려운 그림이지만, 그것이 ‘감정’을 두드리는 추상화의 매력. 표지 외에도 책 속에 그의 그림이 여럿 실려있다.
- 33호를 따라 읽어봤다. 감정과 이성을 두고 저울질해 온 철학사부터 개별 감정을 주제로 한 소논문, 내밀한 감정을 다룬 에세이 등 다양한 글이 실려있었다. 그림과 만화까지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그렇다. 복잡한 철학적 관점도 짧고 이해하기 쉽게 제시해준다는 게 이 잡지의 매력이다. 배우로서는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를 연구할 일이 많은데,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 도움을 받았다.”
- 원론 혹은 개념을 다루는 글들이 실려있다 보니 조언처럼 느껴지는 구절도 많았다. 『뉴필로소퍼』를 읽은 덕에 바뀐 것이 있다면.
- “‘복합적인 내 모습을 너무 심각하게 다루지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두자’는 마음가짐을 배웠다. 그리고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생각보다 집중력이 짧다는 의외의 면모도 발견했다(웃음).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좋은 문장을 만나면 자꾸 소리 내어 읽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됐다. 아마도 그 울림을 머릿속과 마음속에 더 깊이 새기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 이 잡지에서도 소리 내어 읽고 싶었던 구절이 있었나.
겸손한 자 앞에서 분노가 일지 않는다는 것은 심지어 개를 봐도 알 수 있다. 개들은 앉아 있는 사람은 물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진지한 태도일 때 함께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자들에게도 평온함을 느낀다.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대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이 문장을 꼽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고전 『수사학』의 2권 3장의 발췌본으로, 우리가 언제 분노의 반대 감정인 평정심(평온함)을 느끼는지를 분석한 내용이다. 일상 속 감정에 대한 대규모 연구조사 ‘6만 명에게 묻다’와 미이샤 체리 교수가 쓴 글 ‘두려움의 쓸모’ 사이에 실려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직접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철학적인 관점으로 쓰여있다 보니 읽다가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며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
- 일정에 바빴을 텐데 이 잡지는 언제 읽었나.
- “주로 이동 시간 중 차 안에서, 혹은 일정이 없는 날 침대에 편히 누워 휴식을 취할 때 읽었다. 틈새 시간에 가볍게 읽기 시작해도 금방 몰입하게 되는 힘이 있는 잡지다. 잡지는 1월 말에 만났는데, 3월 말인 지금 한 권을 다 읽었다.”

김향기 배우가 읽고 있는 뉴필로소퍼의 전자책 구독 책장. 사진 김향기
- 원래 인문과학을 다루는 도서에 관심이 많은지 궁금하다. 평소의 책 취향을 소개한다면.
- “평소엔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뇌과학과 생물학을 좋아하고, 최재천 교수님의 저서들을 자주 찾아 읽는다. 요즘은 일상의 호흡에 맞춰 짧고 밀도 있는 글들을 주로 찾게 된다.”
- 그럼 이 잡지와의 만남은 필연적이었겠다. 상황과 취향에 잘 맞는 선택지였으니.
- “그렇다. 소설이나 과학 서적을 잡으면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내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다. 한곳에 빠지면 멀티태스킹이 잘 안 되는 성격이라 한동안 독서와 거리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잡지는 만나자마자 나와 비슷한 성격이거나, 바쁜 일상을 보내는 분들에게 최적의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담백하면서도 삶에 유용한 통찰을 주는, ‘영리한 책’ 같다.”
출연작만 40여편인 중견배우 김향기는 지난해 연극에도 도전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6월 공개될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도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다. 사진 크리컴퍼니
- 최근 독서와는 어느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나.
- “지난해 기준으로 보자면 쉬는 기간 동안 완독한 책은 다섯 권이다. 책을 읽는 태도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날은 책 속에 완전히 파묻혀 매달리듯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필요한 부분에서만 영감을 얻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싶은 부분만 읽는다.”
- 책 속에 파묻히게 만들어주는 환경이 있는지 궁금하다.
- “주변 소음을 차단해 주는 헤드셋, 그리고 커피 한 잔. 여기에 방 침대나 조용한 동네 카페라는 공간이 갖춰진다면 완벽한 독서 환경이 완성된다.(웃음)”
'젠지의 책장' 연재에 참여하는 인터뷰이들에게 책과 함께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셀피 한 장으로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휴대폰으로 책을 읽어 책과 함께 사진을 찍기 어렵다는 김향기는 헤드셋을 낀 모습의 셀피를 보내왔다. 사진 크리컴퍼니
- 김향기에게 독서란 어떤 의미인가.
- “내가 어떤 태도로 임하고 어디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의 모든 책은 언젠가 반드시 쓸모가 있다고 믿는다. 독서는 당시의 내가 어떠했는가를 떠올리게 하는 한장의 사진 같기도 하다. 과거에 밑줄을 쳐가며 읽었던 책을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면, 비록 문장 자체는 가물가물할지라도 그때와는 또 다르게 변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면 스스로가 참 대견하게 느껴진다.”
- 답한 것처럼 과거에 읽은 책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미래에 읽을 책은 설렘을 동반할 거라고 생각한다. 장바구니에 담아 뒀거나,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 “최근에는 구마시로 도루(熊代享) 작가의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생각지도, 2026)이라는 책과 오하림 작가의 『일본 광고 카피 도감』(서교책방, 2026)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조만간 이 책들과도 기분 좋은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2000년생 배우 김향기의 책장
배우 김향기가 최근 읽은 책이나 읽으려고 생각한 책들. 왼쪽부터 『뉴필로소퍼 33호』,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일본 광고 카피 도감』. 사진 바다출판사, 생각지도, 서교책방
『뉴필로소퍼』33호(2026년 1월호, 바다출판사)= 김향기가 지금 읽고 있는 책. 33호에서는 “감정이라는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건강한 개인으로도 살아갈 수 없고, 단절과 다툼만 가득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강희재 편집장의 여는 말처럼 ‘감정’의 복합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기술철학자, 철학과 교수, 저널리스트, 작가, 신경과학자의 언어로 감정을 이리저리 뜯어보는 18편의 글과 1편의 만화가 실렸다. 한국어판에만 실린 국내 연사의 인터뷰나 에세이 4편도 포함됐다. 한국어 번역판은 매년 1, 4, 7, 10월을 주기로, 호주 본사의 영문판과 약 2~4개월 시차를 두고 출간된다. 한국처럼『뉴필로소퍼』를 번역 출간하는 곳은 중국과 아랍어권 정도다. 영문판은 미국, 캐나다, 유럽 등 20여 개국에 유통 중이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생각지도, 2026)= 일본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구마시로 도루의 인문서. 저자는 현대 일본의 도시 시스템이 효율성과 최적화를 추구한 덕에 ‘쾌적함’이라는 감정을 불러왔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쾌적한 사회’는 타인을 향한 노골적인 혐오와 배제, 통제의 동력이 되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며 이 책에 “현대 사회에 대한 뼈 때리는 진단과 처방전이 담겨 있다”고 추천사를 썼다.
『일본 광고 카피 도감』(서교책방, 2026)= 광고회사와 무신사, 29CM 등 패션업계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한 저자 오하림이 스무살이던 2008년부터 18년간 수집한 일본 광고 속 카피 명문장을 도감 형식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단지, 지고 싶지 않았다”(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프로모션), “사랑이라든지, 용기라든지,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타고 있다.”(JR큐슈 철도) 등 마음을 울리는 시어 같은 카피와 함께, 저자의 개인적인 ‘카피 덕질 일기’가 수록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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