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로봇 배우의 150분 공연…연극과 뮤지컬로 만나는 '천 개의 파랑&a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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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콜리. 브로콜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신장 1m45㎝의 아담한 체구, 앳된 기계 음성이 첫 대사부터 관객을 집중시켰다. 동그란 LED 패널 얼굴에 앙증맞은 초록빛 타원형 눈이 두 개. 코와 입은 없고, 대사는 가슴에 내장된 스피커로 흘러나온다. 국립극단이 개발한 로봇 배우 ‘콜리’가 1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천 개의 파랑’으로 무대 데뷔했다.
‘천 개의 파랑’ 연극 VS 뮤지컬 #천선란 SF 소설 토대 공연 잇따라 #로봇 기수‧경주마‧인간 자매 우정담 #국립극단 연극, 최초 로봇 배우 데뷔 #서울예술단 뮤지컬, 퍼펫 인형 등장
로봇 배우 '콜리' 6시간 공연도 거뜬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 속에 2018년 대구오페라하우스가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손잡고 휴머노이드 로봇 디바 ‘에버5’와 성악가의 오페라 대결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콜리처럼 로봇 배우가 상영시간 150분의 장편 연극 주연을 맡은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콜리는 내장 배터리를 완충하면 6시간 넘는 공연도 거뜬하다고 한다.
원작은 2019년 출간돼 15만부 이상 판매된 천선란 작가의 동명 SF 소설이다. 낙마 사고로 하반신이 부서진 휴머노이드 로봇 기수 콜리가 반신불수 장애 청소년 은혜(류이재), 로봇공학에 능한 동생 연재(최하윤) 자매와 힘을 합쳐 안락사 위기의 경주마 ‘투데이’를 구해내는 여정을 그렸다.
뮤지컬, 퍼펫·배우·인형사 3박자 로봇 구현
공교롭게도 서울예술단에선 같은 원작의 창작 뮤지컬을 다음달 1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연극 버전이 콜리 역에 실제 로봇을 출연시켰다면, 뮤지컬 버전은 첨단 로봇을 수공예 방식 퍼펫(Puppet‧인형)으로 만들었다.
“원작에서 로봇‧사람‧동물이 종의 경계를 넘어 연대하는 이유는 세상이 차갑고 날카롭기 때문이다. 초연결 시대에 더 고독한 우리의 사는 모습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 콜리를 통해 반추하고자 했다.”(연극 연출 장한새)
“로봇과 동물과 인간의 상관관계에서 역설적으로 찾을 수 있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무대적 상상력, 공연 문법으로 전달하겠다.”(뮤지컬 예술감독 이유리 서울예술단장)
각 제작진이 던진 출사표다. 기술 발달로 빈부 격차가 장애 등 신체적 격차로 심화된 미래, 콜리의 순수한 눈에 비친 가난한 세 모녀의 사랑 이야기가 로봇 소재 SF의 신선함으로 공연계를 사로잡았다.
천선란 "연극, 다양한 LED 화면·공간 인상적"
18일 뮤지컬판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천선란 작가는 “연극‧뮤지컬을 작년 이맘때 비슷한 시기에 제안 받았다. ‘천 개의 파랑’이 드라마‧영화로 나오면 실제 동물이 촬영에 사용돼 (인간을 위해 동물‧로봇이 이용되는 것을 비판한) 책 주제에 벗어난 결과물이 될까 봐 우려했는데, 공연은 실물 없이도 전율이 느껴지는 무대만의 문법이 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완성되길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먼저 본 연극 ‘천 개의 파랑’에 대해 그는 “LED 화면을 다채롭게 썼다. 한 무대에서 다양한 공간을 연속적으로 표현한 게 인상 깊었다. 연극을 보며 뮤지컬은 어떨지 기대감이 더 많이 생겼다”고 관람평을 남겼다.
연극 ‘천 개의 파랑’은 당초 4일로 예정한 개막 직전 로봇 결함 탓에 개막을 2주나 늦췄다. 리허설 중 전원 꺼짐, 움직임 버퍼링 현상이 나타나 초반 10회차 공연을 취소하고 배선 회로 및 소프트웨어를 전면 수정했다.
"로봇 표정 변화 없는데 눈물 난다"
연극은 우려 속에 베일을 벗었지만, 관객 반응은 우호적이다.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선 "원작의 문어체 문장을 그대로 옮긴 부분이 지루했다"는 평도 있지만, “로봇배우가 신선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17일 공연에선 한 여성 관객이 “콜리 대사가 눈물 버튼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콜리는 사람의 조작이 필요한 반자동 퍼펫 형태다. 목과 팔의 관절이 자동화된 로봇이지만, 하반신은 뒤쪽 손잡이를 밀어줘야 허우적대며 걷는 것처럼 보인다. 대사 연기는 무대 뒤 오퍼레이터가 실시간으로 미리 입력한 대사를 말하게 했다. 조명 장치 작동과 같은 원리다.
콜리와 비슷한 체구의 배우 김예은이 콜리 내면 대사 및 내레이터로 출연하고, 콜리 목소리 사전 녹음(이후 로봇 음색으로 후보정), 공연 중 몸통 연기까지 도왔다. 사람처럼 스스로 연기하는 수준엔 못 미쳤지만, 대사와 움직임은 실수 없이 해냈다.
어휘가 1000개로 제한된 콜리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인간들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은 표정과 어조 변화가 없는 로봇 말투 덕에 관객 저마다의 해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인간이 재밌는데 왜 말이 달리나요?” “말이 재밌어하는 건 어떻게 알아요?” “연재는 실수나 기회나 같은 말이래요” “모두가 천천히 기다려주면 좋을 텐데요”….
장한새 연출은 2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창작진도 연습 과정에서 로봇 뒤에 사람의 목소리와 손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콜리를 마주할 때 연기 질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로봇과 연기해서 오히려 더 풍부한 장면이 나왔다”면서 “로봇에게 연극의 전권을 맡겼다”고 말했다. 또 “로봇이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교류하고 호흡을 맞추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봤다”고 했다.
뮤지컬 콜리 노래엔 컴퓨터 이진법 시도
다음 달 공연을 앞두고 한창 막바지 준비 중인 뮤지컬에선 배우와 인형사 등이 3인 1조로 콜리를 연기할 예정이다. 뮤지컬 배우 윤태호, 아이돌그룹 펜타곤 멤버 진호가 주연에 더블 캐스팅돼 머리 부분을 연기하고, 팔‧다리는 인형사가 움직인다. 경주마 투데이도 퍼펫이다.
이지형 퍼펫디자이너가 작품 성격에 맞춰 “3D 모델링을 통해 구동 방식은 로봇 형태지만, 퍼펫 조종법을 활용한” 결과물로 완성했다. 퍼펫과 배우가 서로 떨어져 바라보는 시적인 효과도 꾀했다.
미래 SF 장르에 맞춰 음악도 차별화했다. 박천휘 작곡가는 “콜리의 탄생 순간 첫 노래는 전자음악 요소를 썼다. 컴퓨터 이진법의 0과 1을 도·레 음에 적용한 음악도 적용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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