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전쟁도 못 막고, 美中 돈줄 죄기에 8월 재정 고갈…위기의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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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한 빌딩에 유엔 깃발이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유엔(UN)이 파산 위기에 몰렸다. 예산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미국과 중국이 분담금을 내지 않거나 늦게 내면서 8월이면 갖고 있던 현금이 동이 날 수 있어서다.
31일(현지시간) 유엔에 따르면 유엔 행정예산위원회는 지난 7일 발표한 재정 보고에서 “현금 사정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며 “잔고가 8월 중순에 고갈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이 파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재정적 붕괴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8월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뒤를 이을 신임 사무총장 선출 절차가 본격화하는 시기라 유엔 리더십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망했다.
유엔 깃발과 미국 성조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합성한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재정난의 원인은 미국과 중국이다. 지난해 기준 미국이 내기로 한 유엔 정규 예산 분담금은 8억2600만 달러(약 1조 2400억원)로 유엔 기본 재정의 22%를 차지한다. 중국도 6억8500만 달러(1조 300억원)로 20%를 부담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현재 총 42억8000만 달러(약 6조4000억원) 이상의 분담금을 체납하고 있다. 체납 규모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후 급증했다. WSJ는 “유엔 규정상 체납액이 직전 2년 치 분담금을 넘어설 경우 총회 투표권이 박탈된다”며 “체납이 이어질 경우 미국은 이르면 2027년에 투표권을 잃을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도 유엔을 애태우고 있다. 미국의 분담금 체납을 비난하며 자신을 ‘사실상 유엔 최대 재정 기여국’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정작 분담금 지급에선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다. 중국은 지난 26일 왕이 외교부장이 유엔본부를 방문하는 동안 평화유지 비용으로 8억4400만 달러(약 1조3000억원)의 분담금을 유엔에 냈지만, 여전히 4억5500만 달러(약 6900억원)를 내지 않고 있다.
중국은 2021년까지는 매년 4~5월쯤 분담금 납부를 마쳤지만, 2022년에는 10월에야 완납했다. 2023년에는 11월, 2024년에는 12월 27일에 분담금을 납부하는 등 납부 시점을 계속 늦춰왔다.
지난 26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양국의 분담금 체납은 유엔 길들이기 차원의 움직임이란 해석이 나온다. 돈줄을 죄어 유엔이 자국의 정치적 요구를 듣게 하려는 전략이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의 조직 개편과 정책 변화를 분담금 납부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이 하는 일은 강력한 어조의 편지를 쓰고 절대 이행하지 않는 것 뿐”이라며 “빈말은 전쟁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유엔을 맹비난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유엔 산하 기관 수십 곳에서도 대거 탈퇴했다. 자신이 지난 1월 만든 가자지구 평화위원회로 유엔 역할을 대체하려는 시도도 벌이고 있다.
중국도 유엔 인도주의 관련 프로그램에는 최소한의 자금만 지원하고, 러시아 등과 유엔 예산위원회에 인권 관련 예산 삭감을 압박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기에 영국과 독일 정부의 긴축 정책, 스웨덴과 네덜란드 등의 우경화 흐름 등으로 미국과 중국 이외 국가에서도 분담금 납부가 줄어들고 있다.
유엔의 독특한 회계 규정도 재정난 악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유엔은 연말까지 쓰지 않은 자금을 회원국들이 내야 할 분담금 비율에 따라 분배해 환급 신용으로 돌려준다. 하지만 실제 납부되지 않은 분담금도 장부상 미사용 예산으로 처리돼 환급액에 포함된다는 게 문제다. 올해에만 실재하지 않는 현금 2억9900만 달러(약 4500억원)가 환급 신용으로 잡혔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존재하지도 않은 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카프카적 악순환에 갇혀있다”며 규정 개편을 촉구했을 정도다.
지난달 2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재정난은 유엔 무용론에 불을 더 지필 수 있다. 유엔은 우크라이나·이란 전쟁에선 중국과 러시아, 가자지구 전쟁에선 미국 등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에 막혀 아무 대응을 못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통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중·러의 반대로 부결됐다.
문제는 자금 고갈 피해가 기아 등으로 고통받는 국가들에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유엔은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분쟁 지역 병력 철수에 속도를 내고 평화유지 활동 비용도 대폭 삭감했다.
전 유엔 외교관인 시볼트 카멜리 뉴욕대 교수는 “(분담금 체납에) 실질적 변화가 없다면 유엔 예산 규모는 20~25%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식량 구호 프로그램 등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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