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둘째도 같은 병일까 봐…” 이건희 유산이 바꾼 다연이네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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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가명·4)가 처음 병원을 찾은 건 생후 16개월이던 2023년 9월이다. 다연이의 부모는 또래보다 발달이 더딘 아이를 걱정했다. 뇌영상 촬영 등 초기 검사로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수개월이 흘렀다. 진단명 없이 버텨야 하는 시간은 가족에게 길고 막막했다.

전환점은 2024년 2월 찾아왔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의 기부금 3000억원 덕분이다. 서울대병원의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에 지원돼 다연이와 부모 유전자를 동시에 분석하는 ‘트리오 전장엑솜 시퀀싱(Trio WES)’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통상 수백만 원이 드는 고가 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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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종희 서울대병원 교수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 로비에 설치된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부조 앞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마침내 다연이의 진단명을 찾았다. CPLANE1 유전자 변이에 의한 주버트 증후군이었다. 주버트 증후군은 현재까지 알려진 원인 유전자만 40개가 넘는 희귀질환으로, 세계적으로도 드문 병이다. 일반적인 검사만으로는 진단이 쉽지 않다. 정확한 유전자 진단이 이뤄져야 눈·신장·간 등 동반 이상 여부를 체계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할 수 있다.

주버트 증후군은 상염색체 열성 유전 질환이다. 부모 양쪽으로부터 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아야 발현된다. 자녀에게 25% 확률로 같은 병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다연이 진단 당시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다연이 엄마가 이미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첫째의 병명을 찾은 안도감은 잠시, 곧 둘째 걱정으로 이어졌다. 다연이 아버지 이모씨는 “둘째도 같은 병일까 봐 불안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빠르게 움직였다. 채종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장(소아청소년과·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을 중심으로 소아청소년과·임상유전체의학과·산부인과 협진 체계가 즉시 가동됐다. 응급 유전 상담과 태아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양수검사를 했다. 채 원장은 “정확한 원인 유전자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응급 양수검사로 태아의 이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사 결과, 태아에게는 유전적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가족은 그제야 긴 불안을 떨칠 수 있었다. 다연이 아빠 이씨는 “검사 결과를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며 “둘째를 안심하고 맞이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게는 큰 선물이 됐다”고 했다. 가족은 지난해 봄, 건강한 둘째 아이를 안을 수 있었다. 이씨는 “희귀질환은 검사도 어렵고 비용 부담도 커 부모 입장에서는 막막한 부분이 많다”며 “이건희 기부금 덕분에 정확한 진단을 받고, 둘째에 대한 걱정까지 덜어 든든했다”고 말했다.

채 원장은 “희귀유전질환 가정에서는 같은 질환을 가진 아이가 또 태어날까 봐 다음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짚었다. 이어 “하지만 원인 유전자를 명확히 진단하면 산전진단, 착상 전 유전검사 등 여러 방법으로 다음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많은 가족이 두려움을 이기고 건강하고 예쁜 아기를 낳아 행복해하고 있다”며 “이 행복을 더 많은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은화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장은 “희귀질환은 정확한 진단이 치료의 시작”이라며 “유전자 진단을 통해 재발 위험을 사전에 확인하고, 건강한 출산을 도울 수 있도록 지원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희귀질환 가정은 임신·출산과 관련한 유전 상담, 산전 검사 등 여러 단계에서 전문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며 “다학제 간 긴밀한 협력 체계를 강화해 희귀질환 가정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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