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첼리스트 한재민이 빨간 양말을 벗었다…“덜어낼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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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한국에서 루체른 심포니와 함께 연주를 앞두고 있는 첼리스트 한재민. 사진 빈체로

“뜨거운 연주를 좋아해요. 무대에 올라가면 어쩔 수 없이 본능이 나오고요.”

첼리스트 한재민(20)은 자타공인 ‘온도가 높은’ 연주자다. 무대 위에서 소리, 감정의 극한을 보여준다. 이달 초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그게 내가 가진 색깔”이라고 했다.

2022년 경남 통영의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할 당시 한재민의 뜨거움이 특히 화제였다.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을 결선에서 연주하며 악기의 줄을 두 번 끊었기 때문이다. 처음 끊어졌을 때 한재민은 지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무대 뒤에서 줄을 교체했다. 하지만 연주를 다시 시작하고 15분 후쯤 같은 줄이 또 한 번 끊어졌다.

한재민은 콩쿠르에서 무대 뒤로 두 번 들어갔다 나오고도 우승한, 진기록을 남겼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첼리스트 주연선(중앙대 교수)은 “가장 두꺼워서 웬만하면 잘 끊어지지 않는 C선이었다. 한재민의 트레이드 마크인 불타는 듯한 에너지를 보여준 장면”이라며 “연주 중단은 순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라고 기억했다.

콩쿠르와 공연 무대에서 한재민은 늘 드라마틱했다. 어디에서 에너지가 나오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무대에 올라가면서 뜨겁게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한재민은 의외의 답을 이어갔다. “오히려 요즘에는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어떤 변화가 생긴 건가요?
“몇 년 전까지는 하고 싶은 만큼 다 표현했던 것 같은데요, 요즘은 덜어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하고 싶을 때마다 다 해버리면 더 중요한 클라이맥스가 가려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요?
“제 연주를 들어보고 그런 아쉬움을 느꼈거든요. 지금 연주를 준비하고 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 특히 그래요. 아주 극적인 작품인데, 감정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야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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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부터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첼리스트 한재민. 올해로 20세가 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1919년 작품인 첼로 협주곡은 이례적으로 어둡고 깊은 음악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참상이 작곡가에게 스며든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한재민은 이 곡을 2021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했고 3위에 올랐다.

엘가 협주곡은 한재민이 최근 연이어 연주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4월 스위스 루체른에서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미하엘 잔데를링과 함께 이 곡을 연주했다. 6월 안데르마트와 루체른에서 다시 협연한 후 7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밝은 곡보다는 어두운 음악, 비극적 작품에 어울리는 첼리스트라는 평을 듣죠. 전쟁의 영향이 있는 음악은 어떻게 해석하나요.
“어두운 곡을 연주할 때 더 편하고 자연스러워요. 그런데 엘가의 협주곡은 비극이지만 내면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는 슬픔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악보의 맨 앞에 문장 하나를 써놨어요. ‘승리는 했지만 남은 것은 죽음과 슬픔뿐’이라고요.”
어떤 뜻인가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신기하게도 구체적인 장면이 떠올랐어요. 한 영국 장교가 가족을 떠나 전쟁에 나가는 장면,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 바다 위를 항해하는 거대한 배, 그리고 도처에 있는 죽음 같은 것들이요. 특히 중간 부분인 3악장에는 너무 슬퍼서 눈물도 나오지 않는 감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거기가 클라이맥스죠.”
감정을 뜨겁게 표현하는 쪽은 아니군요.
“속으로 삭이는 거죠. 그렇게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물론 무대에 올라가면 또 다 표출하게 되기도 해요. (웃음)”
15세에 이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각종 대회에서 최연소 기록을 세웠죠. 이제 해석의 방향이 조금 바뀌는 시기인가요?
“한 음악가가 8살에 했던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많아지고 있고, 과도한가 싶을 정도로 고민이 많아요. 당연히 거쳐야 할 시기라고 봐요.”
이제 악기 줄을 끊을 일은 없는 건가요?
“콩쿠르 이후 윤이상 협주곡을 녹음할 때는 줄이 한 번도 안 끊어졌어요. 한번 끊어지고 나니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거죠. 더 밀어붙이면 안 되겠다고요.”
내년에는 베토벤 전곡 연주를 한다고요. 또 하나의 전환점이겠어요.
“소나타 전곡(5곡) 연주가 어려서부터 꿈이었어요. 많이 해 본 작품도 아니고요. 베토벤 음악에는 질문과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걸 찾는 과정이 기대됩니다. 한국에서 몇 차례, 또 대만과 싱가포르에서도 베토벤 전곡을 연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동안 한재민의 상징은 빨간 양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빨간색 양말을 신고 무대에 올라 열정적인 연주를 해왔다. 색과 음악이 같은 온도로 조화를 이루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는 빨간 양말을 신지 않는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양말로 무대에 오른다. 본능적으로 뜨거운 음악가이지만 최근에는 작품에서 거리를 두고 감정을 덜어내려 한다는 말을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이번 무대에서 엘가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는 지휘자 미하엘 잔데를링은 첼리스트 출신. 한재민은 “악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휘자와 연주할 수 있어 좋다. 음악적으로 원하는 것은 모두 이야기하고 나누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한국 공연은 중앙일보 ‘더 중앙 플러스’의 클래식 멤버십인 ‘더 클래식’ 시리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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