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르포] 경찰·소방이 지키는 전국 최초 민간 ‘주취자 보호’ 병원의 주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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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새벽 경기도 수원 수원덕산병원의 ‘주취맑음센터’ 앞에 구급 침대가 대기하고 있다. 임성빈 기자

지난 29일 오후 10시, 경기도 수원 권선구 수원덕산병원 지하 3층 ‘주취맑음센터’에선 경찰의 실시간 무전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여기는 안산인데, 주취자를 그곳으로 데려가도 되냐”는 등의 현장 경찰 연락으로 전화기가 여러 차례 울렸다. 센터 안에는 나란히 놓인 병실용 침대 3개, 문 앞에는 스트레처(구급차용 이동식 침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29일 밤부터 30일 새벽까지 지켜본 주취맑음센터에는 취객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달 9일 문을 연 이곳 센터는 경기 남부 지역 곳곳에서 만취해 집을 찾아가지 못하는 주취자를 일정 시간 안전하게 보호하고, 필요시 병원 치료로 연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24시간 이곳을 지키는 경찰관과 소방관은 주취자가 들어오면 센터에 마련된 병실용 침대에 눕히고, 이들의 건강 상태를 매시간 확인한다. 개소 이후 이날까지 총 44명의 취객이 이곳에서 보호를 받았다.

구토·용변·인사불성…심야 취객 맞는 근무자들 

개소 한 달여가 지났지만,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 되고 바지에 용변을 보거나 옷에 구토를 묻힌 채 들어오는 취객을 상대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장인혁 소방장(안산소방서 소속)은 “술에서 깨면 ‘내가 여기 왜 있나, 왜 데려왔냐’고 항의하는 분도 있다”며 “이곳은 안전조치를 하는 곳이라고 설명하면 스스로 깨서 떠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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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새벽 경기도 수원 수원덕산병원의 ‘주취맑음센터’에 경찰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임성빈 기자

술에 취한 사람이라고 해도 의식이 있다면 대부분 안전하게 귀가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사람은 꼭 보호자를 찾아 인도해야 하고, 외상이나 호흡 곤란 등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빠르게 병원으로 후송해야 한다. 일부 폭력적으로 행패를 부리는 사람, 범죄와 연관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경찰이 데려간다. 마땅한 보호자도 없이, 스스로 집을 찾아가지도 못할 정도의 만취자만이 주취맑음센터로 인계되고 있었다. 이날은 발견된 주취자들은 모두 현장에서 의식을 되찾아 귀가 조치되며 센터 이용자가 없었지만, 이곳에 마련된 3개의 침대가 모두 취객으로 가득 차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근무자 이민도 경사(수원권선경찰서 소속)는 “과거 지구대에서 근무할 때, 겨울엔 주취자가 동사할 수도 있고 혹서기에는 열사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보호자가 연락이 안 되면 주취자를 지구대에서 보호해 줘야 했다”며 “순찰과 신고 출동을 해야 하는데, 주취자가 몰리면 상당히 곤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취자가 지구대에서 두세 시간 머무르는 것은 기본이고, 근무자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는 등 어려운 일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 경사와 장 소방장은 “센터가 있어서 현장에서 주취자와 실랑이하는 시간이 줄고, 더 많은 신고 출동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취자 응급 상황 포착해 구하기도

‘술 취한 사람을 보호하는 데 예산을 낭비한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었지만, 여러 주취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는 분명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지난 2022년 11월 서울 강북구에서는 경찰이 집 앞 계단까지 데려다준 주취자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해 해당 경찰관이 벌금과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다. 이후 2023년 1월 서울 동대문구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주취자를 길에 두고 순찰차로 돌아가 대기하던 중 주취자가 승합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당시 경찰청장이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주취자 일시 보호 센터가 있는 한 이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게 이곳의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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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밤 경기도 수원 수원덕산병원의 ‘주취맑음센터’에서 장인혁 소방장이 주취자 응급 상황에 대비한 자동심장충격기(AED) 등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임성빈 기자

실제 센터에 들어온 주취자의 건강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해 병원 치료로 연계해 목숨을 구한 사례도 2번이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선 한 시간마다 주취자의 의식 상태부터 체온, 혈압, 산소 포화도 등을 보고 주취자가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판단한다. 토사물이 기도로 들어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지 등도 수시로 본다.

이처럼 경찰·소방·병원·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운영하는 주취자 보호 시설은 전국에 22곳이 운영되고 있다. 주취자 관련 112 신고는 2021년 30만456건에서 지난해 40만6469건으로 10만 건 이상 증가한 상태다. 서울시는 지난 2024년 서울 종로구에 주취해소센터를 설치하려고 했으나 주민 반대로 계획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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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밤 경기도 수원 수원덕산병원의 ‘주취맑음센터’에서 근무 중인 이민도 경사와 장인혁 소방장. 임성빈 기자

이런 가운데 수원 주취맑음센터는 전국 최초로 민간 병원에서 운영되는 주취자 일시 보호 시설이다. 수원덕산병원 관계자는 “민간 병원이지만 공익적 차원에서 지역 주민과 치안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센터를 설치하게 된 것”이라며 “앞으로는 다른 많은 민간 병원도 주취자 센터 설치에 나서는 등 공공기관과 의료기관이 협력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 경사는 “아직 우리 사회가 주취 문화에 관대한 면이 있는 것 같다”며 “미래에는 이런 센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안전하게 음주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소방교는 “만취해 길에 누워 있다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는 분도 많이 봤다”며 “술을 마시는 분들이 위험성을 깨닫고 조심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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