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타협은 없다, 이정효의 ‘독기 축구’
-
4회 연결
본문
이정효 수원 삼성 감독은 동기생 천재 안정환을 향한 열등감을 자양분 삼아 2026년 한국 축구에서 가장 뜨거운 사령탑으로 우뚝 섰다. 김종호 기자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치면서도 속으론 눈물을 흘렸고, 칼을 갈았다. 아주대 시절, 그의 동기는 ‘천재’ 안정환이었다. 주장으로 아등바등 후배들을 이끌고 올라간 결승, 주인공은 역시 안정환이었다. 안정환은 홀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팀의 리더라는 이유로 대회 MVP 트로피는 받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이 아닌 안정환의 몫이란 걸 알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트로피를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진짜 최고가 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지독한 승부욕, 그리고 천재를 향한 뜨거운 열등감의 시작이었다.
지난 22일 수원 삼성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정효(51) 감독은 이제 2026년 한국 축구계에서 가장 뜨거운 사령탑이 되어 있었다. 지난해 광주FC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려놓았고, 올 시즌에는 명문 부활을 노리는 수원을 맡아 K리그2 2위로 이끌고 있다. 그의 축구는 타협이 없고 집요하다. 높은 점유율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상대 진영을 10번, 20번, 30번이고 끊임없이 두드린다.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용기 있게 골을 넣는 축구를 구현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그의 이런 완벽주의와 집착에 가까운 열정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미켈 아르테타 감독을 연상시킨다. 아르테타는 선수 시절 펩 과르디올라 같은 천재적 재능은 아니었으나 영리함과 리더십으로 버텼고, 감독이 된 후엔 노트북이 터질 정도로 전술을 분석하고 타협 없는 직선적인 소통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얻어 올 시즌 아스널을 우승시켰다.
수원 삼성 이정효 감독. 김종호 기자
실제로 이 감독의 노트북은 아스널의 경기 분석 파일로 가득 차 랙이 걸릴 정도다. 지난 겨울 직접 영국으로 날아가 강팀들의 경기를 직관한 그를 가장 뜨겁게 만든 것 역시 아르테타의 라커룸 스피치였다. 전구를 들고 “팀이 연결되면 빛과 열이 난다”고 강조하거나, 패배 후 상대의 조롱 글을 화면에 띄워 선수들의 독기를 깨우는 아르테타의 방식은 이 감독의 소통법과 맞닿아 있다. 말을 돌려서 하지 못하고 선수들에게 직선적인 독설과 용기를 요구하는 모습은 아르테타의 닮은꼴이자 한국판 변주다.
동시에 그에게선 야구계의 거목 김성근 감독의 짙은 그림자도 읽힌다. 비주류 혹은 무명 출신이라는 결핍, “비스타 출신은 패자부활전 기회가 없다면, 안 지면 그만”이라고 한다. 세상의 냉소적인 시선을 온몸으로 깨부수는 아웃사이더로서의 독기가 판박이다. 선수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면서도, 결국 제자들이 은퇴 후 자신보다 10m, 20m 더 앞에서 대우받으며 출발하길 바라는 깊은 속정이 있다.
열정적으로 지시하는 이정효 감독. 뉴스1
그의 축구 철학을 담은 책 『정답은 없다』는 요즘 배경도 없이 안개 속을 헤매는 사회 초년생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다. 책의 서두부터 천재 안정환을 언급할 만큼 그의 독기는 열등감에서 싹텄지만, 그 열등감을 자신을 태우는 연료로 썼기에 지금의 이정효가 있었다. 버티고 노력한 끝에, 훗날 안정환으로부터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사람이 너”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세계 최고 회사인 삼성전자의 격에 맞게 수원을 다시 최고로 만들겠다는 이정효의 거침없는 질주는, 여전히 지독하고 그래서 매혹적이다.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 김영광은 “다음 월드컵 사령탑은 이정효에 맡겨야 한다”고 했고, 팬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감독은 “지금은 대표팀을 응원해야 할 때다. 선수들도 분위기 반전을 위해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특히 (수원 삼성 출신) 오현규가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안정환을 향해 칼을 갈던 청년은 이제 더 큰 목표를 향해 조용히 날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