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마이클 잭슨과 한국의 사연들, 기념사진을 찍기까지 [송원섭의 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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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우) 대통령이 취임식 다음날인 1998년 2월26일, 청와대에서 마이클 잭슨과 만나고 있다. 잭슨은 전날 취임식 참석차 내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영화 ‘마이클’의 100만 관객 돌파와 함께 마이클 잭슨과 관련된 추억을 되새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글로벌 스타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넘어,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스타들을 만들어 내는 시대지만, 지난 세기에는 세계적인 톱스타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일은 어쩌다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들이었죠.

‘잭슨의 시대’에 일선 취재를 맡았던 덕분에, 제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생겼습니다. 그중의 최고는 아무래도 이 사진일 겁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사진을 남기게 되었는지, 우선 잭슨과 한국의 긴 인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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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과의 유일한 기념사진. 송원섭 기자

1993, 무산된 내한공연
1993년. 잭슨의 월드 투어를 후원하던 펩시콜라가 적극적으로 한국 공연 유치를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첫해. 국내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다국적 기업의 지나친 상혼’이라거나 ‘안전이 우려된다’는 여론이 이어지더니, 결국 문화체육부는 “정부가 금융실명제 등 사회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근검절약이 요구되는 사회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연 불허 판정을 내렸습니다. 지금으로선 너무나 어이없는 판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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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일간지에 실린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광고

1996년, 모든 장애를 뚫고

1993년에도 잭슨의 공연 결심에는 한국인 사업가 최규선 씨와의 친분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한번 실패를 경험한 최 씨는 이번엔 국내의 정계와 언론계에 영향력이 컸던 태원예능의 정태원 대표를 파트너로 선택했고, 결국 1996년 10월11일과 13일, 서울 잠실 주 경기장에서 2회 공연이 성사됐습니다.

하지만 티켓 판매가 시작된 뒤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50여개 기독교 관련 시민단체가 공연 저지에 나선 것이죠. 명분은 티켓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과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논란과 관련, 공연이 ‘한국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그런 시절도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겠죠.

반대 주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미국의 흑인 단체인 NAACP(전미 유색인종 발전협회)였습니다. 이 단체는 당시 “만약 한국에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반대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인종차별로 볼 수밖에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는 반대 논리를 무력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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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11일의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성사된 공연, 쏟아진 화제

마이클 잭슨의 한국 공연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지만, 가장 큰 화제는 공연 이틀째인 10월 13일, ‘마이클 잭슨과 함께 공중으로 올라간 남자’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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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1996년 10월13일 공연중 난입한 관객 김모씨를 보호하며 크레인 위에서 노래하고 있다. 공연 영상 캡처.

공연 도중, 잭슨이 크레인을 타고 8m 상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19세의 대학생 김 모 씨가 무대 위로 뛰어올라 잭슨을 껴안았습니다. 김 씨는 잭슨과 함께 공중으로 올라갔고, 양팔을 번쩍 들며 감격스러워 했지만, 잭슨은노래하면서도 침착하게 김 씨의 허리를 안아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35개국에서 82회에 걸쳐 펼쳐진 ‘히스토리 투어’ 공연 가운데 가장 놀라운 순간이었을 겁니다.

당초 태원예능 측은 2회 공연에 각 6만5천석씩을 배치했지만 대략 8만석 정도가 판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추후 태원예능은 이 내한공연으로 7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수지상으로는 10억원의 적자였다고 밝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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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마이클 잭슨. 청와대사진기자단

갑작스러운 방한, 무주와 DJ

1997년 11월 18일 아침, '마이클 잭슨이 오늘 한국에 온다'는 소문이 갑자기 돌았지만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잭슨이 그렇게 비밀리에 올 이유가 없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오후, 무주리조트에서 촬영한 마이클 잭슨의 사진이 연합통신에 보도됐습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뒤, 곧바로 헬리콥터를 타고 무주 리조트로 이동한 것이었죠. 잭슨은 무려 4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공언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IMF 사태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잭슨의 투자 소식과 함께 당시 무주리조트의 소유주였던 쌍방울 계열 주식은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투자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요.

그리고는 21일, 서울로 이동해 아태평화재단을 방문, 당시 김대중 이사장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가 한 달 남은 시점. 그리고 이 인연으로 잭슨은 이듬해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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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25일 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공연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마지막 방한

1999년, 마이클 잭슨은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라는 대형 연합 공연 구상을 발표합니다. 과거 ‘위 아 더 월드’ 같은 슈퍼스타들의 국제적인 협력과 기부를 끌어냈던 잭슨은 다시 한번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결심을 한 것이죠. 그리고 그 첫 무대가 6월 25일, 한국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잭슨 측은 6월 25일이라는 상징적인 날에 비무장지대에서 공연을 갖고  한국 평화 통일에 대해 국제적 여론을 일깨우겠다고 선언했지만, 공연장도 없는 야외에서 세계적인 톱스타들을 초청해 공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죠. 결국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공연이 열렸고 머라이어 캐리, 보이스 투 멘, 루더 밴더로스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 홍콩의 여명, 배우 스티븐 시걸, 한국의 H.O.T와 S.E.S가 무대에 섰습니다.

잭슨은 그대로 독일 뮌헨으로 이동, 27일에도 공연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당초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한다는 공언과는 달리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은 단 2회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상 잭슨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서울을 네 번 방문했고, 두 차례에 걸쳐 3회의 공연을 치렀습니다. 이 정도면 당시 잭슨이 갖고 있던 스타로서의 위상보다는 한국과 상당히 친숙한 관계를 유지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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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히스토리' 앨범 재킷. 1996년 잭슨의 첫 내한공연은 히스토리 앨범 발매 직후 이뤄진 히스토리 투어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사진 소니뮤직코리아

문제의 사진은 언제 어떻게?

마지막으로 ‘문제의 사진’에 대한 설명입니다. 1996년, 서울 공연을 앞두고 공연 주최 측은 한국 주요 매체 기자들과 함께 모스크바 공연을 참관합니다.

이 사진은 1996년 9월 17일, 모스크바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촬영됐습니다. 당초 기대는 공연장에서 ‘서울 공연 취지에 대해 간단한 회견을 하자’는 것이었지만, 잭슨은 컨디션을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고, 대신 ‘원하신다면’ 기념 촬영을 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원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일. 경기장에 도착한 한국 취재진은 잭슨의 분장실 앞의 긴 줄에 합류했습니다. (3인 1조. 당초 저 사진도 한국 취재진 3명이 잭슨과 함께 촬영한 것입니다만, 나머지 두 분은 초상권을 생각해 생략했습니다) 잭슨 앞에 섰을 때, ‘사람인지 인형인지 구별하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정교하고 매끈한 모습이었던 거죠. 그 인형이 입을 열어 물었습니다.

“Where are you from?”
“...Korea, south”
“Oh, Korea! I love you.”

맞닥뜨리면 소감이라도 한마디 물을 생각이었지만, 도저히 시간을 끌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바로 플래시가 두 번 터졌고, 진행요원들은 다음 촬영 조를 밀어 넣으며 재촉했습니다. 이때 촬영한 사진도 거의 6개월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날은 대략 20년간의 기자 생활에서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이클 잭슨과 사진을 찍고, 잭슨의 공연을 조명탑 옆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저 황홀했다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죠. 이날을 시작으로 그의 공연을 네 차례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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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 '마이클'의 한 장면. 마이클 잭슨의 조카 자파 잭슨이 마이클을 연기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마이클’을 보면서도 그의 공연을 처음 본 날의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마이클’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가 나와 있어 딱히 보탤 말이 없지만, 이번 작품의 흥행 성공을 계기로, ‘마이클’에 다뤄지지 않은 그의 90년대 이후 삶에 대해서도 후속 영화가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선명하게, 그의 모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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