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바그너 링 사이클, 말러 교향곡 전곡…지역 시향의 ‘유쾌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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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3~24일 강릉시향이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하이라이트를 모은 콘서트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티켓은 매진됐다. [사진 강릉시향]
지역의 연주 단체들의 유쾌한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의 수준, 다양한 레퍼토리에 대한 관객 수요가 동시에 상향하면서 바그너 ‘링 사이클’, 말러 교향곡 등 대작 공연에 잇따라 나서는 모양새다.
올해 지역 오케스트라 프로그램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건 단연 강릉시립교향악단의 ‘링 사이클’이다. 강릉시향은 오는 12월 16일, 18·19일 강릉아트센터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4연작(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 중 첫 작품 ‘라인의 황금’을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이른바 ‘최초의 국산 반지’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강릉시향은 “성악가부터 연출, 기술 스태프까지 전원 한국인으로 구성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캐스팅을 진행 중이다.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1999~2003)로 지역 오케스트라의 롤모델이 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도 바그너 연주 대열에 합류했다. 오는 8월 서울 예술의전당, 부천아트센터에서 바그너 링 사이클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오페라 콘서트를 연다. 사무엘 윤, 최인식, 김기훈, 정주연, 이효은 등 14명의 성악가와 100여명의 오케스트라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총 4시간(인터미션 포함)이 예상되는 큰 공연이다.
지난달 인천시향이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대지의 노래'를 연주했다. [사진 스튜디오 것]
인천시립교향악단은 지난해 말부터 말러 교향곡, 올해 말부터 브람스 교향곡·협주곡 전곡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난해 12월 17일 9번으로 포문을 열었고, 올 4월 25일엔 말러가 번호를 붙이지 않은 교향곡 ‘대지의 노래’를 인천시향 정기연주회 무대에 올렸다. 오는 9월에는 큰 편성 때문에 ‘천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8번, 12월에는 난곡으로 꼽히는 7번 등을 차례로 연주한다. 그 사이 10월엔 브람스 시리즈 첫 공연이 예정돼있다.
울산시향은 지난 29일 베르디의 레퀴엠을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연주했다. 울산시립합창단, 창원시립합창단 등 200여명이 한 무대에 오르는 대편성이 이목을 끌었다.
지역 악단들의 이 같은 도전은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 경험을 쌓아온 지휘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강릉시향의 상임지휘자 정민(42)은 정명훈 지휘자의 아들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2015년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2020년 이탈리아 볼차노 하이든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 지휘자 활동 등으로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 인천시향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최수열(47)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부지휘자를 거친 후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특히 부산시향에서 추진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전곡(2017~2019), 라벨의 관현악곡 전곡(2020~2022) 연주를 국내 최초로 도전, 완주하며 클래식계 주목을 받았다.
사샤 괴첼 울산시향 예술감독. [사진 울산시향]
울산시향의 예술감독 사샤 괴첼(56)은 이른 바 ‘오케스트라 빌더’로 불린다. 그가 2009년부터 11년간 이끌었던 이스탄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괴첼과 함께 BBC 프롬스 무대에 섰고 독일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앨범을 내는 등 급성장했다. 지난달에는 그가 지휘한 프랑스 페이 드 라 루아르 국립 오케스트라의 ‘앨범 슈레커, 코른골트, 크레네크’가 ‘BBC 뮤직 매거진 어워즈’(관현악 부문)에서 ‘올해의 음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보다 연주자 풀도, 관객도 많지 않은 지역 악단들의 레퍼토리 확장이 쉬운 건 아니다. 무엇보다 예산 확보가 관건이다. 부천시향 관계자는 “바그너, 말러 등의 대편성의 연주를 위해서는 평소보다 2배 가량의 인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객원 단원 등도 따로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릉시향 관계자는 “오페라 배우들과 오케스트라 단원이 다 함께 무대에 서려면 이를 위한 피트 설비, 무대 확장 등 기본 여건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런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이유는 모객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천시향의 말러 교향곡 연주는 모두 티켓이 매진됐다. 강릉시향도 지난해 ‘나비부인’(푸치니), 올해 ‘라 트라비아타’(베르디) 등 콘서트 오페라 두 편을 매진시켰다. 김주영 서울사이버대 교수(피아니스트)는 “스타 지휘자·협연자가 아닌 말러, 브루크너, 바그너 등 매니아 층이 많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한다는 것만으로 이목을 끌만큼 국내 청중들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부산 연지동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콘서트홀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 부산콘서트홀]
‘문화 도시’ 이미지 구축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이 커지며 예산 지원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됐다. 통영, 대관령 등 지역의 음악 축제가 하나의 관광자원이 되거나 ‘부산콘서트홀’ ‘부산오페라하우스’(내년 9월 개관 예정) 등으로 전국에서 관객을 불러모으겠다는 지자체도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예산 지원이 정치적 상황에 달렸다는 한계 역시 지적됐다. 한 지역 시향 관계자는 “예산 집행권자가 바뀌면 예술 정책이 또 어떻게 바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들 지방 선거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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